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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

황만길 지역진흥원장

상처받지 않은 삶은 없다. 상처받지 않고 살아야 행복한 것도 아니다. 누구나 다치면서 살아간다. 우리가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은 세상의 그 어떤 날카로운 모서리에 부딪쳐도 치명상을 입지 않을 내면의 힘, 상처 받아도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정신적 정서적 능력을 기르는 것이다. 그 힘과 능력은 인생이 살만한 가치가 있다는 확신, 사는 방법을 스스로 찾으려는 의지에서 나온다. 그렇게 자신의 인간적 존엄과 인생의 품격을 지켜나가려고 분투하는 사람만이 타인의 위로를 받아 상처를 치유할 수 있으며 타인의 아픔을 위로할 수 있다.

윗글은 유시민이 새로 낸 책 뒷 표지에 실린 내용이다. 유시민이 책을 냈다. 단순히 책을 낸 것이 아니고 또 책을 냈다. ‘또’를 강조하는 것은 유시민이 많은 책을 냈기 때문이고 이번 책이 담고 있는 사유가 전과 다르기 때문이다.

그가 책을 쓰면 항상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가 쓴 책을 관통하는 주제와 방식은 ‘이렇게 살자’였고 ‘이렇게 살아라’였다. 똑똑한 자유주의자인 유시민은 그의 인생경험과 거기서 우러나온 세계관, 가치관에 근거해 왜곡되고 모순된 사회현상을 꿰뚫고 사회가 ‘이렇게 돼야 한다’고 힘주어 강조했다. 방식은 항상 직선적이었기에 말과 글이 옳았지만 참 ‘싸가지없다’는 소리를 무수히 들어야 했다. 왜곡되고 모순된 사회에 던지는 그의 말과 글이 틀린 게 없었으나 ‘싸가지 없다’는 한 마디에 그의 옳은 얘기도, 건강한 사유도,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소중히 하는 그의 마음도 제대로 이해되지 못했다.

사람들은 때론 내면보다는 피상에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유시민을 대하는 사람은 언제나 진짜 유시민보다는 소위 그를 씹는 사람들의 거울을 통해 굴절된 유시민을 봐야했다. 직접 그를 보고 그의 책을 진지하게 성찰한 사람은 열광했지만 나머지 대중은 왜곡된 정보로 그를 씹으며 돌을 던졌다. 유시민이 왜 욕을 먹어야 하는지, 왜 돌을 맞아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들은 영문도 모른 채 돌을 던졌다. 싸가지 없으니 맞아도 싸다는 여론재판에 동조했다. 과연 유시민이 싸가지가 없기는 한 것인가? 그의 인격과 가치를 생채기로 뒤덮어 논 그 ‘싸가지 없음’의 실체는 무엇일까?

국회에 입성한 첫날 그는 온통 검정색 양복으로 뒤덮인 국회의사당에 흰색 면바지를 입고 등원했다. 선배, 동료 국회의원들은 “흰바지를 입고 왔네”라고 말하지 않고 “어 저것 봐, 국회가 어느 곳인데 감히 빽(백)바지를 입고 와. 참 싸가지 없네”라고 말했다. 다음날 언론은 싸가지 없는 유시민, 빽바지 유시민만 대서특필했다. 똑똑하고 올바른 유시민은 사라지고 오직 “빽바지와 싸가지 없는”만 부각되었다. “검정 양복입고 등원하지 왜 그랬어”라고 말을 건네는 이해심 많은 동료 의원에게 유시민은 “죄송합니다”라고 말하지 않고 “어때요? 깔끔하고 이쁘 잖아요”라고 말했다. 그러니 싸가지 없다는 소리를 또 들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격식과 형식에 얽매이지 않았고 점잖은 자리에서도 의자를 뛰어넘어 다니는가 하면 몸놀림은 가벼웠다. 모든 게 ‘싸가지 없는’유시민을 만드는 구성요소였기 때문에 분명 그의 겉모습은 참신하다기보다 ‘싸가지 없다’로 표현되기에 적합했다.

그런 그가 쉰다섯의 나이에 또 책을 냈다. 「어떻게 살 것인가」. 책의 제목이다. 지금껏 똑똑한 유시민이 왜곡되고 부조리한 사회와 현실을 향해 ‘이렇게 살자’ ‘이렇게 살아라’를 강조했다면 쉰다섯에 「어떻게 살 것인가」를 들고 온 것이다. 세상을 다 아는 듯, 자신을 다 아는 듯 살던 그가 ‘어떻게 살 것인가’ 라고 물음을 던진 것이다.

전공을 택할 때 잘못된 사회를 공고히 하는 집단이 법조인이라고 생각 법학보다 경제학을 택했고, 불의한 세상에 분노해 학생운동을 했고, 그 덕에 콩밥도 두 차례나 먹어야 했다. 괜찮은 정치를 해 보겠다고 욕도 많이 먹었고, 정치에 입문해 역할도 했지만 논란의 중심에서 대통령이 되지 못했으니 현실정치에서 실패했다. 그는 사랑하던 노무현 대통령도 잃었고 상처 가득한 몸으로 직업으로서의 정치를 떠났다.

나는 유시민과 견해차이가 있었다. 그가 ‘싸가지 없다’는 소리를 들을 만한 요소도 분명 있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좋게 보면 격식에 얽매이지 않는 장점이었다. 그리고 본질은 매우 감성적이고 따스한 사람이었다. 나도 유시민과 비슷한 길을 걸으며 상처 받았다. 유시민의 말처럼 상처받지 않은 삶은 없다. 상처를 가장 많이 받은 그가 ‘상처받지 않은 삶은 없다’고 타인의 삶을 배려하는 모습이 애틋하다.

「어떻게 살 것인가」를 들고 온 그가 339쪽 내내 한 얘기는 긍정의 삶과 긍정의 죽음이다. 상처 받은 이들의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