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정일 소장

지방도시가 대개 그렇습니다만, 익산 역시 매우 낙후된 곳입니다. 그런데 나는 이 낙후성이야말로 하나의 가능성이라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익산 주민들이 들으시면 펄쩍 뛸 소리라는 것을 잘 압니다. 낙후성으로 인해 익산 주민들이 겪어온 고통이 너무도 자심하기 때문이죠.

그런 점에서 익산은 앞으로 많이 ‘개발’되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내가 가능성 운운 하는 것은 그 낙후성 덕에 익산이 자본주의적 근대화의 해독을 덜 입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익산이 ‘지속가능한 개발’의 가능성을 여전히 갖고 있다는 겁니다. 대도시들은 자본주의적 근대화가 이미 불가역적 대세가 되어버린 상태입니다. 그런 점에서 대도시는 리모델링만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지방의 소도시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마음먹느냐에 따라 대도시와는 다른 개발 모델을 세우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리모델링이 아니라 모델링이 가능하다는 겁니다. 나는 지역의 대안적 잠재력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봅니다.

지역문화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지역문화의 현재 모습은 척박하기 그지없습니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그 척박함 속에 무한한 가능성이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장소성을 되살릴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야말로 지역문화가 지닌 가능성입니다. 장소성은 지역문화의 가장 중요한 속성입니다.

장소(place)는 구체적인 삶이 약동하는 터전입니다. 대도시에는 그런 의미에서의 장소를 이제 찾아보기 힘들어졌습니다. 하지만 지방 소도시는 그렇지 않죠. 자신이 발 딛고 있는 장소를 삶의 터전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습니다.

장소성에 기반한 지역문화에는 같은 장소를 공유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지역 정체성과 기대지평이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그 지역 정체성과 기대지평은 지역의 특수성과 고유성 같은 가치들과 연계되어 있습니다.

이 가치들은 표준화와 동일화를 강요하는 주류 문화에 균열을 일으켜 새로운 문화적 패러다임을 만들어낼 대안문화적 가능성을 갖고 있습니다.

또한 지역문화는 중심 대 주변의 이분법이 초래한 폐해를 치유해줄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습니다. 중심-우등-선진, 주변-열등-후진의 구획짓기는 지역민들에게 열등감과 깊은 정신적 상처를 남겼습니다.

중앙을 닮고 싶다는 지방주의와 중앙이 되고 싶다는 지역주의는 열등감과 정신적 상처의 전도된 표현입니다.

지방주의와 지역주의가 한국사회의 정상적인 발전을 가로막는 중요한 장애가 되어왔음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지방주의와 지역주의의 참다운 극복은 지역민들의 열등감과 정신적 상처를 치유할 때 기대할 수 있습니다.

지역문화는 지역 정체성을 일깨워 훼손된 자존감을 회복시켜줍니다. 지역 정체성은 장소성과 긴밀히 연관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 삶의 터전으로서의 장소성에 대한 자각이 바로 지역 정체성의 요체인 것입니다.

지역문화에서 특수성이나 고유성 같은 가치들이 핵심을 이루는 것은 그런 연유에서라 할 수 있습니다.

삶의 터전으로서의 장소로부터 발원된 가치들이 자신의 주체성과 정체성의 요체임을 깨달을 때 지역민들의 열등감과 정신적 상처를 치유할 수 있습니다.

지역문화를 가꾸고 육성해야 하는 것은 지역 정체성을 되살리기 위해서입니다.

지역 정체성의 복원은 애향심과 정주(定住)의식을 높여주고 지역 통합을 가능하게 해줍니다.
나아가 익산을 새롭게 모델링하는 데 있어서도 지역 정체성은 일종의 방향타 역할을 할 겁니다.

지역문화에 우리 모두가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