황만길 지역진흥원장

한국 사회는 객관적 상식조차 반공, 종북좌파라는 말 앞에 가치판단이 흐려지는 분단이데올로기에 쩔어 있다. 수십 년의 체제유지 반공교육이 낳은 산물이다. 우리는 반공반북이데올로기가 어떤 정치집단의 이해를 위해 태어난 괴물인지 생각할 겨를조차 없이 맹목적인 반공반북이데올로기에 복무해 왔다. 우리의 의지와 무관하게 냉전의 산물이 된 남북분단은 남한과 북한 정권의 체제유지를 위한 이념 교육으로 국토의 분단, 사상의 분단, 마음의 분단까지 가져왔다.
남북 집권세력들은 극단적인 체제이념 교육을 통해 상대방은 악이라는 이분법적 구도를 설정하고 이 제도와 틀을 부정하는 개인이나 집단을 숙청해가는 지배 프로세스를 구축해왔다. 이 결과 남북한은 독재 권력이 장기집권을 하는 토대를 만들었고 상대방의 위협을 부각시킴으로써 현 지배체제를 공고화하는 효과를 거두었다. 북한은 말할 것 없고 이승만, 박정희 정권도 장기집권을 위해 부정선거와 반공반북이데올로기에 기반한 유신헌법으로 철권통치를 영구화하려 했다.

이런 지배이데올로기를 지속적으로 확산·유포하는데 가장 유효한 수단은 교육이다. 일제가 황국신민화를 교육을 통해 확산시키려 했던 것과 유사하다. 교육은 개인과 사회의 바람직한 성장에 절대적인 기여를 한다. 하지만 지배집단이 교육을 지배체제의 도구로 삼으면 위험하다. 박정희 정권의 반공반북이데올로기 교육으로 우리는 공산주의와 북한이라는 존재에 극심한 거부감을 갖게 되었고 상식이랄 수 있는 체제 구분조차 할 수 없게 되었다.

우리 국민은 반공이데올로기 교육으로 인해 민주주의의 반대가 공산주의이고, 공산주의는 괴멸할 대상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세계 모든 국가의 헌법에 민주주의는 명시된 것이고 민주주의를 지향하지 않는 국가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독재 국가도 민주주의를 명문화하고 있다. 김일성 정권도, 박정희 정권도 민주주의를 국가의 헌법에 명문화하고 있었다. 그 까닭은 민주주의가 국가운영방식에 있어 현존하는 가장 바람직한 정치체제이고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상식조차 부정되는 이유는 수십 년 동안 이어져온 반공교육에 기인한다.

민주주의는 국가권력이 국민에게 있다. 반대로 전제주의 국가는 독재자나 소수자에게 권력이 집중된 국가다. 자본주의와 반대 개념은 공산주의다. 이건 외국의 초등학생도 아는 상식이다. 하지만 우리 국민의 대다수는 이런 초보적 상식도 인지하지 못한다. 민주주의의 반대가 공산주의라고 배운 수십 년의 반공교육이 낳은 결과물이다. 정치개념과 경제개념 조차 구분할 수 없게 만들어 놓았다.

자본주의는 사유재산을 인정하고 노력에 의해 계급과 대우가 달라지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공산주의는 평등분배를 통해 평등계급과 평등사회를 지향한다. 하지만 이런 장점들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는 빈부격차, 공산주의는 경제발전의 정체라는 심각한 모순을 낳았다. 따라서 이런 모순의 해결을 위해 극단적인 체제 우월주의를 벗고 제 3의 길을 모색해 왔다. 엄밀히 말해 마르크스가 구분한 형태의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는 지구상에 현존하지 않는다고 보는 게 옳다.

자유주의와 반대되는 사회주의도 단지 단체보다 개인을 중시하느냐, 개인보다 사회와 단체를 중요시하느냐의 차이일 뿐 어느 것이 옳고 그르다고 말할 수 없는 개념이다. 이것은 지극히 상식적이라서 이런 글을 쓰는 것 자체가 서구적 시각에서 보면 유치하기 이를 데 없는 수준의 이야기다. 하지만 어쩌랴. 우리의 현실이 민주주의와 전제주의,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자유주의(개인주의)와 사회주의조차 구분하지 못한 채 반공이데올로기 교육의 도그마에 갇혀 21세기를 살고 있으니 말이다.

부정선거, 분단 고착화, 개성공단 마비, 민주주의 유린, 한반도 불안으로 경제침체가 와도 오직 지배권력만 유지할 수 있다면 종북좌빨, 반공이데올로기를 외쳐대는 현실이 안타깝다. 오늘날 중국을 비롯한 수많은 공산주의, 사회주의 국가와 수교를 하고 교역교류를 하고 있음에도 반공으로 날 새는 줄 모르는 지배 권력의 한심한 작태가 개탄스러울 뿐이다.

민주주의를 유린한 국정원과 경찰 수장 등 권력기관의 불법행위를 규탄하는 촛불집회를 향해 청와대 관계자가 종북좌파라고 말했다는 현실을 목도하며 도대체 이 나라가 어디로 갈지 걱정이 앞선다. 오늘도 반공좌빨이라는 낡은 유물을 꺼내들고 분단 영구화와 병영국가를 만들며 기생하는 자들의 반민족, 반국가, 반통일 행위를 중단시키는데 국민들이 나서야 한다. 알아듣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니 오늘도 우리는 서구의 유치원생처럼 공산주의의 반대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자본주의라고 외쳐야 할 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