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필 희망연대 대표
제일한의원 원장

이번에 첫째 딸내미가 수능을 쳤다. 그런데, 이상하게 내가 괜히 하루종일 떨리고 조마조마했다. 친척이나 다른 집 애들이 수능을 볼 때는 “수능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잖아”라고 쿨하게 생각했고 “뭐 공부 잘할 수도 있고 못할 수도 있지”라고 말하곤 했는데, 내 아이가 수능을 치니 느낌이 확실히 달랐다. ‘잘 봐야 할텐데, 못 보면 안되는데, 준비는 잘 했나?’하는 불안감이 들었다.

어떤 경우든 내 경우가 되면 다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내 일이 아닐 때는 쉽게 말하고 좋은 말, 옳은 말, 도덕적인 말, 듣기 좋은 말을 늘어 놓지만 막상 그 일이 내 일이 됐을 때는 달라지는 것이다.

이런 내 모습을 보니 한심하기도 하고 어처구니 없기도 했다.

사실, 나는 말과 행동이 다른 경우를 무척 싫어하고 잘 비판하는 편이다. 과거의 내 모습이기도 했고 아직도 여기에서 자유롭지 못하며 진보운동을 한다는 사람들이 가장 범하기 쉬운 모순이기에 그렇다.

내가 진보에서 중도로 생각을 전환해 간 결정적 이유도 이것 때문이다. 실제로 진보이론 중에는 많은 이론들이 목적을 위해서는 어떤 것이든 정당화시켜 버리는 이론들이 많다. 같은 잘못도 진보인 내가 하면 좋은 것을 가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 되고 남이 하면 모순이며 비리이며 비정상인 것이다.

이런 모습을 너무도 많이 봐 왔고 나 역시 이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기에 항상 벗어나고 싶었다.

그런데, 이런 모순을 딸내미의 수능을 대하면서 보인 것이다. 부끄러운 일이다.

그럼, 무엇 때문에 이를 바로 잡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함에도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는 것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원칙이 없어서이다. 단순한 지행일치(知行一致) 사고의 문제가 아니라 당면 문제에 대한 나름의 원칙과 소신이 없거나 약하기 때문이다.

좀 쉽게 이야기 하면, 아이 교육에 대한 나름의 원칙과 소신이 없거나 약했다는 말이다. 자식교육을 어떻게 시킬 것인가? 교육의 목표는 무엇이고 반드시 지켜가야 할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원칙이 명확하지 않다보니, 말로 떠드는 것과 그것이 내 자신의 일이 되었을 때 행동을 합치시키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는 많은 경우, 재야에 있을 때는 그렇지 않다가 막상 지도자가 되었을 때 실망을 주는 경우를 많이 본다.

먼 데서 찾지 않더라도 박경철 전 시장만 해도 그렇다. 많은 단점에도 불구하고 11전 12기의 인내력과 도전정신, 그리고 나름의 청렴함이 장점이었던 박 전 시장이 당선 후 보여준 모습은 상상 이상이었고 우리를 실망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럼, 박 전 시장이 왜 이렇게 됐을까? 원래 나쁜 사람이어서? 능력이 부족해서? 아니다. 시장에 대한 나름의 원칙과 소신이 준비되지 못했고 충분하지 못했다. 시장에 대한 바람은 강했으나 시장이 된다면 어떤 원칙과 소신을 가지고 어떻게 시정을 풀어갈지에 대한 준비가 부족했다. 그 오랫동안 도전했지만, 사실은 가장 중요한 것이 빠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이런 모습을 박 전 시장에게서만 발견하지 않는다. 의외로 많은 사람에게서 발견한다.

현재 당선되어 의정활동을 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마찬가지 모습이 보이며 시정이나 의정에 도전장을 내밀고 싶어 하는 여러 사람들에게서도 이런 모습을 본다. 그저 “좋은 기회이다”가 전부인 경우가 많아 보인다.

그 동안 익산은 사실상 한 당이 독점하다시피 했기에 크게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지 비전이나 소신, 원칙이 도대체 무엇인지 알기 힘든 지도자들이 너무도 많다.(박 전 시장은 그 구도가 깨졌기에 드러난 것뿐이다.)

어떤 이는 공약에 다 나와 있지 않냐? 라고 반문하지만 공약은 선전을 위한 것이기에 일부 반영은 하지만 그의 원칙과 소신을 제대로 보여 주지 못한다. 오히려 원칙과 소신은 그동안 그가 해 왔던 모습과 방향성에서 잘 드러난다.

진정 그가 준비되어 있었다면 분명한 방향성이 이미 다른 과정에서 드러나게 되어 있다.

나는 이런 지도자를 원한다. 아니 이제는 이런 지도자를 발굴하고 찾아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