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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글레차

윤복순 /윤약국 약사

둥글레의 향이 입안 가득하다. 편안한 마음으로 잠시 일손을 놓고 마음껏 향을 느껴본다.

둥글레차에선 외할머니의 냄새가 난다. 친근함, 그리움, 포근함, 고마움, 정다움, 쓸쓸함 외할머니에 대한 생각들이 막 떠오른다.

교회에서 전도를 나왔다며 둥글레차를 한 잔 주고 간다. 겨울에는 따뜻하게 주더니 오늘은 냉차로 준다. 뜨거운 것은 뜨거운 대로 시원한 것은 시원한대로 외할머니의 정이 느껴지고, 같이했던 시간들이 엊그제인 듯 다가온다.

20여 년 전 여름휴가 때였다. 양평프라자에 여장을 풀었다. 숙박지 주변의 산과 문화유적지를 돌아보는 일정으로 휴가를 즐겼다. 그해는 용문산이었다. 용문사의 대명사인 은행나무를 구경하고 산에 들었다.

얼마 오르지 않았는데 “야! 둥글레다” 언니가 소리쳤다. 농고 선생이었던 언니는 자생풀이며 약초에 대해 아는 것이 많았다. 나는 그 때가지 둥글레가 무엇인지도 몰랐다. 형부도 남편도 둥글레 캐기에 여념이 없어 등산은 못하고 그것만 배낭 가득 채워 왔다.

둥글레는 체질개선에 도움을 줘 기력회복에 좋고, 혈관의 노폐물을 제거하여 혈압 혈당에는

물론 피부 노화방지에도 좋단다. 포만감이 있어 다이어트에도 좋다고 한다.

진액을 생성하게 함으로써 입안이 건조하여 갈증 나는 것을 방지해 준다는 효능에 나는 눈이 번쩍 뜨였다.

둥글레차는 둥글레의 뿌리줄기를 깨끗이 씻어 살짝 쪄 그늘에서 말려 볶아서 만든다는데, 나는 그냥 말린 것을 물 끊일 때 몇 개씩 넣고 끊였다.

외할머니와 나는 어릴 때만 좋아했던 그런 사이가 아니다. 외할머니가 나의 초산을 지켜주셨다. 농사일과 집안 살림으로 집을 비울 수 없는 어머니를 대신해 두 달 동안이나 산후조리를 돌봐 주셨다.

아무것도 모르는 나와 남편에게 오랫동안의 경험으로 갓난이 키우는 법을 잘 알려주셨다.

뿐만 아니라 “여자는 애 낳고 몸조리 잘 못하면 평생 고생한다.”며 나를 여왕처럼 대해 줬다. 외할머니 덕분에 남편한테도 여왕 대접을 받았다.

남편은 외할머니를 많이 따랐다. 외할머니가 좋아하시는 음식을 기억했다 사다 드릴뿐 아니라, 식사할 때 생선가시를 발라 외할머니 수저에 놓아드리곤 했다.

“사위한테도 못 받아본 호강을 외손녀사위한테 받는다.”며 흐뭇해 하셨다.

내가 둘 째 아이를 낳을 때도 외할머니가 자청해서 해복간을 맡아주셨다.

우리 애들이 어릴 때 외할머니는 어머니보다 자주 우리 집에 오셨다. 애들을 받아서 정이 들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외할머니께서 입이 자꾸 마른다고 했던 기억이 났다. 나이 들면 어찌 피부만 건조해지겠는가. 눈도 입도 모두 늙어지겠지. 둥글레에 생진지갈의 효능이 있다고 하니, 내가 직접 만든 둥글레차를 드릴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외할머니께 자연산 둥글레차를 만들어 드리기 위해 산에 갈 때마다 눈여겨 찾아보곤 했었다. 외할머니는 내가 만든 차를 좋아 하셨다.

외할머니는 테레사 수녀 만큼이나 주름살이 많았다. 그 깊은 주름 사이로 쓸쓸하지만 인자한 미소가 흘렀다. 외삼촌과 우리 어머니가 외할머니보다 먼저 가셨다. 그 허전함과 상실감이 고랑 같은 주름을 만들었을 것이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보고 싶을 때 외갓집에 갔다. 외할머니 옆에만 있어도 진정 되었다.

한 동안 외할머니는 나 만나는 것을 꺼려하셨다. 내가 외갓집을 다녀오고 나면 외할머니는 식사도 통 안 하시고 말씀도 없다고 외숙모가 전화 주셨다. 외숙모가 힘들 것 같아 외갓집에 가는 것을 자제했다.

어느 날 아무 연락도 없이 외할머니가 약국에 오셨다.

“니 애미가 너무 보고 싶어서.”

우리는 손을 잡은 채 말을 잇지 못했다. 내가 당신을 찾아가는 것이 당신을 위로하러 찾아뵙는줄 아셨던 외할머니. 못 견디게 어머니가 보고 싶을 때 갔었는데.

외할머니와 나는 둥글레차를 사이에 두고,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 하면서 한 공간에서 두어 시간 쯤 같이 있다가 헤어지는 것으로 충분했다.

내 아이들을 받아 주었고, 어머니를 대신해 주었던 외할머니! 말을 하지 않아도 우리는 훤히 알 수 있었다. 오히려 눈물 보이지 않으려 최대한 말을 아꼈었는데......

둥글레차 한 모금을 다시 입에 머금었다. 오늘은 혼자서 마신다. 여전히 외할머니 냄새가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