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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강포의 우애

윤약국 약사 윤복순

금요일마다 비가 오고 일요일이면 흐리고 바람이 불어 을씨년스럽다. 일요일에만 야외 나들이를 할 수 있는 나는 햇빛이 그립고 봄이 기다려진다. 따뜻한 봄이 빨리 오길 바라는 마음에서 남도 강진으로 봄 마중을 갔다.

강진은 처음이다. 신고식이 심했다. 꽃샘추위와 봄바람이 나 같은 뚱보도 휙휙 날릴 정도였다. 내가 강진을 알게 된 것은 유홍준 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읽으면서였다. 무려 20여년 뜸을 들이다 가게 된 것이다.

같은 전라도라도 강진은 익산 사람이 하루에 구경하기엔 무리다. 열차가 닿는 것도 아니고 고속도로가 뻥 뚫린 것도 아니어서 운전해야 하는 시간이 많다. 이래저래 지금까지 미루어졌다.
언니는 40여년을 중등 교사로 근무하다 정년퇴직을 했다. 전라남도의 시·군 지역에서 선생을 했기 때문에 어지간한 곳은 다 근무를 해 봤던 곳이다.

언니는 광주에 산다. 열차로 송정리역까지 갔다. 언니와 형부가 마중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새벽에 출발한 우리 부부를 위해 언니는 찰밥을 준비했고 형부는 운전을 했다. 형부도 교직에서 정년퇴직을 했다. 강진은 형부가 교장 선생님으로 근무했던 곳이다.

나는 남도 여행을 할 때는 미리 공부해 가지 않는다. 언니나 형부는 도로부터 시작해 그곳의 문화 역사 등을 잘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학생들 데리고 소풍 갔을 때의 에피소드를 재미있게 얘기해 줘 오랫동안 그곳에 대해 기억할 수 있게 해 준다. 맛있는 식당도 잘 알아서 특색 있는 집에서 점심도 맛있게 먹을 수 있다.

형부는 “우리 처제가 구경 잘 했다고 해야 만족한 여행이 된다” 며 하나라도 더 보여 주려고 하루 종일 운전을 한다.

언니와 나는 다섯 살 터울이다. 내가 중학교 1학년 때 언니는 고 3이었다. 그때 우리는 자취를 했다. 나는 일을 못한다. 언니는 대입 준비로 바쁘니 청소는 나를 시키려 했지만 나는 선머슴이라 언니가 다시 한 번 더 해야 했다. 언니가 많이 봐 주었던 것 같다.

그 당시 일요일마다 집에 가서 쌀과 반찬 등을 가지고 왔다. 버스터미널에서 자취집까지는 걸어서 20여분 거리였다. 언니가 학관 시간에 빠듯하다며 얼른 가서 주인집 아저씨를 보낸다고 했다.

나는 쌀자루를 지키고 있었다. 두 시간은 기다렸을 것이다. 언니는 학원 수업을 다 받고서야 나를 데리러 왔다. 나는 분을 참지 못해 끙끙 앓았다. 정말 열이 펄펄 끊었다. 언니가 “미안하다 잘못했다”며 밤새도록 간호해 줬다.

언니가 섬으로 발령을 받았을 때다. 난생 처음 배를 타 보았다. 얼마나 신이 났던지 배 멀미도 안 했다. 방학 때마다 언니한테 갔었다. 우물 안 개구리였을 내가 언니 덕분에 세상 구경을 했다.

오늘도 강진여행을 할 수 있다. 김영랑선생 생가, 고려청자 도요지, 다산 유물전시관과 다산초당, 만덕산백련사 등을 구경했다. 나는 다산초당에서 시간을 많이 보냈다. 특히 천일각에서 구강포를 오래 바라보았다.

정약용 선생도 이곳에서 강진만을 자주 바라보셨다고 한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강진만은 바다가 아니고, 다산의 고향이자 생가인 양수리 부근 한강변의 생가 뒷동산과 비슷한 느낌을 주는 곳이란다. 천일각은 다산 선생 유배시절에는 없었던 건물인데, 흑산도에서 유배중인 정약전 형이 그리울 때면, 이 언덕에 서서 앞 바다를 바라보며 스산한 마음을 달랬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강진군에서 세웠다고 한다.

형제간의 우애, 부모 자식 간의 사랑 다음으로 큰 사랑이 아닐까. 핏줄로 맺어진 정이다. 언니는 내가 기쁠 때 같이 기뻐해주고, 내가 하고 싶어할 때 경험할 수 있게 도와주고, 비교하지 않고 경계를 허물고 열린 마음으로 언제나 곁에 있어 준다.

언니가 광주에 살기 때문에 남도 여행은 보험에 들어져 있는 기분이다. 다음엔 남도의 어디를 같이 여행할까, 이런 생각만으로도 삶이 풍요로워진다. 이미 영광, 진도, 해남, 장흥, 담양여행을 마쳤다.

저녁 식사는 언니 집에서 했다. 언니의 냉이국은 점심에 마량항에서 먹은 생선회와 매운탕보다 더 맛이 좋다. 약국 때문에 살림 못하는 나에게 이런 저런 밑반찬을 준비해 놨다 준다. 월 화 수 목 금 토 일, 매일 노니까 자주 반찬을 만들어 주겠단다. 정년까지 근무 잘 했으니 앞으로는 동생들도 챙겨주며 살고 싶다고 한다.

굳이 지하철역까지 따라 나온 언니와 형부가 우리 부부가 지하철 타러 내려갈 때까지 손을 흔들며 서 있다. 애절한 마음으로 헤어지지 않고 편안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헤어질 수 있어 행복하고 감사하다.

이 훈훈함이 강진으로 봄 마중 다녀온 마음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