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남곡 희망연대 지도위원

우리는 반세기의 짧은 기간에 최빈국으로부터 세계경제 10위권의 나라로, 독재국가로부터 평화적 정권교체가 정착하고 있는 민주화된 나라로 변모하였다. 사실 이런 성과들은 그야말로 대단한 것이다. 그럼에도 국민들의 행복도(幸福度)는 OECD 국가 가운데서는 최하위권이고, 여러 가지 최악 수준의 인간존엄지수가 그것을 객관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다. 그 원인이나 배경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로 말할 수 있겠지만, 양극화의 심화와 상대적 빈곤감, 천민자본주의의 물신지배, 경쟁이 주는 스트레스, 개인중심의 민주주의가 나타내는 이기주의의 차가움 등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정치 경제의 민주화, 복지제도의 확충, 물질적 수단의 확보 등이 요청되는 것은 더 말할 나위가 없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것 또한 명백해 보인다. 사람들의 의식과 생활양식이 바뀌지 않으면 ‘따뜻한 사회’로 되기는 힘들어 보인다.

그 핵심은 반생명적(反生命的) 문명을 변혁하는 것이다. 이것은 세월호의 참극으로 더욱 분명해졌다. 초기에 하나로 되었던 ‘거룩한 마음’이 편 가름의 블랙홀에 빠져 안개 속으로 묻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새로운 사회, 새로운 나라를 만들 수 있는 동력이 생기지 않으면 나라가 망(亡)할지도 모른다. 정부에게만 맡겨 둘 수 없어 이제 현대의 의병(義兵)이 출현해야 할 것 같다. 다만 구한말의 의병이 망국의 위기에 신식병기로 무장한 외부침략자들에게 열악한 무장으로 목숨 바쳐 싸웠다면, 현대의 '의병'은 ‘돈이 지배하는 차가운 사회’를 ‘사람이 중심이 되는 따뜻한 사회’로 나라의 기틀을 바꾸는 사람들이다. 이 의병의 무장(武裝)은 '사랑'이며, 이 의병의 용기(勇氣)는 '기쁨'이다. 시민운동이 의병을 일으키는 운동으로 될 수는 없는 것일까? ‘저항의 주체’로서의 시민을 넘어 진정한 주체로 되어야 한다. ‘인간화’에 대한 구체적 내용을 담아야 한다. 이것은 이 나라와 이 사회의 절실한 요구라고 생각한다. 시민운동에 대한 몇 가지 상상을 해본다.

첫째로 시민헌장제정(市民憲章制定) 운동을 제안해본다. 여전히 ‘저항의 주체’라는 측면도 있지만, 진정한 주체로 되기 위해서 ‘자율성’, ‘책임’이 요구된다. 민주화를 겪으면서 국가와 국민이라는 수직적 관계에서 저항의 주체로 시민운동이 출발했다면, 이제 그것을 포함하면서 그것을 넘어서야 하다. 수평적 관계에서 민주적으로 의사를 결정하는 능력, 책임과 배려(관용) 등이 발전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시민이 헌장을 스스로 써가는 운동을 제안한다. 추상적인 구호나 의무적 규범이 아니라 일상의 삶과 사회적 실천의 자발적 전범(典範)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아마 내용으로는 민주, 인권, 공공도덕, 박애(博愛) 등이 포함될 것이다. 민주, 인권의 경우 저항의 주체로서 국가기관이나 자치단체의 반민주적 반인권적 행위나 제도에 대해서 반대, 감시, 비판하는 내용과 함께 시민의 책임, 자율성, 상호관용 등이 담길 것이다. 공공도덕과 박애도 의무적 규범으로서가 아니라 자각(自覺) 운동이 될 것이다. 헌장(憲章)은 정언(定言)의 형태가 아니라 진행형으로 써질 것이다.

둘째로 인문운동의 생활화를 제안해본다. 진정한 주체로서의 시민이 되기 위해서는 인문적 토대가 갖추어져야 한다. 소통능력은 단정(斷定)의 문화가 잘못이라는 자각이 생활화되어야 하고, 관용과 배려의 문화가 되기 위해서는 일체(一體)를 자각하는 삶이 되어야 한다. 아마 구체적 방법들은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을 일치시키는 다양한 연습 등을 생각할 수 있다. 프로그램 등을 만들어 진행하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셋째로 예술활동, 시민경제운동, 민회, 민관거버넌스 등을 제안해본다. 특히 ‘감성의 해방’은 현대의 조건에서 특히 중요하다. 인문운동의 견인차 역할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물신지배와 이기주의 아래에서는 감성이 억압되지만, 역으로 감성이 해방되면 물신주의와 이기주의에서 벗어날 수 있다. 감성의 해방을 가져오는 데는 예술활동만큼 효과적인 것이 없다. 또한 공유, 셰어링(나눔), 풀어놓기(자원봉사와 기부) 등의 실천과 단순 소박한 삶을 향한 사회 문화적 공기를 형성하는 시민경제운동도 좋다. 민회(民會)를 구성해 지역의 구체적인 문제 또는 제안에 대한 자치를 연습하고 수평적 관계에서의 주체의 능력을 기른다. 마지막으로 민관거버넌스로 자치단체와의 거버넌스 뿐만 아니라 지방의회와의 거버넌스도 발전시킨다. 시민의 주체적 역량이 진보하는 것만큼 건강한 모습으로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