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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문사와 경단

윤복순 윤약국 약사

청도 운문사에 다녀왔다. 오래 전부터 가보고 싶었지만 멀다는 이유로 쉽게 기회가 되지 않았다. 동대구를 지나면서는 국도를 이용했다. 조금은 느리게 하나하나 눈에 마음에 담고 싶었다. 햇살좋은 날 가보고 싶었던 곳을 쉬엄쉬엄 찾아 가는 것은 행복이다.

운문사 입구의 솔밭이 참 좋다. 기골이 장대한 아름다운 소나무다. 전체도 아름답고 한 그루 한 그루도 개성이 있으면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자세히 보니 모든 나무가 상처를 안고 있다. 일제 때 송진을 채취해간 상처다. 아픈 역사를 보았다.

운문사 경내에 들어서니 500살 된 처진 소나무가 반긴다. 이 소나무는 나이와 상관없이 영원한 젊음을 뽐내고 있다. 공원의 소나무나 산의 소나무들이 겨울을 이겨 내니라 초췌한 모습인데 이 나무는 전혀 그런 기색이 없이 청청하다.

오백 살의 젊음, 나는 그 소나무에 예를 다하여 인사를 했다. 이 반송은 나이도 나이려니와 그 규모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거대하고, 웅장하고, 기품이 있고, 우아하고, 싱싱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찬사를 다 받쳐도 모자랄 것 같다. 당당한 노거수 앞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법정 스님은 비로전의 부처님한테서 인간적인 호감을 느낀다고 했다. 얼굴 모습도 여느 불상과 달리 시골 장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표정이고, 오랫동안 가부좌로 앉아 계시니 다리가 저려 슬그머니 바른쪽 다리를 풀어놓은 모습이 아주 인간적이라는 것이다. 나는 반야용선을 타고 극락에 가기 위해 밧줄을 잡고 있는 악착동자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운문사는 비구니 학승들의 승가대학이다. 새벽에 치러지는 아침예불이 장관이라고 한다. 200명이 넘는 여승들이 경전을 읽는 소리는 어떨까. 어느 합창단의 노래보다 아름다울 것 같다. 이것을 보기 위해선 하룻밤을 이곳에서 자야 한다. 거창할 거란 상상은 되었다. 상상만으로도 행복했다.

사리암으로 향했다. 사리암은 산기슭의 암자로 간신히 바위에 매달려 있는 것 같다. 한 시간 정도 걸어서 그 곳에 갔다. 암자에서 점심을 보시한다고 해 나도 공양간 앞에 줄을 섰다. 절에서 밥을 얻어먹기는 처음이다.

식당 기둥에 경단은 OOO불자가 PGA에 출전할 수 있는 자격을 획득하여 보시한다는 내용의 안내문이 붙어 있다. 나는 그 사람이 메이저대회에서 우승하기를 빌며 식판에 밥과 반찬을 받았다.

밥을 먹는데 딸이, 우리가 늦게 왔기에 경단은 떨어졌는가 보다고 했다. 남편은 경단이 떡이 아니라 OOO불자의 법명인 것 같다고 했다. 나는 경단이 절 식당의 식단을 의미하는 줄 알았다. 그래서 오늘 점심은 그 사람 덕분에 먹는다고 생각 했다. 사위도 떡이 아니냐고 한 마디 거든다.

우리는 이렇게 나름대로 해석을 했다. 정말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경단이 떡은 아닐 것 같았다. 주말에 오는 사람이 얼마일까를 주지 스님과 상의해 충분히 준비했을 거란 생각에서다.

집에 와 찾아보니 경단(經單)은 특별한 법회를 갖기 전에 강설에 쓰일 경전의 이름을 써붙여 여러 사람에게 알리는 누런 종이 쪽지란다. 하나씩 알아가는 기쁨도 크다.
그날의 불경은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이런 내용이 아니었을까. 언젠가 메모해 둔 ‘더 없는 행복에 대해서’ 석가모니께서 말씀하신 것을 소리 내어 읽어 본다. 불경은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로 시작된다.

어리석은 사람을 가까이 하지 말고 어진 이와 가깝게 지내면서, 존경할 만한 사람들을 존경하라. 이것이 더없는 행복이니라. 자기 분수에 알맞은 곳에 살고 일찍부터 덕을 쌓으면서 바른 서원을 세우고 살아라. 부모를 섬기고 처자를 사랑하며 친척을 보살펴라. 일에 앞뒤의 순서가 있어 뒤섞이지 않도록 하여라. 악을 싫어해 멀리하고 술을 절제하고 덕행을 소홀히 하지 마라. 존경과 겸손과 만족과 감사한 마음을 지니고 때때로 가르침을 들어라. 거친 세상일에 부딪쳐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걱정과 티가 없어 안온한 것. 이것이 더없는 행복이니라.

언제든 운문사의 새벽 예불을 들어보고 싶다. 불자가 아닌 나도 예불을 듣는다면 큰 환희심이 일어날 것 같다. 내 삶에 해보고 싶은 것이 하나 더 늘었다. 이런 소소한 작은 소망들이 삶에 활력이 되고, 그런 활력이 세상 살아가는 재미가 아닐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