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시 사회복지협의회장,

(사)삼동인터내셔널이사장

김영주

극성의 코로나가 조금 잠잠해졌다. 인천공항은 꿈틀거린다. 필자도 직업상 인천공항을 찾았다. 몽골로 떠나기 위해서이다. 하늘은 솜털 같은 구름의 항해로 더욱 아름답게 보인다.

몽골에 대한 느낌은 언제나 좋았다. 초원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다른 나라들의 초원도 있다. 그런데 몽골의 초원은 다르다. 왜 그럴까. 몽골의 초원은 인공적인 건축물이 전혀 없다. 그리고 깨끗한 자연 그대로의 풍광을 우리에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특히 여름이면 초원 위에 핀 알록달록한 야생화들이 여행자를 반겨준다.

또한, 유목 민족의 생활상이 녹아 있는 게르 숙박과 음식 체험, 쏟아지는 별빛의 항연을 감상하면서 유목 문화의 정취를 가득 느낄 수 있다. 그래서 몽골은 늘 필자에게 괜찮은 나라, 아름다운 나라로 인식되었다.

요즘 몽골은 한국의 가을 날씨로 여행객들에겐 최고의 시기이다. 울란바토르를 벗어나면 끝없이 펼쳐진 초원의 아름다움에 여행객들은 와! 하는 감탄사를 금치 못한다. 몽골의 초원은 늘 그랬다.

그 초원을 걷노라면 자연의 거대한 장엄 속에 태초의 신비를 그려보는 가슴 쓰림이 시작된다.
맑디맑은 연초록의 그림의 초원은 나지막한 산비탈에서 고봉의 정상까지 제각각 춤사위를 한껏 불러 모으고 사람에게 쌓여있는 욕망의 나래를 접으라 한다.

일찍이 그 누구도 그들에게 산야를 푸르게 하고 웃음 짓게 하라고 강요한 적도 없다. 그러나 때가 되면 어김없이 오는 푸르름, 그리고 때가 되면 미련 없이 사람들에게 멋진 자태를 주는 자연의 섭리, 그것은 인과의 원리가 분명했다.

크게 한번 눈을 돌려 본다. 유목민의 이동처럼 새하얀 구름도 하염없이 흐르고 있다. 하늘은 비를 내려 천하 만물을 생장시켜 주지만 천하 만물을 생장시켜 주었다는 생각도 하지 않는다. 더 나아가 당신의 공을 절대로 자랑하지 않는다. 그래서 하늘이다.

초원의 대지도 그렇다. 그 넓은 가슴으로 화화초초 형형색색 이름 모를 작은 꽃잎마저 실어주고, 매일 그리고 종일 고개 숙여 풀을 뜯는 소와 말들, 맘껏 뛰놀고 다니는 양들의 거친 행동에도 투정하거나 당신의 공을 자랑하지 않는다. 그래서 초원은 어머니의 가슴처럼 포근하다.

우리의 인간은 어떤가.
자그마한 불만도 감추질 않는다. 솟구치는 감정도 자제할 줄 모른다. 무작정 달려드는 물소와 같다. 여유가 없다. 나 하나 몰라준다고 야단 들이다. 더불어 산다고 하면서 남을 위해 배려하는 모습들도 다 인위적이다. 말과 행동이 완전히 다르다. 인위적인 배려는 우리 곁에 오래 머물지 않는다. 그러나 초원과 같은 자연적인 은혜는 영원히 우리 곁에 머문다.

자연은 무위(無爲)를 뿌리로 하였다. 그래서 그 공덕은 영원히 남아 일원(日月)이 되고 은하(銀河)가 되고 대지(大地)가 되고 시우(時雨)가 되어 만물을 생성시킨다. 그래서 자연은 인간의 이정표가 되었다. 몽골의 초원도 그렇다. 인간의 비열함을 꼬집고, 인간의 간악함을 꼬집어 성스럽게 도도히 인간의 잣대를 바꾸라고 성토한다.

자연의 교훈, 그 성스러움은 언어로 배우는 것이 아니다. 돈으로 배우는 것은 더욱 아니다. 가슴으로 열어 내고 영혼으로 느끼는 그런 것이다.

자연의 섭리는 분명하다. 한 치 오차도 용납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인간의 첨단 과학을 비웃고 조롱한다.

지식으로 알려 하지마라. 머리로 알려 하지마라. 대 자연의 교훈, 그 신비는 지식의 영역도 아니고 언어의 영역도 아니다.

그 누가 ‘도홍이백장미자 문착동군자부지(桃紅李白薔薇紫 問着東君自不知)’라 했던가.
복숭아꽃이 붉고 배꽃이 희며 장미꽃이 검붉은 것을 봄의 신에게 물어 보았지만 봄의 신도 스스로 알지 못한다고 말이다. 참으로 감상해 볼 말씀이다.

거대한 초원의 향연을 그려놓고 그 속에 무위자연의 공을 자랑하지 않는 그래서 인간의 가냘픈 공치사를 냉혹하게 비판하는 무언의 메시지와도 같은 말씀이다.

세상은 때가 때인지라 자기 공치사로 난리 법석이다. 한 사람도 못난 사람이 없다. 흔히 말하는 그 어떤 곳에도 당당한 만큼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그래도 세상은 그 사람들 때문에 잘도 굴러가는 모양이다. 아니 그저 그렇게 굴러가는 것처럼 보일 따름이다.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
그대 대 자연의 향연이 그대를 향하여 무슨 공을 그리도 자랑하던가. 아니 그대는 그대의 볼품없는 공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얼마나 분통터져라 외쳤던가. 그대여. 가슴을 열고 눈을 크게 떠라.

그리고 초원의 향연 속에 천하 만물을 생장시키고도 자기의 공을 자랑하지 않는 무위의 공덕, 그 교훈을 한 번 더 생각해 보자. 초원이 사라지기 전에 그 무위의 거룩함을 말이다.

세월은 여전히 쉼 없이 흘러간다. 우리 인생 역시 점점 깊어지며 아름다운 모습으로 열매를 맺으며 노숙하고 신선해져야 하리라. 날이 가고 달을 지나며 해가 넘어갈수록 멋진 인생길을 만들어가야 한다. 머잖아 저 건너편에서의 셈하기에 ‘잘했다!’고 칭찬받는 모두가 되어 영원한 기쁨을 만끽해야 하겠다.

“자연을 보라. 그리고 자연을 배우라. 자연은 끊임없이 자신을 단련한다.” 룻소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