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수삼(趙秀三, 1762-1849)이 지은 추재기이秋齎紀異에 일지매의 이야기가 있다.

일지매는 도둑 중의 협객이다. 매양 탐관오리들의 부정한 뇌물을 훔쳐 목숨을 연명하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누어 준다. 처마와 처마 사이를 날고 벽에 붙어 날래기가 귀신이다. 도둑을 맞은 집은 어떤 도둑이 들었는지 모를 것이지만 스스로 자기의 표지로 매화 한 가지를 붉게 찍어놓는다. 협의를 남에게 옮기지 않으려는 까닭이다. 일지매는 잡히지 않는다. 게다가 매화꽃을 남겨 남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하였다니 멋있지 않은가?

법은 절도를 금한다. 성경의 십계명 중 여덟 번째 계명이 「도둑질 하지마라」이며 고조선의 팔조금법에도 「도둑질 한 자는 노비로 삼는다」는 내용이 있다.

절도가 용인된다면, 즉 개인의 재산을 보호해주지 않으면 사회체제가 붕괴된다. 그러기에 절도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회적 금기다. 하지만 인간의 내부에는 절도에 대한 은밀한 욕망이 자리잡고 있다. 절도는 적은 비용으로 많은 먹이를 획득하고자 하는 생명체의 생존욕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따라서 사회적 금제 시스템이 무너졌을 때 절도를 향한 욕망은 거침없이 드러난다.

절도는 범죄지만 인간은 한편으로 그 범죄를 합리화 한다. 절도의 합리화는 부조리한 사회, 주로 재화의 분배에 있어 불공평한 사회를 전제로 한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절도행위자인 도둑을 찬미하기도 한다.

지위를 이용한 고위 공무원의 부정축제와 부잣집 담장을 넘는 밤손님의 행위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가. 만약 그 도둑이 넘은 담장이 부정한 돈으로 쌓아 올려진 것이라면, 월장은 드디어 미화되고 찬양받는다. 혹 그 도둑이 약탈물을 달동네에 던져주기라고 하면, 그는 의적義賊으로 다시 태어나 급기야 전설이 되고 소설이 된다. 이러해서 가난한 우리는 일지매에 빠져들고, 장길산에 열광하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