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 사람들 > 냉장고와 먹방

냉장고와 먹방

(사)한국예총 익산시회장

김영규

오늘날 각 가정에 냉장고가 없는 집은 거의 없을 것이다. 냉장고와는 별도로 김치냉장고, 제빙기, 냉수 정수기 등 2~3대 더 갖고 있는 집도 많아 그야말로 냉장고는 현대인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생활필수품이다.

냉장고는 언제 먹을지도 모르는 음식물을 저장·보관하기 위하여 하나, 둘 늘어나고 용량도 커지고 있으니- 시장에 가면 냉장고에 먹을거리를 그득 채워야겠다는 욕심에 많은 먹거리 재료를 사게 되는데 이미 냉장고에는 무엇인가 가득 차 있어서 용량이 적은 냉장고를 탓하기 일쑤다. 결국 잘 먹지 않는 것은 끄집어 정리하고 이번에 사 온 것으로 채워서 냉장고를 정리한다.

필자는 사십칠 년 동안 가정을 꾸리면서 다투는 일이 있다면 음식물 때문이다. 소중한 음식을 먹지 않고 냉장고에 오랫동안 방치 후 버린다는 것은 “천벌을 받을 것이다”라는 나의 악담에 무대응으로 대접받는 나는, 소심하고 옹졸한 남편으로 평가받는다.

냉장고에서 버림받은 음식재료들은 대부분 별도 구입할 계획이나 생각이 없다가 세일한다는 유혹에 이끌려 사게 된 생선이나 고기, 가공식품 등이 대부분이다. 이와 같이 오랫동안 냉장고에 넣어둔 음식물들은 낭비와 더불어 음식물 쓰레기 양산의 신호탄이요, 가족의 건강을 위협하는 출발점이자, 원인제공이 분명하다.

시장에 가기 전에 냉장고에 남아있는 식품들을 확인하고 꼭 필요한 재료들을 메모한 뒤 충동구매를 하지 않고, 조리할 때에도 가족의 식습관을 고려하여 약간은 적은 듯 장만해야 하지 않을까 작은 소리로 혼자서 중얼거려 본다.

식품을 적당히 구입하여 빨리 순환시키는 것이 가족의 건강을 지키고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는 첩경이 아닐까? 더구나 요즈음은 외식도 잦고 기타 먹거리도 많아 냉장고 의존도가 점점 떨어지고 있다고 본다.

필자는 오십여 년 동안 중앙동 내 집 가까이 위치한 K만두가게와 중앙시장 한복판 J순대국밥을 다녔다. 얼마 전 무심코 들렸다가 손님들이 줄 서서 기다리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으니- 유명 요리사가 출연하는 중앙 TV 방송에 소개가 돼서 손님이 몰려온다는 것이다.

먹는 거, 요리하는 것을 보여주는 방송을 ‘먹방’이라고 부른다나? 청소년들의 신조어, 줄임말에 세대차를 느끼지만 무척이나 재미있는 말이 분명하다. 얼마나 오랫동안 살아남을지 모르지만, 맛있는 음식 먹겠다고 우르르 몰려가서 먹는 걸 “먹방 찍는다”라고 한다나? 유명하다는 맛집 찾아가 먹방 찍는 게 요즘 유행하는 풍속도 가운데 하나임이 분명한데 ‘등잔 밑이 어둡다’고 자주 찾아가는 우리 지역 맛집을 그동안 모르고 살았다.

관심을 갖고 보니 TV 프로 여기저기에서 놀랄 만치 먹방 프로가 많이도 방영된다. 전통적인 맛 기행이나 음식 만드는 요리 방송이야 예전에도 있었으니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지만 그 수가 많아진 것은 분명하다. 여기에 기획력을 가미하여 유명 연예인 집에 냉장고를 가져다가 그 안에 있는 재료만으로 요리경연을 벌인다든가, 남자 연예인만을 출연시켜 음식을 만들게 한다든가, 무인도에서 재료를 구하여 남자들만이 음식을 만들게 하는 식으로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아 겉모습만으로 알 수 없었던 연예인들의 음식 솜씨가 화재가 되기도 한다.

최근 부쩍 늘어난 먹방은 유선방송이 활발해진 환경과 홀로 사는 가구, 결혼을 미루고 거부하는 원룸 세대들의 사정이 크게 작용하지 않았나 짐작해 본다. 음식을 해 먹으려 갖가지 재료를 구입해 놓고 손도 못 대고 버리는 경우가 많고 외식이 편리하고, 더욱 싸게, 더욱 맛있는 것 등 이와 같은 수요가 먹방을 키웠을 것이다.

먹방 덕에 음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집에서 만들기 어려운 음식을 맛보기 위하여 외식하고, 다른 집은 파리 날리는 판에 먹방 덕에 손님이 길게 줄을 서는 음식점은 즐거운 비명을 지르는 아이러니, 자영업자가 넘쳐나는 우리 익산에 다행한 일인지- 세상이 온통 먹는 이야기뿐인가 싶기도 하고, 심지어 군대나 정글에서 스스로 자급, 견뎌내는 생활에서도 먹방을 진행한다.

우리가 사는 데 제일 중요하고 기본이 먹고사는 문제가 아닌가 한다. 매사에 모두 다 먹고살자고 하는 짓이니 이해하여 달라고 말한다. 선거의 계절이 다가오니 정치인들 모두의 제일 큰 공약이 먹는 것에 치우쳐 있음을 본다. 아마 이들 모두도 먹방을 준비하여 이용해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먹어대고 줄을 서야 하는 배고픔이여! 먹는 것 말고 즐거운 일이 별로 없는 사회가 오늘이 아닌가 싶다.

먹는 것을 적당히 구입하여 빨리 순환시키는 것이 우리 가정, 우리 사회의 건강을 지키고 음식물 쓰레기 줄임이 거창한 환경운동을 하는 것보다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