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만길 지역농업연구원장

중국을 통일한 진의 시황제는 절대 권력을 휘둘렀다. 막강한 제국을 건설했지만 시황제 사후에 진은 허무하게 멸망하고 말았다. 시황제가 절대 권력을 쥐고 무소불위의 독재를 일삼는가 하면 여산릉, 아방궁, 만리장성 축성 등 대규모 토건공사에 백성들을 동원함으로써 피폐해진 백성들의 봉기가 곳곳에서 이어졌다. 진승과 오광이 대표적인 봉기세력이었다. 타락한 황실과 귀족들의 실정에 백성들이 자구책으로 들고 일어난 민중봉기였다. 이런 형국인데 시황제의 뒤를 이은 2세 황제는 국정을 제대로 살피지 않은 채 잔악무도한 폭정을 일삼았다.

이들의 봉기를 진압하기 위해 등장한 인물들이 항우와 유방이었는데 둘은 패권을 놓고 경쟁하는 라이벌이었다. 항우와 유방은 서로 대비되는 인물이었다. 항우의 조상들은 초나라에서 장군을 지낸 명문가문 출신이었고 여러 현을 총괄하는 군에서 봉기했다. 성격이 괄괄하고 화끈했던 용장이었다. 부하들의 잘못과 실수는 일벌백계로 다스렸고 그를 따르는 군사는 용맹하기 그지없는 정예부대로 구성되어 있었다. 진 황실을 뒤엎고 새로운 패권을 쥐는 것은 항우에게 시간문제일 뿐이었다. 하지만 유방은 보잘 것 없는 서민 집안 출신이었고 항우와 달리 최말단 지역인 패에서 군사를 일으킨 하급관리였다. 성격은 신중하고 부드러운 덕장에 가까웠다. 부하들의 잘못이나 실수쯤은 관대하게 용서해 신뢰를 구축하고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모이게 했다. 그의 부대는 그야말로 오합지졸에 불과했다. 하지만 최종 패권은 항우가 아닌 유방이 차지했고 한을 개국해 전한 시대만 200년 이상 유지했다.

중국 천하를 통일하고 처음 황제란 칭호를 공식적으로 쓴 인물은 진의 시황제였다. 그 후 최고 통치권자는 모두 황제란 호칭을 썼다. 천하를 통일하지 못한 나라의 최고통치권자는 왕으로 불렀고 조그만 소국이나 지역을 다스리는 통치자는 후로 칭했다. 황제-왕-후가 통치권자의 서열이었다.

유방이 진 황실을 무너뜨리고 한을 개국할 때 서민출신답게 그의 주변에 보잘 것 없는 출신의 부하들이 모여들었지만 천하통일의 혁혁한 주인공들이 되었다. 번쾌는 개고기를 파는 백정출신이었고 하후영은 마부출신이었으며 관영은 조그만 장사꾼에 불과했다. 역이기는 하급관리에 불과했고 그의 동생 역상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들은 유방을 도와 천하를 차지하는데 지대한 공을 세웠고 결국 후에 봉해졌다.

여기에서 반룡부봉이란 고사가 나오게 되었다. 반룡부봉은 직역하면 용을 끌어안고 봉황에게 붙는다는 말이다. 그 의미는 유력 권세가에게 붙어 출세한다는 것으로 유방을 도와 한 제국을 건국하는데 공을 세우고 후에 봉해진 번쾌, 하우영, 관영, 역상 등을 빗대나온 말이다. 그러니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이 권력자에게 빌붙어 출세했다는 부정적 의미를 담고 있다. 아마 한서를 지은 반고의 입장에서는 출신이 낮은 이들이 후에 봉해진 것을 부정적으로 보는 사관을 갖고 있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유방의 세력이 항우에 미치지 못할 때 이들이 혁혁한 공을 세운 점을 고려하면 노력을 통해 성공한 모델이라는 평가도 가능하다. 그런 의미에서 번쾌, 하우영, 관영, 역상 등은 당연한 노력의 댓가를 받았다. 문제는 자리에 걸맞는 노력도 없이 빌붙어 출세하거나 과분한  댓가를 받는 작금의 현실이다.

대선이 다가오고 있다. 어느 후보를 사심 없이 도와도 해석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다른 평가가 나올 것이다. 문제는 대선캠프에 결합한 사람들이 역사관, 가치관, 세계관, 정체성, 정책과 비전이라는 큰 틀에 공감하느냐 여부이고 거기에 합당한 피나는 노력을 하면서 진지한 성찰을 하느냐이다. 줄서기, 줄세우기와 바로서기, 바로세우기는 전혀 다른 것이다. 이런 구분은 얼마나 많은 고민과 성찰이 담겨 있느냐와 진지한 노력이 스며 있느냐 여부다.

이제 본선에 근접한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세 명의 후보가 국민의 삶을 책임지겠다고 나섰다. 진의 2세 황제가 시황제의 부정적 유산을 청산하지 못해 실패한 것처럼 박근혜 후보는 아버지 박정희의 부정적 유산을 청산하지 못하면 실패할 것이다. 문재인 후보는 노무현 대통령의 유산을 물려받는 동시에 뛰어넘는 비전을 보여줘야 하는 과제가 놓여있다. 안철수 후보는 국가경영능력에 대한 비전과 역량을 보여주지 못하면 어려울 것이다.

이런 숙제를 풀어야 하는 동시에 주변에 반룡부봉의 부정적 요소를 없애고 긍정적 반룡부봉이 빛을 발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박근혜 후보는 곤혹스럽다. 박근혜 캠프의 좌장격인 홍사덕 공동선대위원장이 불법 정치자금 수수 문제로 시끄럽더니 친박 인사인 송영선 전 의원이 박근혜 후보 이름을 대며 금품을 요구한 녹취록이 공개되는 등 반룡부봉의 부정적 요소가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이러다보니 양자대결시 일부여론조사에서 문재인 후보에게 뒤지는 충격적인 결과가 나왔다.

한국 대선 판은 살얼음판이다. 돌발변수 하나가 선거결과를 판가름한다. 반룡부봉의 고사가 긍정적으로 기능하는 캠프는 승천할 것이고 부정적 요소가 많은 캠프는 추락할 것이다. 긍정적 반룡부봉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