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일어나니 온갖 법이 일어나고,

마음이 멸하니 감실(龕室)과 무덤이 둘이 아니구나!

또한 삼계(三界)가 오직 마음이며,

만법이(萬法) 오직 식(識)이로다!

마음 밖(外)에 법 없으니

어찌 따로이 구하겠는가?

나는 당나라로 들어가지 않겠노라!」

윗글은 원효대사가 두 번째로 당(唐)나라로 가기 위해 백제 땅의 어느 항구로 가던 중 깨달음을 얻고 적은 것이다.

원효와 의상이 항구로 향하다 날이 저물고 큰 비마져 내려 비를 피하기 위해 어둠 속을 헤매고 있었다.

때마침 어둠속에서 오래된 토감(土龕)같은 것이 어렴풋이 보여 더듬더듬 두사람은 그 안으로 들어가게 되고, 먼길에 지친 원효는 곧 깊은 잠에 빠지고만다.

새벽녘 심한 갈증을 느낀 원효는 어둠 속에서 손에 잡힌 한 바가지의 물을 단숨에 마셨다. 단번에 허기와 갈증을 씻어주니, 세상에 이보다 더한 감로수가 또 어디 있겠는가? 다시 잠이 들었고 아침이 어슴푸레 날이 밝았을 때 원효는 눈을 떴다.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인가 방금 전까지 토감이라 생각하고 누워있던 자리가 인골이 굴러다니는 오래되어 움푹패인 무덤이 아닌가.

피로에 지친 원효가 해골 바가지 하나가 눈에 들어오고, 그것을 보는 순간 어젯 밤에 자신이 그토록 시원하게 마신 물이 해골 바가지의 썩은 물이라니 그는 견딜 수 없는 구토와 고통으로 데굴데굴 구르던 어느 한 순간 문득 깨달음을 얻게 된다.

깨끗한 물과 해골 바가지의 썩은 물에 대한 분별심(分別心)인가. 아니다 그것은 분명히 원효 자신의 마음이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