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필성 칼럼니스트

이태리에서 오랫동안 살면서 작품활동을 계속하고 있는 일본의 여류작가 시오노 나나미(鹽野七生)는 그의 저서 ‘로마인 이야기’에서 로마천년을 지탱해 준 철학이 노블레스 오블리주였다고 밝혔다.

이태리인 남편은 의사로서 시오노는 왕성하게 작품활동을 하면서 지금도 일본의 90년 된 대표적 문예지·월간 ‘文藝春秋’(문예춘추)에 빠짐없이 기고하고 있고 9월호에는 ‘선정의 예’(善政의 例)을 들고 있다.

그 내용의 첫 머리는 “법률도 정치도 경제도 아직 학문으로 정착되기 전의 리더는 무엇을 기준으로 삼고 통치하고 있었을까.

그러나 통치자들은 나름대로 매끄럽게 조율해 나가는 탁월한 통치력을 발휘하고 있었다고 본다.

기원전 2세기에 들어서면서 로마제국은 흥망에 대해선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고 그저 최선기를 구가하고 있었다”고 진술하고 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풀이하면 혜택 받은 자들의 책임, 다시 말해 특권층의 솔선수범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로마의 귀족들은 전쟁이 일어나면 먼저 솔선수범하여 최전방에 나가 피를 흘리는가하면 사회를 위해선 자기의 금쪽같은 재산도 아낌없이 털어 놓는다.

귀족들은 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를 져야한다는 생각이 로마를 이끌어간 리더십이었다.

다시 말해 투철한 도적의식과 솔선수범하는 공공정신을 통해서 자신들의 삶의 질을 높인 것이다. 명문가란 어느 정도의 경제력을 갖추고 인간답게 살면서 품위있는 삶을 이어온 가문을 말한다.

어느사회든지 상류사회는 존재하기 마련인데 다만 철학과 도덕심을 갖춘 상류사회가 존재할수록 그 사회는 안정된 사회이고 더불어 사회구성원의 질이 높아질수록 품격도 올라간다.

단지 돈이 많다거나 벼슬이 높다고 명문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부자 중에는 졸부가 있는가하면 벼슬을 한 사람 중에도 정상배로 악명을 떨친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경주 최부자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을 살펴본다.

최부자집은 선조 때의 최진립으로부터 시작해서 조선의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모델이 된 것이다. 최진립장군은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이끌고 나가 혁혁한 전공을 세웠고 병자호란때엔 최전선에서 싸우다가 장렬히 전사한 것이다.

이때부터 대대로 내려온 가훈은 후손들에게 면면히 지켜져왔다. 그 가훈은 이렇다.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은 하지 말라. 그리고 재산은 만석이상은 모으지 말라는 것이었다. 또 과객이 찾아오면 후하게 대접하라. 특히 흉년기에 땅을 사지 말라. 사방 백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 가훈은 이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많은 것을 생각게 하고 있다.

그 시대의 철학과 도덕을 기초로 한 최부자집은 9대 동안 진사를 지내고 12대 동안 만석군의 부를 이어온 것이다.

만석군이 되려면 최소한 3백만 평의 전답이 있어야하니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런데 흔히들 3대를 이어간다는 것도 어려운데 최부자집은 4백년 12대 동안을 끄덕없이 이어온 것이다.

이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좋은 일을 많이 한 집에는 반드시 경사가 있다는 ‘적선지가필유여경(積善之家必有餘慶)’으로 전통적인 가치관과 일맥상통한다.

나보다 어려운 사람을 도우면 주변사람들로부터 알게 모르게 신망을 받게 마련이고 그러다보면 베푼 사람에게도 음으로 양으로 좋은 일이 생긴다. 오랫동안 적선을 해온 경주 최부잣집은 르네상스를 후원한 이탈리아의 메디치가문 못지않은 철학과 신념을 갖춘 집안이다.

얼마전 미국의 상위 50위 거부들은 모두 73억 달러를 기부했다.

또 빌 게이츠가 마이크로소프트사의 경영에서 손을 떼고 자선사업에 나선 것과 워렌 버핏이 평생 번 돈의 4분의 3인 435억 달러를 사회에 환원하면서 많은 부호들의 기부행렬에 동참하고 있는 사실은 전 세계의 이목을 끌고 있다.

이제 우리사회도 따뜻한 기부행위가 마치 온돌방의 아랫목의 온기가 윗목으로 퍼져 나가듯 그 온도계는 상승되리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