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대한민국은 국토, 인구, 자원의 부족과 함께 남북 분단이라는 치명적 한계를 넘어 선진국 대열에 합류했다. 잔악한 일제의 국권수탈과 한국전쟁, 독재·부패 세력의 장기 집권을 딛고 이뤄낸 일대 쾌거가 아닐 수 없다. 오롯이 국민의 피땀과 눈물, 헌신으로 세계사에 유례없는 성장을 이뤄냈다.

국력 신장을 이끈 국민의 화합과 통합! 21세기 통일 한국의 영광 실현에 필수적인 양대 동력이다. 화합(和合)은 ‘화목-서로 뜻이 맞고 정다움-하게 어울림’을 말하며, 통합(統合)은 ‘여러 요소들이 조직되어 하나의 전체를 이룸’을 뜻한다. 화합과 통합은 언뜻 보면 비슷하지만, 그 성격이 다른 말이다.

나는 국민적 차원에서 볼 때, 화합은 어느 정도 집단적 폐쇄성이 있는 개념이라고 생각한다. 통합은 상이한 성격의 집단이 상위 목적을 위해 결합된 개념이라고 본다. 공자가 말한 화이부동(和而不同), 즉 다른 사람이나 집단과 생각을 같이하지는 않지만 이들과 더불어 지낼 수 있는 견제와 협력이 작동하는 조화로운 상태라는 것으로 화합과 통합을 이해한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다른 사람과 집단이 서로 화합하는 일은 없다. 각자의 세계관을 실현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함이 세상 돌아가는 이치다. 개인 또는 집단끼리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고자 세상의 상규(常規), 즉 보편적 정의에 따라 정해진 범위 안에서 다툴 때 역사는 발전한다. 국가의 역동성은 여기서 나온다. 모든 국민이 화합하는 세상은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며, 있어서도 안 된다.

국민의 통합은 개인 또는 집단의 화합과 성격이 다르다. 통합은 크게는 국가의 존립, 작게는 국가의 이익과 관련된 개념이다. 화합할 수 없는 개인 또는 집단이라도, 국가라는 차원에서는 하나로 뭉쳐 국가의 존립 및 국익이란 상위 목적을 달성해야 한다. 여기서 국가의 안녕이 나온다. 국가를 위한 통합에는 어떤 다른 이유도 있을 수 없으며, 통합의 걸림돌은 가차 없이 걷어내야 한다.

최근 다음 대통령을 해보겠다고 나선 자들 중 일부가 국민의 화합과 통합을 위해 이명박·박근혜를 사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명박·박근혜가 벌을 받은 것은 부정부패와 국정농단을 일삼은 죄 때문이다. 거짓으로 국민을 우롱하여 사익을 챙김으로써 개인 및 집단 사이의 반목을 심화시키고 국가의 안녕을 해친, 국민의 화합과 통합을 망가뜨린 반국가범죄를 저질렀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들을 사면시켜야 한다고? 얼마 전 공개된 이명박의 옥중편지를 보라. 그야말로 일말의 반성 기미조차 없다. 이들이 다시 세상으로 기어 나오는 게 국민의 화합과 통합이 된다고? 이게 무슨 개소리인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논리적·감성적·맥락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 화합과 통합을 저해한 자들을 풀어놔야 화합과 통합이 된다니 말이다.

12.12. 쿠데타를 일으키고, 엄청난 학살을 자행하였으며, 온갖 권력형 비리를 저지른 전두환을 보라. 김영삼에게 사면 받은 전두환이 단 한 번이라도 죄를 인정했던가? 단 한 번이라도 독재의 희생자들에게 유감이라도 표명했던가? 하다못해 부정 축재한 금액의 일각에 불과한 추징금을 내는 건 고사하고, 총재산이 21만원이라면서도 호의호식하지 않았던가? 전두환을 사면해서 국민의 화합과 통합이 조금이라도 이뤄졌다고 한다면 소가 웃을 일이다.

수구세력에서 이명박·박근혜 사면을 주장하는 건 그나마 이해가 된다. 큰 악 앞에서는 한없이 약하고 틈만 보이면 탐욕의 이빨을 들이대는 게 그들의 본성이니까! 부패한 권력에 빌붙어 온갖 특혜를 받았던 자들이 또 다시 그런 세상이 오길 원하는 것이니까! 권력형 범죄를 저질러도 적당히 사면 받고 다시 행세하는 오욕의 역사를 정당화시키고 싶을 것이니까!

하지만 민주·진보세력 간판 들고 대통령 하겠다면서 국민의 화합과 통합을 위해 이명박·박근혜 사면을 말하는 자들의 정체는 뭔가? 수구세력의 앞잡이인가, 아니면 수구세력의 환심을 사고 싶은 소인배인가? 이 자들이 이명박·박근혜를 풀어준다고 수구세력과 중도층이 이 자들에게 한 표라도 주겠는가? 그나마 민주·진보 간판보고 찍어줄까 고민하는 사람들마저 등을 돌릴 것이다. 수구세력은 비웃을 뿐이고!

사면을 들먹이는 자들 중에 부패 정권 타도를 위해 헌신했던 자가 있던가? 촛불의 격랑 속에서 민주시민들과 손잡고 촛불혁명의 강을 건너려고 앞장섰던 자가 있던가? 민주시민들의 화합을 도모하고, 국가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국민 통합을 이끌었던 자가 있던가? 대한민국의 새로운 비전을 내놓은 자가 있던가? 없다. 그러기에 반국가범죄를 저지른 자들에 대한 사면을 띄워 지지를 구걸하는 비루한 꼬락서니를 보이는 것이다.

민주·진보 간판 들고 사면을 운운하는 자들은 더 이상 촛불시민들을 열 받게 하지 말고 대선 무대에서 자진하여 내려가라. 어쭙지않은 사면론으로는 대통령 못된다. 사면 아니라 이명박·박근혜를 부모로 모신다고 선언해도 수구세력이 당신들에게 눈길을 주지 않는다. 그러는 동안 민주·진보세력의 화합이 깨지고, 국민 통합을 위한 최소한의 정의마저 산산조각 날 뿐이다. 개소리 하지 말고 생계형 범죄자 사면이나 서민들 신용회복부터 신경 써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