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 사람들 > [독자기고] 벌거벗은 임금님과 고다이바, 그리고 칼레의 시민

[독자기고] 벌거벗은 임금님과 고다이바, 그리고 칼레의 시민

익산시민 유 성 무

안데르센의 단편동화 <벌거벗은 임금님>은 허영에 가득 차서 어리석음을 범하는 권력자와 이에 동조하면서 진실을 왜곡하는 어른들을 조롱하는 이야기다. 안데르센이 어른들을 위한 정치적 은유로 이 동화를 썼다고 말하면 나의 지나친 논리적 비약일까? 지도자의 어리석은 기준을 권력의 최상층부터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면 결국 수많은 사람들의 이성이 마비될 수 있음을 경계하고자 한 것이라고.

벨기에의 수도 뷔르셀 중심에 위치한 광장인 그랑 팔라스에는 고다이바(Godiva)라고 하는 최고급 초콜릿 회사의 본점이 있다. 그런데 ‘고다이바’라는 초일류 브랜드는 영국의 전설에서 유래됐다. 고다이바는 11세기 영국의 코번트리 지역을 다스리던 영주의 부인이었다. 그녀는 영주인 남편이 주민들에게 혹독한 세금을 부과하자 이에 대한 시정을 요구하였다. 계속 거절하던 영주는 고다이바에게 벌거벗은 상태로 말을 타고 마을을 돌면 세금을 내리겠다고 했다. 그러자 고다이바는 진짜 나체로 말을 타고 마을을 돌았다. 그녀의 헌신에 감동한 주민들은 그녀가 마을을 도는 동안 한 명도 밖으로 나가지 않았고, 집집마다 커튼을 내려서 그녀의 모습이 보이지 않도록 예를 갖췄다고 한다. 그 후 고다이바는 고귀함과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상징이 됐고, 이름이 상업적으로 이용되면서 엄청난 파워 브랜드가 됐다.

현실에서야 정말 벌거벗고 다니는 권력자와 그를 보고 멋진 옷을 입고 다닌다고 찬사를 보내는 사람들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우리는 안데르센의 벌거벗은 임금님을 실제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권력자는 아무리 현명하고 스스로에게 엄격해도 권력의 속성상 유혹에 흔들리기 쉽다. 권력자는 보이지 않는 옷으로 현혹하고 사슴을 말로 바꾸고자 하는 자들과 끊임없이 만나기 마련이다. 만에 하나 권력자가 간언(奸言)에 넘어가고 거기에 권력자를 올바르게 이끌어야 할 사람들이 소신을 버리고 침묵하면, 필경 사슴이 말로 바뀌는 것을 넘어서 실제로는 없는 호랑이까지 만들어지게 된다. 이로 인하여 권력자는 벌거벗는 것보다 더 수치스러운 어리석음을 드러내게 된다. 그 치욕적인 이름을 청사(靑史)에 길이 남기게 되니, 벌거벗은 임금님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이것이 권력자가 항상 외부의 바른 소리에 귀 기울이면서 자신을 성찰해야 하는 이유다. 당나라의 현종은 태종 이세민의 ‘정관의 치’에 이어서 ‘개원의 치’라고 불리는 제2의 황금시기를 구가하였다. 그가 양귀비와 간신들에게 빠지기 전까지! 그가 성군일 때 명신 한휴(韓休)가 지독하게 잔소리를 했던 모양이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이 한휴의 잔소리에 시달려서 마르더라도 천하와 백성이 살찌면 여한이 없다고 했다. 이처럼 무려 25년 동안 명군이었던 현종도 한 번 잘못된 길에 들어서 나라를 망쳤으니 보통사람들은 어떻겠는가?

나는 박경철 시장이 6.4 지방선거에 출마하기 전에 출판한 <칼레의 시민을 찾습니다>라는 책을 읽어봤다. 이 책은 잉글랜드의 보복으로부터 프랑스의 칼레 시민들을 구하기 위하여 잉글랜드 왕 앞에서 죽기 위해 나섰던 칼레의 의인(義人) 7명에 대한 감동적 실화로 시작된다. 아마도 박 시장은 이 책을 쓰면서 난관에 봉착한 익산을 위하여 칼레의 의인들처럼 자신이 앞장서서 모든 것을 헌신하겠다는 결의를 불태웠을 것이다. 마침내 2014년 6월 4일 익산시민은 박 시장을 칼레의 시민으로 선택했다. 이제 박 시장은 자신이 칼레의 시민임을 익산시민에게 증명해야 한다.

박 시장이 칼레의 시민임을 증명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자살이라는 극단적 소통방법으로 6인의 칼레 지도층들에게 대의를 촉구했던 유스타슈 드 생 피에르가 보였던 멸사봉공의 자세를 잃지 않으면 된다. 또 고다이바처럼 어려운 사람들을 위하여 그리고 올바른 것을 위하는 일에 있어서는 인간 박경철과 익산시장 박경철의 권위를 내려놓으면 된다. 무엇보다도 여러 사람들 특히 공무원들이 시장에게 바른 말을 여과 없이 할 수 있도록 하고, 이를 기꺼이 받아들임으로써 벌거벗은 임금님의 우를 범하지 않으면 된다.

박 시장은 시민운동을 할 때의 기억과 뜨거웠던 열정을 잊지 못할 것이다. IMF사태 당시 정책자금을 유치하고 보배도시가스의 시영기업화를 위해 나섰던 일. 부도난 임대아파트 주민 등 어려운 시민들을 위해 현장에서 함께 뒹굴었고, 송원백화점 입주상인들을 위해 용역깡패들과 홀로 온몸으로 맞섰던 일. 그 외에도 대의를 위하여 자신의 자존심을 꺾었던 일들이 많이 있었다. 비록 세월이 흘렀지만 그 때의 기개와 열정은 여전히 끓어오르고 있을 것이다. 박 시장이 칼레의 시민이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하지 않는 이유다.

이제 박 시장에게 칼레의 시민이 되는 데 필요한 것은 하나다. 누구나 박 시장과 시정에 대하여 기탄없이 대화하고 논쟁하면서 올바른 방법을 도출할 수 있도록 하는 소통의 리더십이다. 그런 풍토를 만들려면 무재칠시(無財七施)의 교훈 하나 하나를 실천해야 한다. 칼레의 시민은 홀로 작은 꿈을 꾸지 않는다. 모두의 지혜를 모아서 큰 꿈을 이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