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궁면장으로 부임한지 3개월째가 되어간다. 초임지라서 낯설 만도 하지만 예전부터 익산인터체인지와 왕궁리 유적을 자주 찾아서 그런지 생경스럽지 않았다. 오자마자 20여개 기관과 57개 마을 이장을 찾아뵙고 인사로 시작했다. 7월 폭염이 내리쬐는 날 사흘간 땀을 뻘뻘 흘리며 지형 특성을 파악하는 것도 빼놓지 않았다.

왕궁은 익산시의 동쪽 끝에 위치해 있고 산, 언덕 및 평야가 골고루 발달되어 있다. 북쪽 용화산과 천호산의 산줄기가 시대산과 성묘산을 타고 남쪽으로 가늘게 뻗어있다. 하천은 크게 두 갈래로 형성되어 있다. 부상천은 용화산 도순저수지에서 왕궁천은 성묘산 왕궁저수지에서 시작하여 익산천에서 합수된다. 왕궁지역은 마치 물고기 한 마리가 남쪽을 향해 있는 듯하다.

호남고속도로의 익산 관문과 국도 1호선이 금마와 삼례 사이에 길쭉하게 뻗어 있어 교통요지이다. 익산보석박물관을 지나면 왕궁농공단지와 국가식품클러스터가 나란히 양지바른 곳에 위치하고 있다. 익산농장 지역은 축산업이 집중 분포되어 농업소득을 증대시키고 있다.
탑리 마을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왕궁리 유적이 있다. 왕궁이라는 면 명칭은 바로 여기서 유래하였다. 1914년 일제강점기 때 전국 면 통·폐합시 제석면과 우북면을 합쳐 왕궁면이라 칭하며 오늘날까지 불리고 있다. 왕궁 터가 있는 곳에 왕궁이라는 행정지역 명칭을 사용하는 곳은 왕궁면이 전국에서 유일무일 하다.

대부분 백제 왕궁터 때문에 왕궁 행정지명이 사용된 것으로 알고 있다. <익산군사정(1928년)>에 따르면 “왕궁 탑 북쪽을 따라 이뤄진 구릉은 마한시대 왕성의 자취라고 전한다.”고 했다. 이미 한성 백제가 전라도를 정복하기 전부터 왕궁이 있었던 셈이다. 왕궁은 대한민국 국호 한(韓)의 유래지 이기도 하다. 삼한(三韓) 즉 마한, 진한, 변한 중 전라도·충청도 마한 세력의 핵심 위치에 있었다.     

왕궁면에는 유독 선사유적지가 많다. 평장리, 동촌리, 발산리, 쌍제리, 구덕리, 동용리 등 호남 최다 유적지가 분포해 있다. 왕궁리 유적을 중심으로 그 주변에 마한·백제의 유물이 다량 출토되었다. 기원전부터 사람이 살기 좋은 고장이었다는 것을 단적으로 입증해 주고 있다. 당시 지명은 금마저였지만 궁터와 선사유적은 오롯이 왕궁에 집중적으로 분포돼 있다.

왕궁은 문명의 발상지답게 고대 네 차례의 수도가 있었다. 고조선 기준왕의 남천설, 마한의 건마국, 고구려 안승의 보덕국 그리고 백제 무왕의 왕궁에 이르기까지 1천여 년 간 익산 중심지였다. 전국 4대 고도인 공주, 부여, 익산, 경주 중 유일한 왕궁터가 있는 곳이다. 백제시대 한중일 문명 교류의 중간 교착지점이라 할 수 있다. 

고대에는 서해 바닷물이 왕궁리 유적 부근에 까지 미쳤다. 지금 지형 상으로는 상상하기 힘들지만 지명들이 말해주고 있다. 왕궁리 5층석탑 앞 부상천 넘어 마을을 도평(島坪) 즉 섬다리라 부르는데 배가 드나들었던 곳이다. 수천 년 동안 금남호남정맥의 퇴적층이 켜켜이 쌓여 구릉지를 만들고, 일제강점기 때 만경강 제방공사 후 갯벌과 습지가 넓은 평야로 벽해 되면서 오늘날 같은 들녘으로 변모되었지만 그 지형 형태는 고스란히 남아있다.

일제가 이리에 식민지 계획도시를 건설하면서 고도 왕궁은 변방으로 전락되었다. 이제 다시 백제역사유적지구의 세계유산화, 왕궁농공단지·국가식품클러스터 산단 구축, 익산보석박물관과 왕궁식물원의 관광화, 다품종의 농업 생산기반 등의 다양한 지역 특성 때문에 역동적으로 변모해 나가고 있다.         

옛말에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라고 했다. 어떻게 하면 지역사회 발전과 주민 생활 속에 연계할 것인가. 더 살기 좋은 고장이 되기 위해서는 이 좋은 기회를 잘 활용하도록 지혜를 모아나가야 한다. 이는 비단 왕궁 주민뿐만 아니라 익산 시민에게 반문한다 해도 결코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반면 지역 갈등과 주민 분열은 가장 저해요소이다.  

왕궁면행정복지센터 홈페이지의 왕궁면장 인사말은 이렇다.“이제 왕궁은 문화와 관광 그리고 산업이 공존하는 익산시 지역 발전을 선도할 중심축으로 자리 잡을 것으로 기대되어 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여건을 발판삼아 왕궁면민의 지혜와 역량을 모아 왕궁면을 살맛나는 고장으로 만들고 발전시켜 우리 후손들에게 풍요로운 삶의 터전을 고스란히 물려줄 수 있도록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의 역할을 다 하고 있습니다.”고 했다.

왕궁을 왕궁답게, 왕궁을 주민 품안으로, 왕궁 주민이 주인이 될 때 가장 향토적인 왕궁이 가장 세계적인 역사·문화이자 산업·관광시대가 활짝 펼쳐질 것이다. 마을마다 대동사회가 아름답게 꽃피울 때 2천여 년의 왕궁 역사는 미래 대한민국의 새 등불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