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필성 칼럼니스트

대선을 보름 남짓 앞두고 호남의 몸값이 천정부지로 솟고 있다.

역대 대선처럼 호남의 ‘일방적지지’를 받는 후보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철수 후보가 전격적으로 자진사퇴함에 따라 대선정국은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와 문재인 민주당 후보의 양자 대결로 압축되면서 호남의 지지율에 정치적 사활이 걸려 있다. 호남의 유권자는 모두 411만여 명. 전체 유권자의 10% 수준이다.

현재 문 후보의 호남민심이 안 전 후보의 사퇴로 이를 이어받을지 아니면 박 후보의 두 자릿수 지지율이 유지될지 예측이 쉽지 않다. 현재 호남에서 문 후보는 유리한 입장에 있지만 일각에선 친노(친노무현) 진영에 대한 호남의 반감 때문에 호남의 ‘민심 쏠림’이 과거와 다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박 후보는 4·11총선 당시 광주에 출마한 새누리당 이정현 후보가 39.7%, 전북 전주 완산을에서 출마한 정운천 후보가 35.8%라는 높은 득표율을 올린 점도 새누리당에 자신감을 보태고 있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호남은 국민대통합을 전면에 내세운 박 후보에게도 포기할 수 없는 곳”이라며 “2007년 이명박 후보가 호남에서 얻은 8%의 약 2배인 15%득표가 목표”라고 말했다.

박 후보 캠프가 있는 서울 여의도동에는 “걸쭉한 호남 사투리가 표준어”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오고 있다.

국민대통합위원회 한광옥 수석부위원장과 김경재 기획담당특보 등 호남 인사들이 대거 캠프에 합류한 결과다. 박 후보 진영은 호남인사 영입에 각별히 공을 들이고 있다.

전북 고창 출신의 이연택 전 총무처장관을 지낸 대한체육회 명예회장을 고문으로 영입했다. 호남지역 대학의 총학생회장도 캠프에 합류할 것으로 알려졌다.

호남 인사의 전진 배치도 눈에 띈다. 당장 중앙선거대책위의 스피커 역할을 하는 익산의 박선규, 전남 무안의 안형환, 함평의 이상일 등 남성 대변인 3명이 모두 호남 출신이다.

호남에서 상승세를 타고 있는 문 후보는 안 전 후보의 사퇴후의 빈 자리를 전폭 이어받기 위해 자신감을 보이며 광주를 다시 찾는 등 힘을 쏟고 있다.

호남 바닥민심은 그야말로 정중동이다. 전남 목포에서 낙지요리집을 하는 이상수 씨(46)는 “요번 선거는 솔찬히 재미 있을 것이요. 이쪽 사람들 맘이 예전하고 영판 다르당께”라며 전라도 사투리로 대선을 앞둔 호남의 민심을 이렇게 전했다.

손님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예전과 사뭇 다른 분위기가 느껴진다는 것. 문 후보를 지지하는 유권자는 절대적이지만 “몇 몇 사람은 조심스럽게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는 발언도 하는데 예전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전했다.

회사원 이 모씨(38)도 “주변에서 박 후보를 이야기하는 사람이 늘어난것도 사실”이라며 “문 후보가 특별한 잘못도 없지만 눈에 띄는 행동이나 공약도 별로 없는 것이 아쉽다”고 전했다.

야권의 최대 화두였던 단일화가 안 후보의 사퇴로 이제는 문 후보쪽으로 쏠릴 지는 좀 더 두고 보자는 것이다.

대학교수인 정 모씨(52)는 민주통합당에 비판적이었지만 이번에 문 후보 선거대책위원회에 있던 친노(친노무현) 핵심 참모들의 일괄사퇴를 보고 민주당이 뒤늦게 정신을 차린 것 같아 마음이 흔들리고 있다“고 말했다.

호남에서는 여전히 야당이 월등히 우세하지만 마음을 놓고 있을 수만은 없다.

민주당 문 대선 후보측이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되고 27일부터 이해찬 전 대표와 박지원 원내대표를 각 지역 선거운동에 투입하기로 해 논란이 일고 있다.

당 안팎에선 이 전 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의 퇴진이 사실상 안철수 전 후보측의 요구로 이뤄진만큼 안 전 후보가 후보직을 사퇴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주요 역할을 맡기는 것은 안 전 후보 측을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당 관계자는 “안 전 후보 측의 압박에 등 떠밀려 물러난 이 전 대표가 안 전 후보의 사퇴를 계기로 컴백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라며 안 전 후보를 껴안겠다는 다짐과도 거리가 멀다고 지적했다.

안 후보측은 16일 “국민들 사이에서 또 민주당 내부(새정치위원회)에서 혁신 과제로 제기된 내용이 있다”며 사실상 이 전 대표의 퇴진을 요구했고,이 전 대표 등은 18일 사퇴했었다. 안 전 후보 측 핵심 관계자는 26일 “자극을 받나,안 받나 찔러보는 거냐,뭐냐”라며 불쾌해했다.

유세 첫날부터 불 뿜는 난타전은 박정희, 노무현 대리전 양상을 띄워 대선정국은 요동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