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원/문화평론가

너그럽게 푸른 바람이 몰아온다.
그 바람은 희망에 대한 움직임이며, 희망을 향한 가능성의 탐찰일 것이다.

사람들은 웃을 때 비로소 착해 보인다.

웃는다는 것, 그건 고향으로 돌아가는 일이다. 때론 멍청한 웃음이 사람을 더 사람답게 만든다. 멍청한 웃음을 볼 때 우리는 왜 웃을까? 하는 궁금증과 애매모호함은 자신의 기억과 연상을 통해 해석해 낸다.

사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의사소통의 능력은 타인의 관점에서 사물을 볼 수 있을 때 비로소 시작된다. 그러나 이 땅의 사내들은 나이가 들수록 이 감탄의 욕구를 채우지 못해 어쩔 줄 모른다. 아무도 자신을 보고 감탄해 주지 않기 때문이다. 대화 자체가 불가능해지는 느낌이 들 정도이다. 어디서도 이 감탄의 욕구는 채워지질 않는다.

광신과 극단주의가 열성과 집요함을 내장하고 있듯이 사익을 추구하는 사람들도 그렇다. 그들은 내재된 열성에 따라 쉼 없이 대중을 찾아다니며 헤게모니를 구축할 힘을 키우지만, 일상의 만남에서는 여전히 대중을 설득하지는 못한다.

사회정의, 공익, 상식을 지향하는 사람들의 의지가 열성과 정직함으로 결합시켜야만 광신자, 극단주의자, 사익추구집단과 균형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우리의 시민의식이 이러함에 얼마나 맞서고 있는지. 권력과 돈이 가진 힘을 얼마나 제어할 수 있는지에 달려있다. 혁신을 이끄는 리더는 숫자나 감성, 이 두 요소를 반드시 동시에 고려해야 혁신에 성공 할 수 있다. 숫자로만 혁신에 접근 한다면 사람들은 혁신의 근본정신을 모르게 되고, 매너리즘이나 관료주의에 무심코 빠져들고 만다. 반대로 감정에만 호소하고 구체적인 결과나 프로그램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실질적인 성과는 기대하고 측정할 수 없을 것이다.

글쓰기는 생각의 수준을 바꿔 놓기도 한다. 머리 하나로만 생각하는 불안하고 불완전함에서 자신의 생각이 믿음으로 드러나는 것은, 세상을 보는 눈 자체가 달라져 있다는 데 있다. 우리는 우리 사회의 현실을 과학적으로 인식하기보다는 정서적, 이념적으로 인식하게 된다. ‘이것이 무엇인가’ 라는 사실이 아니라 ‘내 편이냐 아니냐’ ‘내게 유리하냐 아니냐’ 이다. 어떤 사회에든 신념으로 가득 찬 사람들은 필요하다. 이들은 시민단체나 언론에도 꼭 필요한 존재들이다. 그러나 우리사회의 언어가 의견과 사실을 구분하는 능력을 상실한지 오래다. 의견을 사실처럼 말하고 사실을 의견처럼 말하기 때문에 언어가 소통이 아니라 단절로 이르게 된다. 이것은 지배적 언론이나 담론들이 당파성에 매몰돼 그것을 정의, 신념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우리 시대 언어의 모습은 돌처럼 굳어지고 완강해, 무기를 닮아가고 있다.

객관성과 책임의식은 어디론가 모습을 감추고 상대편을 꺾고 전투에서 살아남기 위한 독설과 공격의 공간으로 변모해 가고 있다. 소통 능력이 현저히 떨어져 불필요한 사회 갈등을 만들고, 확대시키는 것은 아닌지 들여 다 봐야 할 때이다.

적대적 공존관계, 한 마디로 앞 다투어 상대방을 공격하고 비판하는 데에만 자신의 존재 근거를 확인하는 관계이다. 유아독존식 독선적 아집으로 똘똘 뭉쳐 번번이 되풀이되는 비타협적이고 과격한 투쟁방식으로 비판하고 공격하기 일쑤다. 게다가 상대가 인정해 줄 만한 가치를 그 누구도 구현하지 못하고 있다.

벌거벗은 권력 투쟁에 매몰되지 않고, 공동체의 미래를 위해 현장 중계되는 권력 게임을 방관자처럼 지켜보고 있지 않아야 한다. 난무하는 슬로건들과 비현실적 주장들 앞에 무기력해지지 않는, 우리의 시민의식이 정치와 언론을 서서히 바뀌게 할 것이다.

이지러진 보수와 진보가 서로 상대방을 향해 날 선 공격을 퍼붓듯, 우리의 정치와 언론이 적대적 공존 관계에 서로를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대한 중요한 함의가 도사리고 있다.

현재의 여당과 야당, 진보와 보수, 정부와 국회, 언론과 시민단체 하나하나에 대해 보다 직접적인 문제제기를 하고 비판하면 곧바로 거센 역공은 몰아치기 마련이다.

그러나 철학과 이념을 앞세워 고집해서는 한 문제도 풀어갈 수 없다. 삶의 궤적이나 지향점이 달라도 서로 소통해야 한다. 그 소통 능력이 거의 바닥권에 머물 수밖에 없는 이 시점에서 어떻게 하는 것이 갈등은 줄이게 되고, 소통은 늘려 공동체의 미래를 함께 만들어 가느냐가 참 과제이다. 대화와 소통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나야 한다고 많은 이들이 주장하고 있으나, 도도이 흐르는 흙탕물과 순도 낮은 주민자치시대의 우리 사회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지나간 역사의 ‘트라우마’ 속에서 우리 스스로가 고통 받고 있는 것은 아닌가? 스스로 의문해 본다. 싸움만 있고 화해가 없으면, 모든 인간이 그야말로 원자화되고 파편화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노릇이기 때문이다. 열망을 수용한 대가로 떠안은 절박함은 불합리한 제도의 덫에 걸려 허우적거리는 모양새다. 타자는 나를 비추어보는 달빛의 미묘한 긴장속에 출렁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