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필성/칼럼니스트

새누리당 박근혜 의원이 대통령선거 과정에서 국민에게 전달할 메시지를 응축한 슬로건으로 ‘내 꿈이 이뤄지는 나라’를 내걸었다.

이것은 ‘기다려온 변화 박근혜’ ‘국민의 삶과 함께하는 박근혜’ ‘내 삶을 위한 선택 박근혜’란 콘셉트를 깔때기 원리로 한데 모은 것이다. 무엇보다 박 의원의 정치철학인 안거낙업(安居樂業.편안하게 살면서 자기 일을 즐겁게 한다)을 친근하게 담아내는 데 주안점을 둔 것이다. ‘국민의 마음속에 꿈을 심는 대통령이 되고 싶다’는 박 의원은 당 상징인 빨간색 정장을 입고 18대 대통령을 향한 깃발을 들었다. 2007년 이후 5년 동안 지지율 1위 자리를 달려왔지만 ‘불통’ ‘대세론 안주’ ‘확장성 한계’라는 꼬리표가 발목을 잡고 있다.

그러나 5개월 후 그는 과연 웃을 수 있을까. 첫 여성대통령의 꿈을 이룰까.

돌이켜보면 2007년 8월 20일 오후 4시를 지나면서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 경기장에서 TV 로 생중계된 한나라당 대통령후보 경선 개표상황실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숨을 죽였다. 이명박 진영에서는 “아니, 우리가 지는 거야?”라는 신음까지 새나왔다. 마지막 한 표의 검표가 끝나고 박관용 당 선거관리위원장이 마이크를 잡았다.

합산 8만 1084표 대 7만 8632표로 1.5%포인트 차 이명박 신승(辛勝)이었다. 순간 박근혜는 웃었다. 평정(平靜)을 잃지 않았고 표정은 명료했다. 그리고 “경선 결과에 깨끗하게 승복합니다”라고 말했다. 그 모습이 이튿날 조간신문에 ‘박근혜, 빛났다’ 라고 보도되기도 했다.

박 의원은 아버지가 대통령이 되면서 12세에 청와대에 들어왔다. 그 후 성년이 되면서 옆에서 국가 운영에 대한 감각을 배웠다. 부모가 모두 총탄에 쓰러졌는데 이걸 극복한다는 게 쉬운 건 아니다. 1979년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근 20년 뒤에 보궐선거로 국회의원이 될 때까지 야인으로 살았다. 고뇌가 많았을텐데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강인한 정신력을 키웠다.

박근혜 경선 캠프의 김종인 공동 선거대책위원장은 지난해 4월 윤여준 전 환경부장관, 법륜 스님, 최상용 고려대 명예교수 등과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을 만나 정치를 권유했지만 “그 사람은 이야기만 듣지 의사표시를 안 한다. 몇 번 만나보고 정치 의사가 없는 사람이라 그를 설득하는 게 시간 낭비”라고 말했다.

그러나 박 의원은 개인적 욕심도 없고, 주변이 깨끗하고, 재벌이나 이익단체와 연관도 없다는 게 중요한 장점이었다. 그러면서 믿고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정치리더로서 국민들로 하여금 ‘한번 약속한 것은 지킨다’는 신뢰를 갖게 만드는 덕목이라고 주장했다.

박 의원은 “앞으로 50년 이상 지속될 수 있는 국민 행복의 초석을 마련하겠다” 며 “경제민주화, 일자리 창출, 한국형 복지를 3대 실천 키워드로 제시했다. 성장과 분배는 수레의 두 바퀴처럼 함께 굴러가야 한다는 것이다.

학계와 관계, 정치권을 두루 거친 김 위원장은 1987년 개헌 때 이른바 경제민주화 조항으로 불리는 헌법 제 119조 2항을 만들어 넣은 재벌개혁자로 알려져 있다. 그런 연유로 그는 경제민주화의 원조로 불리기도 한다. 그런 그가 박근혜 캠프에 합류했다는 것은 여러 측면에서 의미하는 바가 크다. 그는 앞으로 박근혜 대선 공약을 사실상 좌지우지하고, 만약 박 의원이 대통령에 당선될 경우 다음 정부 경제정책의 큰 틀이 그의 머릿속에서 나올 가능성이 크다.

박근혜와 김종인 결합의 출발은 일단 순조로워 보인다. 그동안 야당이나 진보진영의 단골메뉴였던 경제민주화 의제를 박근혜와 새누리당이 선점하는 양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경제민주화를 놓고 야당과 대등한 입장에서 논란을 벌일 수 있는 터전을 마련했다는 것만으로도 박 의원으로서는 큰 수확이다.

지금 새누리당은 ‘박근혜당’이라고까지 불릴정도로 박 의원 한 사람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다. 당내에서는 친박 실세들이 대선 승리를 ‘따 놓은 당상’처럼 여기고 자기들끼리 권력투쟁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정치가에 파다했다.

파이낸셜타임스지는 “오늘날 사회는 아무리 똑똑하고 지혜롭고 용기 있는 리더라도 혼자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만큼 단순하지 않다”고 했다. 지도자의 말 한마디에 당 전체의 의견이 왔다 갔다 하는 정당이 걱정스럽다.

당내 민주주의도 못하는 정당이 국가 전체의 민주주의를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박 의원이 새누리당의 대선 예비 후보로서 압도적 지지를 받는다고 해도 당에서 한 사람 목소리만 들려서는 안된다. 다양한 목소리가 들리고, 그 소리들이 공명(共鳴)해야 울림이 커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