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필성/칼럼니스트

3·11 동일본 대지진 1년, 이제 일본인들은 그들이 도저히 극복할 수 없을듯 하던 대재앙을 딛고 일어서는 데는 마을을 덮치는 지진 쓰나미에 맞서 마지막까지 대피 방송을 멈추지 않았던 한 읍사무소의 여직원의 고귀한 희생이 믿거름이 되고 있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엔도 미키((遠藤未希). 당시 미야기현(宮城縣)의 조그만 어촌마을인 미나미산리쿠(南三陸) 읍사무소의 위기관리과 직원이었다. 그때 나이 24세로 결혼 8개월 차 새댁이었다.

리히터 규모 9.0의 지진이 일본 동북부를 강타한 그날 오후 2시46분. 3층짜리 방재청사 2층에 위치한 위기관리과 천장과 책상이 요동쳤다.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강진이었다. 뒤따른 위기를 직감한 미키는 방송실로 뛰어들어 무선 마이크를 잡았다.

“높이 6m의 큰 쓰나미가 예상됩니다. 바닷물 빠지는 모양이 심상치 않습니다. 즉시 고지대로 대피해 주세요. 해안가 근처에는 절대로 다가가지 마세요.”

미키의 다급한 목소리가 마을 전역에 울려 퍼졌다.

미키의 방송이 30분가량 이어졌을까. 멀리서 벌떡 일어선 바다가 눈에 들어왔다. 옥상에 이미 대피해 있던 30여명의 직원이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다. “쓰나미가 왔다!”

일촉즉발(一觸卽發)의 험악한 분위기…. 그래도 미키는 마이크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목소리는 높아졌고 호흡은 가빠졌다.

“높이 10m 이상의 큰 쓰나미가 몰려오고 있습니다. 빨리빨리 고지대로 피하세요, 빨리 피하세요.”

방조제를 가볍게 넘은 바다는 굉음을 내며 해안에서 300m 가량 떨어진 방재청사를 향해 무서운 속도로 덮쳐왔다.

바다가 청사 주차장까지 닥치는 마지막 순간 미키는 비로소 청사 옥상으로 향하는 외부 계단으로 뛰쳐나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미 늦었다.

바다는 순식간에  12m 높이의 방재청사를 집어삼켰다.

5m 높이의 무선방송용 옥상 철탑에 매달려 있다가 살아난 직원들이 정신을 차렸을 때 미키는 온데 간데 없었다. 30여 명의 직원도 10여명으로 줄어 있었다.

미키는 한 달이 지난 4월23일 일근 해안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남편이 선물한 오렌지색 자수발찌를 왼쪽 발목에 감은 채였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요즘 철골 뼈대만 남은 방재청사 앞에 마련된 헌화대에는 전국에서 온 추모객들이 바친 센바쓰루(千羽鶴 종이학다발)와 조화가 가득했다.

미키와 읍사무소 동기로 같은 과에서 일했던 미우라(三浦)씨는 “지역 주민 1만7700명 가운데 절반 가까이가 미키의 목소리를 듣고 피난해 목숨을 건졌다”며 “살면서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미키를 생각한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미키의 가족은 3월이 오면서 다시 가슴을 찢는 고통 속으로 빠져들었다.

2녀 중 장녀인 미키는 현청 소재지 센다이(仙臺)시내 강병전문학교를 졸업했다. 전공을 살릴 계획이었지만 곁에 있기를 원하는 부모를 위해 고향 읍사무소에 취직했다.

너무도 착했던 딸이기에 부모의 가슴은 찢어진다. 1년전 쓰나미가 마을을 덮치는 영상을 몇 번이나 보고 또 보았다. 딸의 마지막 목소리를 들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래도 살아있었으면…”이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미키(未希)라는 이름은 미래에 희망을 갖고 살아가길 바란다는 뜻에서 미래(未來)와 희망(希望)에서 앞 글자 한 자씩을 따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

몸은 비록 하늘나라로 갔지만 목소리는 그대로 남아 복구 작업이 한창인 미나미산리쿠 들녘을 울리고 있다.

피해지의 많은 사람들은 지금도 미키의 마지막 목소리를 들으며 미래와 희망에의 의지를 복돋우고 있다.

도쿄의 인근 지역인 사이타마현(埼玉縣)은 4월부터 1250개 공립 초중고교 도덕 교재에 ‘천사의 목소리’라는 제목으로 미키 이야기를 싣는다.

(이 칼럼은 간접취재였음을 밝혀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