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기 익산 희망정치
시민연합 대표

요즈음 TV에서 방송되고 있는 ‘정도전’이라는 드라마를 재미있게 보고 있다. 내 기억으로는 정도전을 주인공으로 하는 드라마는 처음인 것 같다.

정도전은 조선 개국의 1등 공신이며 조선의 설계자였지만 그 동안 부당하게 저평가 받아왔다. 그런 그가 이번에 TV드라마를 통해 재조명되는 것은 무척 반갑고 즐거운 일이다.

극 중 중요 인물인 삼봉 정도전과 포은 정몽주를 통해 우리의 정치와 우리 시대를 다시금 돌아보는 것은 매우 즐겁고 유익하다.

‘일편단심’으로 표현되는 정몽주는 고려 말 최고의 학자이며 문장가였다.

정도전보다 다섯 살이 많았던 그는 정도전이 성리학에 눈을 뜨게 해준 멘토였고, 곤경에 처한 정도전을 여러 차례 도와주었던 후견인이었다. 또한 그는 이성계와 정도전의 만남을 주선하기도 하였다.

그는 무너져가는 고려를 구하고자 이성계와 손을 잡고 개혁을 시도했던 사람이다.

반면, 삼봉 정도전은 공민왕의 살해 사건 이후 최고 실권자였던 이인임의 미움을 받아 나주로 귀향을 떠났다. 그 후 그는 오랫동안 떠돌아다니는 고난의 시간을 보내게 된다. 정도전은 이 고난의 시간동안 백성들과 교류하며 소통하는 삶을 살면서 썩을 대로 썩어버린 고려 말의 실상을 보게 되었다. 또한, 그는 이 시기에 백성을 정치의 중심에 놓는 민본사상을 확립하였다. 정도전은 고려에 더 이상 희망이 없음을 깨닫고 고려를 허물고 새로운 나라를 세울 것을 꿈꾼다.

두 사람을 비교하면 정몽주는 기존 틀 안에서의 개혁을 원했고, 정도전은 기존 틀을 깨고 새로운 틀을 만드는 혁명을 원했다. 이런 신념의 차이가 절친한 친구이며 동역자였던 두 사람이 서로 다른 길을 가게 만들었다.

고려의 회복을 원했던 정몽주는 이성계의 아들 이방원에 의해 선죽교에서 살해되었고, 조선의 개국 1등 공신이었던 정도전 또한 이방원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이방원은 훗날 조선 3대 왕인 태종이 되어 아이러니하게도 고려의 충신인 정몽주를 추앙하고 조선 개국 공신 정도전을 격하시켜버렸다. 이미 왕이 된 이방원과 이씨 왕족들에게는정몽주와 같은 충신이 필요했고 민본사상으로 무장한 정도전을 부담스러워하였다.

부질없는 생각이지만 만일 정도전이 좀 더 오래 살아서 조선의 기틀을 더욱 확고하게 다졌다면 이씨 조선은 훨씬 다른 나라가 되었으리라 생각해본다.

백성을 정치의 근본으로 생각한 그는 토지 개혁을 단행하여 토지의 실사용자였던 농민들에게 균등하게 배분하는 파격적 정책을 시행하였다. 또한 그는 명나라에 대한 맹목적 사대를 반대하고 고구려의 고토를 회복하기 위해 실제로 요동 정벌을 계획하고 준비해갔다. 

삼봉 정도전은 위대한 사상가이고 치밀한 국정 설계자였으며 낡은 질서를 근본적으로 바꾸고자 했던 혁명가였다.
나는 ‘정도전’을 볼 때마다 자연스럽게 오늘의 한국 사회와 한국 정치를 생각하게 된다.
지금 대한민국은 선진국의 문 앞에서 길을 잃었다.
성장은 정체되었고 도덕적 타락과 물질 만능이 판을 치고 있다. 부정부패가 만연하고 불공정은 심화되었으며 사회 양극화는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작금의 상황이 이러한데도 정부, 정당, 노동조합, 시민사회들은 근본적 처방없이 보조적 해법만을 남발하고 있다. 특히 이를 해결할 주체인 정치권은 무능할 뿐만 아니라 부패하여 자신들의 기득권 지키기에만 여념이 없다.
그러나 나는 절망하기 보다는 소망한다.
희망은 언제나 깊은 절망 속에서 피어남을 믿는다. 망해가는 고려 말 상황에서 새로운 시대를 설계한 정도전이 출현한 것처럼 오늘의 정도전이 출현하길 기대한다.
지역주의가 기생하는 낡은 체제를 해체하고 공평과 정의에 기초한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  현대판 정도전들이 속히 출현하길 기원한다.
그들을 통해 아름답고 정의로운 새로운 대한민국이 재탄생하길 기원하며 세계만방의 존경을 받는 통일 한국시대가 속히 열리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