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익산시민 유 성 무
<시경(詩經)> 소아(小雅) 보전지습(甫田之什)편 대전(大田)에 "저기에는 베지 못한 벼가 있고, 여기에는 남겨둔 벼도 있으며, 저기에는 버려둔 볏단이 있고, 여기에는 떨어진 벼이삭이 있으니, 가여운 과부들도 줍게 하리라."라는 대목이 있다. 아마도 경제적 약자들을 배려함으로써 더불어 사는 지혜를 노래한 것이리라. <논어(論語)> 계씨(季氏)편에서 공자는 “나라를 소유하고 집을 소유하는 자는 적은 것을 근심하지 않고 고르지 않은 것을 근심하며, 가난을 근심하지 않고 편안하지 못함을 근심한다고 한다. 대개 고르면 가난함이 없고, 화합하면 적음이 없으며, 편안하면 기울어짐이 없다.”면서 경세제민의 이치가 균등임을 밝혔다. 가난보다 불균등을 걱정하는 공자의 말에 한(漢)나라 동중서(董仲舒)는 <춘추번로(春秋繁露)>에서 한 곳에 쌓이면 다른 곳은 비는 법이니, 큰 부자가 되면 교만해지고 포악해지며, 크게 가난한 자는 근심하면서 도둑이 되는 법이라고 했다. 그래서 제도를 통해서 획일적이지 않되 최대한 균등하게 나누도록 하고, 부자가 재산을 지나치게 모으지 않도록 하여, 위와 아래가 서로 편안하게 만드는 것이 정치의 근본 임을 밝혔다. 소수가 모든 것을 다 갖는 것은 하늘의 이치가 아니라고 하면서. 옛날 성현들은 경제정의(經濟正義)를 외쳤던 것 같다. 그 당시에도 사회가 온전하게 유지되고 성장하려면, 더불어 사는 지혜를 통해서 지나친 부의 편중을 막고 분배를 공정하게 하는 정의로운 경제제도가 필요했던 모양이다. 그로부터 2천 수백 년이 지난 지금도 전 세계적으로 경제정의를 외치고 있으니, 예나 지금이나 모습만 다를 뿐 시대가 달라져도 똑같은 문제가 계속 반복되는 것이 세상인가 보다. 빌프레도 파레토(Vilfredo Pareto)란 이탈리아 경제학자가 19세기에 당시 유럽의 부와 소득 분포를 연구했다. 그는 전체 상위 20%가 전체 부와 소득의 80%를 점하는 현상을 발견했다. 이후 파레토의 발견은 유명한 ‘80/20 법칙’의 근거로 발전했다. 이유는 불분명하지만 세상에서 이 정도 편중은 자연스럽다는 것이다. 이는 아무리 해도 경제적 불균등이 필연이라는 사고의 틀을 만들었다. 그런데 최근 조사결과들은 80/20의 균형상태가 깨지고 부와 소득의 편중이 갈수록 심화됨을 보이고 있다. 연초에 보도된 국제구호기관 옥스팜(Oxford Committee for Famine Relief)의 보고서 내용을 잠시 살펴보자. 2014년 기준으로 전 세계 상위 1%가 전체 부의 48%를 차지하고 있고, 2016년에는 50%를 넘길 것이라는 전망이다. 또 상위 20%가 전체 부의 94%를 점하고 있으며, 소득의 격차 또한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의 부와 소득 집중도 심화되고 있다. 2014년 크레디트스위스가 발표한 ‘글로벌 부(富) 보고서’에 의하면, 우리나라도 상위 10%가 전체 가계순자산의 62.9%를 점할 정도로 부의 편중이 심하다. 또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자료에 의하면, 2012년 기준으로 상위 1%가 전체 소득의 17%, 상위 10%가 전체 소득의 45%를 점하고 있다. 미국에 이어서 두 번째로 심화된 상태다. 이처럼 극단을 치닫는 일극화(一極化)가 과연 개인의 능력차이 때문일까? 공평한 기회 속에서 정당한 경쟁으로 생긴 결과일까? 그렇다면 경제정의를 위한 노력을 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사회의 지속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고쳐야만 한다. 옥스팜은 보다 공정한 부의 분배와 소득격차 완화 즉 경제정의를 위한 대책을 제시했다. 생계유지가 가능한 최저임금을 도입하고, 노동보다 자본에 많이 과세하며, 공공서비스를 개선하고, 탈세를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사회를 뜨겁게 달구는 의제와 별반 다르지 않은 처방이다. 옛사람들의 지혜와도 크게 다르지 않으니, 역시 세상의 이치는 다르지 않은가보다. 지금 우리 경제의 모습을 보자. 온갖 혜택으로 성장한 재벌은 불공정한 지배구조와 내부거래, 노동유연화, 무분별한 동네상권 싹쓸이로 서민경제를 옥죄고 있다. 소수의 자산 보유자들의 삶은 갈수록 윤택해지는 반면에, 다수의 노동자와 농어민, 자영업자 등은 몰락하고 있다. 사회는 급속하게 늙어가고 청년들은 희망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 균등분배는 고사하고 기초적인 성장동력조차 잃고 있다. 이는 남북 대치라는 특수상황과 세계경제 침체 등 외부상황만 탓할 문제가 아니다. 우리 내부에 경제정의에 대한 의지와 추동력이 없다는 것 때문이다. 우리사회가 살려면 이제라도 경제정의를 향해 나가야 한다. 지금도 늦었지만 결단과 실천이 이뤄져야 한다. 공정한 게임의 룰을 확립해야 지속적인 성장과 노력의 가치에 비례하는 균등한 분배가 가능하다. 더 늦으면 사회가 붕괴된다. 만악의 근원인 불균형과 불공평의 방치야말로 반사회적 행위라는 옛사람들의 지혜가 절실한 지금, 경제정의를 이끌어야 할 정치권의 모습을 보면 한숨만 나온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