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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도 여행

윤복순/윤약국 약사

남편은 후배가 보고 싶을 때나 그에게 밥을 사주고 싶을 때면 충청도 여행을 하자고 한다. 후배는 육군본부에서 퇴직을 하고 계룡에 살고 있다. 계룡은 익산에서 한 시간 남짓이다. 거리가 가깝다고 마음까지 가까운 것은 아니지만 그를 만나면 동기간처럼 반갑다. 남편이 현역에 있을 때 우리는 주말부부였다. 그 때 그 후배가 많이 챙겨주었다. 남편은 며칠 전 그와 통화를 했는데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며 밥이나 같이 먹고 오자고 한다.

후배부부와는 여러 번 충청도 여행을 했다. 계룡역에 내리면 그와 그 가족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나는 신문이나 책을 읽으면서 가보고 싶은 곳을 수첩에 메모해 두었다가, 남편이 후배 만나러 가자고 하면 계절에 맞춰 여행지를 정한다. 그들은 내가 가고 싶어 하는 곳에 전폭적으로 지지를 해 준다.

이번엔 진천으로 정했다. 생거진천(生居鎭川)이라는 말에 끌렸다. 살아서 머물기엔 진천만한 곳이 없다는 뜻이다. 얼마나 살기 좋으면 이런 말이 생겼을까.

생거진천, 사거용인(生居鎭川, 死居龍仁)의 유래는 이렇다. 두 아들이 있었는데 큰아들은 용인에 살고 작은 아들은 진천에 살았다. 어머니는 진천의 작은 아들이 모셨다. 두 아들의 효성이 지극하여 서로 어머니를 모시고자 싸움이 붙었는데, 진천의 명판관이 살아서는 진천의 아들이 모시고 돌아가시면 큰 아들이 용인에서 모시며 제사를 지내라고 한 데서 생겼다고 한다.

오늘 구경할 곳은 보탑사와 농다리다. 보탑사는 여느 사찰과 달리 3층 탑 모양의 목조건물로 되어 있는데 내부에서 3층 까지 올라갈 수 있다. 1층에도 부처님이 전면에 있는 것이 아니고 중앙에 각 면마다 각기 다른 부처 보살들이 있다. 부처님의 말씀이 사방에 퍼지도록 동서남북으로 사방불을 모셨다고 한다. 2층은 법보전, 3층은 미륵전으로 다 둘러 볼 수 있다. 이런 사찰은 처음 보았다.

약사불 앞에는 수박이 수십 통 놓여 있다. 대부분 꼭지가 시들어 있다. 부처님께 올리는데 어찌 싱싱하지 않은 것을 올렸을까 의문이 갔다. 알아보니 그 수박은 초파일 부처님 탄신일에 올린 것이란다. 이 수박이 동지가 지날 때까지 상하지 않아 겨울에 먹는다고 한다. 그저 신기할 뿐이다.

보탑사에는 아무 글자도 새기지 않은 비석이 있다. 이것을 백비(白碑)라고 하고 전국에 4,5기 정도 있는데 문화재라고 한다. 거북 받침에, 비석 몸을 받치는 밭침은 연꽃 모양, 비석의 머리는 아홉 마리의 용이 여의주를 문 모양이다. 형식으로 볼 때 통일신라 이후 고려 초의 것이라고 한다. 무엇을 쓰려고 했을까? 국태민안이었을까? 아는 만큼 보인다는데, 나는 불교문화나 역사에 대해 아는 것이 짧아 수박 겉핥기식으로 건성건성 둘러 볼 뿐이다.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다.

보탑사 가는 길에 김유신장군의 생가 및 태실이 있다. 충청도는 다 백제 땅인 줄 알았는데 진천은 신라였나 보다. 이것도 오늘 처음 알았다.

맛있게 점심을 먹고 농다리를 찾아 나섰다. 진천읍내의 도로표지판으로는 쉽게 찾을 수 없다. 몇 번을 물어물어 겨우 찾았다. 길을 묻는 중엔 외국인에게 묻는 촌극도 있었다. 농다리를 롱다리로 알아들었는지 만면에 웃음을 띠며 호텔의 도어보이 같은 제스처를 보여 준다. 그래서 모두 웃었다.

농교(籠橋)는 동양철학 28수 별자리를 응용하여 28칸의 교각이었으나 중간에 소실되어 지금은 25칸이라고 한다. 징검다리와 널다리의 중간 형태로 물의 양이 늘면 잠수교가 된단다. 돌들을 서로 맞물려지도록 쌓고 사이를 작은 돌로 메웠는데, 자연석을 성글게 쌓아 밟으면 뒤뚱거린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돌다리로 천년의 역사를 자랑한단다. 길이는 94미터라고 한다.

중부고속도로를 지날 때 농다리의 입간판을 보았다. 예스럽고 투박하고 꾸밈없어 가보고 싶었었다. 조상들의 지혜가 느껴지고 멋과 낭만이 있어 얼른 건넜다. 무서울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다.

농다리를 건너 낮은 산을 넘으니 바로 초평저수지다. 이름답다. 저수지에 데크둘레길이 있는데 산의 나무들이 그늘을 만들어 줘 걷기에 아주 좋다. 경치도 좋고 우리의 우정도 좋아 한없이 걷고 싶은 길이다.

후배와 같이 걷는 길에는 항상 웃음이 많고 긍정과 온화함이 있어 좋은 시간이 된다. 그 만큼 행복하고 더 챙겨주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마음이 통하는 사람과 만날 수 있고 여행할 수 있음이 감사하다.

후배는 대장암 초기에 수술을 받았다. 아직 5년이 지나지 않았다. 그래서 그의 목소리에 힘이 없으면 남편은 덜컥 걱정을 하는 것이다. 오늘 보니 얼굴색이 좋아 다행이다. 몇 개월만 잘 넘겨 정상 판정을 받아 충청도 뿐만 아니라 외국 여행도 같이 다닐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와의 우정이 농다리의 역사만큼 오래 지속되길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