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만길/지역농업연구원장

국가의 명운을 결정짓는 대선이 다가와 대권을 꿈꾸는 정치인들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우리 국민들은 정치에 관심이 많으면서 정치 불신도 심한 편이다. 정치를 혐오하면서도 당선되거나 성공한 정치인에게는 매우 약하거나 이권을 기대하는 성향이 짙다는 특징도 갖고 있다. 정치를 욕하거나 이에 편승해 정치적 잇속을 챙기는 일을 우선 경계해야 할 대목이다. 현명한 자세는 국민의 삶을 결정하는 것이 정치고 정치가 개개인의 삶을 좌우한다는 인식을 갖는 것이다.
따라서 정치가 바뀌기를 바라며 노력하는 참다운 정치인이나 정치변화를 위해 항상 정치에 관심을 갖고 일하는 사람들은 그 행위가 건강성을 담보하고 있다면 칭찬받아 마땅하다.

반면 정치를 혐오하면서 오히려 정치적 행위로 잇속을 챙기는 사람과 정치에 무관심한 사람은 지탄받아야 한다. 이런 사람들 때문에 정치가 욕을 먹고 당선돼서는 안 되는 사람들이 당선되어 국정을 농단하고 지방자치를 엉망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정치에 무관심하거나 잇속을 챙기는 사람들 때문에 잘못된 선택이 국가와 지역을 망치는 사례는 부지기수다. 부정부패를 욕하면서 부정부패에 젖을 대로 젖은 사람을 선택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내용은 없이 인기영합주의에 물든 사람을 쫓아 다니며 추종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실속은 없으면서 언론플레이와 이미지 정치로 일관하는 사람에게 현혹되기도 한다.

서민의 고통과 생활을 모르는 정치인을 욕하면서 평생 손에 물 한번 안 묻혀보고 호의호식한 사람을 추종하기 바쁜 모순이 정치의 일상이 되었다. 국민의식, 정치의식의 각성이 일어나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정치가 무엇인지 치열한 고민이 없기 때문에 내용은 부실하고 껍데기뿐인 정치인을 선택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겉으로 국민과 시민을 위한다고 하지만 살아온 것이 국민과 시민의 삶과는 동떨어진 사람들을 지도자로 선택하는 것도 일상이 되었다.

겉모습만 보고 그 속에 들어 있는 정치철학과 가치관, 진정성, 국민과 시민을 위한 본심을 살펴보지 못하는 모순이 흔하다. 인사 잘 하고, 언론플레이 잘하고, 만면에 웃음을 띤 정치인이 속으로는 칼을 품고 못된 정치만 일삼는 것을 왜 직시하지 못하는지 답답한 노릇이다.

중국 당나라 고종 때 유행하던 속담에 소중유도가 있다. 흔히 소중유검이라고도 한다. 고종은 황후 책립을 놓고 신하들의 의견을 물었다.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인 무소의를 황후로 책립하기 위해서였다. 무소의는 성은 무요, 이름은 조로 흔히 미랑이라고 불렸는데 당태종의 사랑을 받았다.

태종이 죽은 후 아들인 고종이 즉위했는데 이 고종 역시  미랑을 사랑해 소의 직책을 주고 이제는 황후로 책립하기 위해 신하들의 의견을 물은 것이다. 이 여인이 후에 측천무후가 된, 중국역사에 전무후무한 주인공이다.

무소의는 본래 성격이 포악한 데다 아버지인 태종이 사랑했던 여인이기에 아들인 고종이 황후로 책립한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이었다. 대부분의 신하들이 못마땅하게 생각했지만 이의부라는 벼슬아치가 앞장서 무소의를 황후로 책립해야 한다고 주장해 결국 무소의가 황후가 되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로 인해 승승장구한 이의부는 막강한 재상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소중유도는 이런 이의부를 빗댄 속담이었다. 이의부가 겉으로는 공손하고 만면에 웃음을 띠었지만 속에는 칼을 품고 악랄하게 정적을 숙청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의부를 가리켜 소중유도라고 말했다. 이의부의 눈 밖에 난 사람들이 온갖 방법으로 수모와 숙청을 당했기 때문에 이의부가 없는 자리에서 백성들과 신하들은 소중유도라고 수군거렸다.

어느 누구의 일거수일투족도 정치와 무관한 것은 없다. 정치에 무관심한 것도 잘못이지만 소중유도한 정치인을 추종하고 따라다니며 이권을 노리는 것은 죄악이다. 정치인을 욕하기 전에 국민의 삶을 결정짓는 선택에 있어 심사숙고 했는지 반성해야 한다.

겉만 번지르하고 내실은 없는 정치인, 만면에 웃음을 띠고 친절하게 인사 잘하는 것 같지만 부정부패와 잇속에 물든 정치인, 언론플레이에 맛들인 이미지 정치인, 평생 서민의 삶과 고통이 무엇인지 모르고 살아온 귀족 정치인을 뽑는 소중유도의 선택을 했으니 누가 정치인을 욕하고 탓할 수 있단 말인가.

정치와 정치인의 수준은 국민의 수준 이상일 수 없다는 만고의 진리를 새삼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치인의 잘못과 정치의 왜곡으로부터 자유로운 국민이나 시민이 얼마나 되는지 성찰해야 한다. 무관심하거나 사소한 이권에 빠져 엉터리 지도자를 뽑아 놓고 소중유도라며 수군대는 뒷담화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