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만길 지역농업연구원장

성군의 시대에 태평성대를 구가하고 있다고 판단한 한 무제는 봉선을 행하기로 결심한다. 미증유의 의식인 봉선은 위대한 황제가 천지신명께 제사를 올리는 의식이라 태평성대를 구가한 황제 즉 성천자만이 봉선을 할 수 있었다. 이때 사기를 쓴 사마천의 아버지 사마담은 황제의 일상을 기록하는 태사령 직에 있어  황제의 봉선에 동행할 것으로 확신했으나 부름 받지 못했다. 봉선에 동행하는 것은 더할 나위없는 영광이었고 참여하지 못하는 것은 억울한 일이었다. 사마담은 분하고 억울한 나머지 스스로 분사했다. 죽기 전에 아들인 사마천의 손을 부여잡고 유훈을 남긴다. “천자께서 태산에서 봉선의 예를 올리는데 내가 참여하지 못하는 것은 하늘의 뜻으로 돌릴 수밖에 없구나. 너는 내 뒤를 이어 태사가 될 것이니 내가 저술하려던 것을 잊지 말고 마무리하거라”하고 분사했다.

사마천은 과연 아버지의 예상처럼 태사의 직위에 오르게 되었는데  불과 5천명의 병력으로 흉노와 전투를 하다 항복한 이릉을 변호하다 한 무제의 노여움을 사 사대부로서 가장 치욕적인 궁형에 처하게 된다. 궁형은 남자의 성기를 제거하는 거세를 일컫는다. 당시 사대부가 궁형을 당한다는 것은 씻을 수 없는 치욕으로 여겨 자결을 택해야 마땅했다. 하지만 사마천은 죽음으로 유훈을 남긴 아버지의 비참한 모습을 잊을 수 없었다. 눈물을 흘리고 죽어가며 자신의 손을 부여잡은 채 「사기」를 저술하라던 아버지의 유훈을 결코 잊을 수 없어 부끄럽고 치욕적인 목숨을 연명했다. 아버지의 유훈과 자신의 억울함, 수치스러움 등 온갖 감정이 뒤섞이고 교차하며 밤낮으로 매달려 인류 역사의 위대한 기록물 「사기」를 완성했다.

새삼스레 널리 알려진 사마천의 궁형 얘기를 하는 것은 대한여의사회장 출신인 새누리당 박인숙 의원이 성폭행범에게 물리적 거세를 하자는 법안을 제출했기 때문이다.

박인숙의원의 법안은 국민들에게 수치스러움을 안겨줬다. 그 이유를 살펴보자.

첫째, 인간과 사회집단이 하나의 행위를 할 때는 합당한 규칙과 그 행위의 정당성이 있어야 한다. 규칙이 상식과 보편타당성에 근거해야 하고, 인류역사의 오랜 선험에 비춰 볼 때 정당성을 잃은 행위나 권력자와 집단의 광기가 재현되면 안  된다. 그런 의미에서 아무리 중죄를 지어도 단두대로 보내는 극형, 중세 마녀사냥에 주로 이용했던 화형과 같은 처벌은 그 정당성을 상실했다. 사마천에게 행해진 궁형 즉 거세 역시 인간의 신체를 훼손하는 신체형으로 함무라비 법전이래 수 천 년의 역사를 거치면서 반윤리적인 처벌로 정당성을 상실한 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둘째, 헌법에 정한 국민의 기본권 조항을 침해한다. 헌법은 인간의 존엄, 이중처벌 금지, 신체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거세 즉 궁형은 신체의 자유를 속박하는 구금이라는 처벌과 함께 거세라는 형벌이 추가되는 이중처벌에 해당한다. 헌법의 정신을 정면으로 위배하는 것이다. 성폭행범의 처벌은 엄격해야 하지만 어떤 범죄도 인간의 존엄과 헌법의 정신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

셋째, 형평성의 문제다. 성폭행범에게 거세형을 한다면 도둑질한 자는 손목을 자르고 상습사기범은 혀를 자르고 성매매를 한자는 남녀불문하고 거세를 해야 한다는 논리와 다를 바 없다.

넷째, 이 법안은 그 중요성에 비춰볼 때 역사적 경험, 보편적 인권과 상식, 헌법 정신, 법률의 변화, 역사발전의 과정, 윤리문제 등 중대한 담론을 통하지 않아 거론하는 것 자체가 황당하기 그지없는 법안이다.

다섯째, 21세기 선진국에 진입하는 대한민국이 성폭행 범죄를 줄이기 위한 대안을 마련하지 못하고 국회에서 가장 원시적이고 반인륜적인 거세를 거론한 것 자체가 나라 망신이고 국제적 수치란 점이다.

여섯째, 대부분의 강력범죄가 그렇지만 특히 성폭행 범죄는 저소득층, 저학력층, 사회적 약자들에 의해 주로 발생한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성폭행 범죄는 우리 사회의 내부 모순과 맞닿아 있다. 가진자, 고학력자, 지도층은 불법인 성매매를 버젓이 하고 있지만 이들에게 거세형을 하자는 얘기는 들어 본 바 없다. 억눌리고 힘없는 자들이 그들의 성적 욕구를 더 힘없는 여성이나 청소년에게 행하는 이 비극적 범죄 현상을 거세형이라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극형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발상에 기가 막힐 뿐이다.

이뿐 아니라 극히 일부지만 여성의 성폭행 범죄에 대한 처벌은 없고 오로지 남성에게만 해당돼 법률정신에 맞지도 않고, 선정적·감정적 포퓰리즘 법률안인데다, 거세형에 처할 대상이 누군지 계량하기 어렵다는 점 등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새누리당 박인숙 의원은 국회의원이자 여의사회장이다. 그가 의학을 배울 때 의료기술과 함께 인성, 역사, 철학과 윤리, 법정신에 관한 제대로 된 책 한 권이라도 읽었는지 의심이 갈 수밖에 없다. 생명을 살리라는 의사가 21세기 국회에서 거세형을 입법 발의하는 초유의 사태 앞에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다.

만약 국민들의 기대와 동떨어진 국회의원들의 뇌를 적출하는 거뇌작업을 하자면 감정상 살아남을 수 있는 국회의원이 과연 몇 명이나 되겠는가. 감정이 그렇다고 국회의원을 그렇게 하면 절대 안 되는 것과 같은 이치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