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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가 함께한 여행

윤복순/윤약국 약사

아들이 결혼한 후 다 같이 할 수 있는 가족여행 계획을 세웠다고 했다. 고맙고 기특해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오케이를 했다. 나는 해외여행을 생각하고 어디로 갈까 머릿속이 바빠졌다. 며칠 후 딸한테 전화가 왔다.

“엄마, 제주도가 좋을까 설악산 쪽이 좋을까?” 일곱살 네살 세살 손자 손녀들과 긴 여행은 못할 것 같고, 비행기를 타는 것도 그래 강원도로 잡자고 했다. 일곱 살짜리 손자가 비행기 타고 싶다고 했단다. 그날에 맞춰 콘도를 예약하려 하니 제주도는 이미 끝났더란다. 다행히 설악프라자에 객실 두 개를 예약할 수 있었다.

남편이 국내여행이라면 어머니도 모시고 가자고 했다. 나는 그 것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시어머니는 팔십대 중반으로 치매가 약하게 왔다. 시모는 아들 신혼집에 가보고 싶어 했다. 장손인데 어이 궁금하지 않겠는가.

차 세 대가 가느니 같이 갈 수 있는 차를 렌트했다며, 며느리가 금요일 저녁 서울에 올라와 저희 집에서 자자고 했다. 며느리가 불편할 것 같아 쉬 대답이 나오지 않았지만, 우리 식구가 됐으니 같이 부대끼기도 해봐야 할 것 같았다.

시어머니를 모시고 기차를 탔다. 딸네 식구들도 서대전에서 탔다. 용산역에 아들과 며느리가 나와 있었다. 밖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들어가자고 했더니 이미 예약해 두었다고 했다. 식당엔 며느리 친정아버지와 어머니가 먼저 나와 기다리고 계셨다. 사돈한테 저녁 대접도 받고 선물까지 받았다. 나는 아무것도 준비하지 못했는데, 손이 부끄러웠다.

그토록 가보고 싶어 하던 손자집에 도착했을 때 시어머니는 잠시 정신 줄을 놓으셨다. 우리집으로 착각 하셨는지 택시만 태워주면 당신 집에 가실 수 있다며 집에 가고 싶어 했다.

여행 내내 시어머니는 애기들이 예쁘다며 졸졸 따라다녔다. 저희들끼리 잘 노는데 업어준다고 하고, 이것저것 먹으라고 주기만 하니 애기들은 싫어라 했다. 그래도 시모는 “무슨 꽃이 예쁘네 무슨 꽃이 예쁘네 해도 사람꽃이 제일 예쁘다더니 참말 그렇다.”며 애기들 속에서만 지냈다.

숙소에서는 운전하느라 애쓴 사위와 아들, 애기들 때문에 항상 피곤한 딸을 위해 손주들을 데리고 나왔다. 꼬맹이는 내가 둘째는 남편이 손을 잡고 큰놈은 혼자서도 차 조심할 정도는 되니 앞서 가도록 했다. 노천탕에서 족욕을 즐기고 고호수공원에서 산책도 했다. 호수에는 붕어 잉어들이 고물고물했다. 아이들이 먹던 과자 부스러기를 던져주니 온 물고기들이 애기들 앞으로 다 모였다. 손주들은 신바람이 났다.

숙소로 들어가 쉬고 싶었지만 애들 조금이라도 자게 하려고 물고기 앞에서 얼마나 있었는지 모른다. 아직은 어린 세 살짜리는 조금만 걸으면 업으라고 한다. 귀엽지만 애기 보기는 힘이 든다.

설악산에서는 케이블카를 탔다. 시어머니는 “설악산이라고 해서 눈이 쌓여있는 줄 알았는데 눈이 없다.”며 설악산이 아니라고 했다. 또 잠시 정신이 오락가락 하신 것이다. 애기들만큼이나 잠시도 한 눈팔 수가 없다.

낙산사에서 시어머니께 천천히 보타전까지 올라가 보자고 했다. 이곳은 순전히 보살님이신 시모를 위해 여행코스에 넣은 곳이다. 온가족이 웃으며 여행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고 관세음보살님께 인사는 드려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더니 “부처님은 여기 있잖냐.”하며 나를 가리키신다.

애기들이 예뻐 업어준다고 하는 것이 애기들에게는 귀찮은 일이듯, 시어머니 생각한다고 설악산으로 낙산사로 모시고 다니는 것이 노인에게는 힘들고 불편한 일인가 보다.

작년에 시어머니께 돈을 드렸었다. 어디 쓸데도 없는데 이리 큰돈을 주냐고 하면서도 좋아 하셨다. 그런데 며칠 지나지 않아 돈이 없어졌다고 전화가 왔다. 어디에 잘 놓고 못 찾으신 것이다. 농속을 다 찾아도 서랍을 다 뒤져도 없다는 것이다. 모시고 사는 동서내외가 곤욕을 치른 것 같았다. 돈이란 쓸 수 있을 때 필요한 것이라는 걸 확실하게 깨달았다. 그 뒤로 아들이나 딸이 집에 오면 할머니한테 돈 드리지 말라고 당부를 했었다.

여행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당신이 즐기고 느낄 수 있을 때 여행이지 지금 시어머니에겐 여행이 아니라 고생인 것이다. 가끔씩 퇴직한 인생 선배님들이 “윤약사,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맛있는 것도 먹고 여행도 다니고 해”라고 말하곤 한다. 그 이유를 알겠다.

잠자리가 바뀌고 거의 사 먹는 식사라서 불편했을 테지만 그런 내색 한번 안하신 시어머니가 고맙고, 이번 여행을 기획하고 연출한 아들 며느리 딸 사위도 고맙고, 아무 탈 없이 잘 놀아준 손주들도 고맙다. 무엇보다 내 옆을 든든하게 지켜주고 자식들과 가치의 기준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가장의 모범을 보여준 남편이 고맙다.

돌아오는 길에 애들이 다음 가족여행에 대해 계획하는 걸 보니 애들도 괜찮았던 모양이다. 며느리와도 친해지고 손주들과도 정이 더 도타워진 여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