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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혼자서 놀기

윤복순/윤약국 약사

혼자 쓸 수 있는 하루가 생겼다. 나를 뒤돌아보고 내 감정과 욕망에 충실할 수 있는 시간이다. 며칠 전부터 익산여행 지도를 펴놓고 연구를 했다. 안 가본 곳으로 정했다. 혼자서 초행길을 찾아가는 여정은 재미 있다. 호기심이 발동하고, 할 수 있을까 기대와 걱정이 교차하기도 한다. 걷고 싶은 만큼 걸을 수 있고, 힘들면 쉬고, 시간 맞추기 위해 서둘 필요도 없다. 먹고 싶을 때 먹고 마음 가는 곳에서 머물 수 있는 이런 여유와 자유가 있어 혼자 하는 여행을 즐기는 편이다.

하루쯤 말 안하고 보낼 수는 없을까. 혼자라면 가능할 것도 같다. 거창하게 오늘 하루를 묵언수행의 날로 잡아 보았다. 침묵, 육체 정신 영혼의 절대적인 조화 속에서만 가능하다고 한다. 선한 가슴을 갖고 내 가슴에서 좋은 생각이 나오기를 기대하며 입은 다물고 집을 나섰다.

시내버스를 타기로 했다. 버스시간을 몰라도 걱정되지 않는다. 정류장에서 사람들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아무 생각 없이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다. 어차피 세상구경 나가는데 어디면 어쩌랴.

나는 걷는 것을 좋아한다. 다비드 르 브르통에 의하면 걷는 것은 자신을 세계로 열어놓는 것이란다. 다리로 몸으로 걸으면서 인간은 자신의 실존에 대한 행복한 감정을 되찾는다고 한다. 걷는다는 것은 곧 자신의 몸으로 산다는 것이다.

자연 속에는 미묘한 자력이 있어 우리가 무심히 자연에 몸을 맡기면 올바른 길을 인도해 준다고 옛 수행자들은 믿었다. 뚜벅뚜벅 두발로 걷는 사람만이 그 오묘한 자연의 정기를 받을 수 있단다. 걷기 위해 차를 두고 시내버스를 탔다.

석불사 앞에서 내렸다. 석불좌상이 문화재라고 해서 갔다. 절 입구에 석불좌상에 대한 설명이 있는데, 아무리 둘러봐도 불상은 보이지 않았다. 물으니 대웅전에 모셔져 있단다. 묵언수행은 끝났다.

웅장하고 거대한 석불좌상이다. 화강암으로 만든 투박하고 정교하지 않은 석불이다. 대웅전에서 이런 석불을 보는 것은 처음이다. 인자하게 미소를 띤 금불만 보았다. 석불 그 자체로 충격이었다. 나도 모르게 눈이 커지고 입이 벌어졌다. 머리 부분은 보수를 했다는데 이질감이 없다. 백제시대의 것이란다. 어떤 환희심이 느껴졌다. 깊게 허리 숙여 ‘감사 합니다 감사 합니다’ 만 되뇌였다. 불교 신자가 아니라서 부처님에 대한 예법을 몰라 내 방식대로 최고의 예를 갖춰 고개를 숙였다.

태봉사까지 걸었다. 삼존석불이 문화재라고 한다. 가운데 석가모니부처는 좌상이고 양쪽 지장보살과 관세음보살은 입상이다. 보수를 한 관계로 예스럽거나 깊은 멋이 없다. 원래의 모습 그대로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쉬움이 크다.

이곳 스님은 영상회상작법의 전수자로 바라춤의 무형문화재라고 한다. 대웅전에 모신 삼존석불엔 가볍게 인사를 했는데. 우리의 문화를 지키느라 애쓰는 스님께는 90도 각도로 인사를 하고 나왔다.

심곡사까지는 두 시간 가까이 걸은 것 같다. 이곳엔 목조불상이 있다고 한다. 큰 법당에 나무로 만든 불상이 있는 줄 알았다.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뛴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불상이라 큰 기대감으로 대웅전에 들어갔는데 금불상이다. 어찌된 일일까. 급 실망에 고개만 약간 숙였다.

스님께 여쭤보니 목불에 금 옷을 입혔다고 한다. 나는 나뭇결이 그대로 살아있게 옻칠을 한 부처님을 상상했다. 내가 생각한 그런 목불을 볼 수는 없을까. 보관상에 문제가 되는 걸까. 부처님의 위신에 문제가 되는 걸까.

우리 고장에 작지만 문화재가 있고 볼거리가 있고 걸을만한 거리에 특색 있는 3개의 절이 있다는 것이 고맙다. 윤달에 세 개의 절을 하루에 볼 수 있는 행운을 잡았다. 내 앞에 행복/ 내 뒤에 행복/ 내 아래에 행복/ 내 위에 행복/ 내 주위 모든 곳에 행복. 인디언 어느 부족의 노래가 지금 내 상황에 딱 맞는 것 같다.

심곡사에서 순탄한 코스를 잡아 미륵산에 올랐다. 준비해 간 김밥을 먹으려는데 “입 안에 말이 적고, 마음에 일이 적고, 뱃속에 밥이 적어야 한다.”는 말이 그 때 막 떠올라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미륵산에서 다시 용화산으로 올라 조각공원 쪽으로 내려왔다. 온 산이 푸름으로 가득했다. 혼자도 잘 놀 수 있고 체력도 아직은 쓸 만하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혼자일 줄 안다는 것은 “더 이상 타인과 타인의 판단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충분히 만족할 수 있다”는 뜻이라고 했던가.
세상은 아름다움을 발견한 자에게는 아름다움을 주고, 슬픔을 발견한 자에게는 슬픔을 준다고 한다. 신록의 계절에 문화와 자연의 한없는 아름다움을 만끽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