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인애

  올 해로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반포한 지 577돌을 맞이했다. 우리들의 기억 속에 한때 한글날은 찬밥 신세였던 적이 있었다. 공휴일이 너무 많으면 국가 경제 발전에 저해가 된다는 논리를 내세워 법정공휴일이었던 한글날을 단순한 기념일로 격하시키고 국민들은 하루의 달콤한 공휴일을 노동으로 대체해야 했었다. 그러나 이것을 보다 못한 한글 관련 단체의 노력으로 한글날은 마침내 당당히 국경일의 지위를 부여받게 되었다.

  훈민정음은 글자 그대로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뜻이다. 우리가 무엇보다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하는 사실은 훈민정음은 우리의 국보인 동시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록이 되어있다는 것이다. 이 세상 어느 나라의 문자도 그것을 발명한 사람과 그 발명에 관한 기록이 전해지는 문자는 없다. 오직 우리의 한글만이 세계에서 유일한 역사를 지닌 문자인 것이다. 유네스코에서는 매년 세계 각국의 문맹퇴치사업에 가장 공이 큰 개인이나 단체에게 유네스코 세종대왕 문해상을 수여한다. 이 상은 우리 정부의 제의에 따라 유네스코에서 제정되었고 1990년부터 매년 9월 8일에 시상을 한다. 우리나라의 자랑스러운 문자가 지닌 국제적 위상에 그저 감탄할 뿐이다.

  요즘은 인터넷 미디어를 켰다 하면 화면에 도배가 되는 소식들이 전부 한류에 관한 내용들이다. 한국어를 배우기 위해 외국의 한국어 문화원에는 수강생들이 줄을 선다. 그들은 거의 젊은 청춘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다가 이제는 음식마저 K-FOOD에 반해버린 외국인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이 우리를 놀라게 하고 있다. 요새 미국에서 없어서 못 판다는 한국산 냉동 김밥은 품절 사태를 빚을 만큼 그 인기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 우리가 불과 이십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들이 지금 전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다. 엊그제 나는 우연히 유튜브를 보다가 참 반가운 소식을 알게 되었다. 유럽의 작은 나라 룩셈부르크에 사는 우리 교민이 하는 말이, 자기가 어딜 가든 한국인이라는 말만 하면 주위에서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해서 이것저것 한국에 대해서 물어본다는 것이다. 그 옛날 외국에 살던 우리 교민들은 차별이나 받지 않으면 다행인 시절이 있었는데 이제는 세상이 완전히 바뀌어 대한민국이 이토록 전 세계인의 선망의 나라가 될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그렇다면, 이 시점에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하여 생각해야 한다. 외국인들은 우리의 언어를 저렇게 배우고 싶어 할 때 우리는 우리의 한글을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고 있을까? 흔히 십대 청소년들이 쓰는 비속어를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버젓이 쓰고 무분별한 외래어 사용으로 정작 외래어의 우리말 뜻이 뭔지를 오히려 검색해서 찾아야 하는 일도 있다.
세종대왕이 만든 한글의 의미가 무색해지는 장면이다. 인류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평화로웠던 시절보다는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살아왔던 시절이 훨씬 더 많았다. 역시나 지금도 이 지구에는 전쟁이 끊이질 않고 있다. 전쟁은 한 민족의 역사를 퇴보시킴과 동시에 민족의 의식을 약화시키는 주범이 된다. 또한 이때 그 민족의 언어 또한 수난을 당하게 된다. 그러나 위대한 왕의 후손들답게 우리는 일제강점기 하에서도 우리의 언어를 당당히 지켜냈다. 그렇게 지켜낸 한글인 만큼 우리는 우리의 모국어를 이제 더 이상 함부로 쓰거나 훼손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우리는 이제 한류를 넘어 그 다음을 준비해야 한다. 우리의 한류가 요즘 대세를 이루고 있는 문화의 소재들보다 더 위대한 정신이 깃들어 있는 거룩한 그 무엇이 더 있음을 세상에 알려야 하는 의무가 우리에게 있다. 그 의무를 멋지게 수행하게 되는 날엔 아마도 우리의 한글은 전 세계 어느 공항을 가더라도 영어 다음으로 안내 문구에 써 있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