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만길 지역농업연구원장

조선시대 지방 관리를 감찰하고 민정을 살피던 관리들을 어사라 불렀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워낙 암행어사라는 말에 익숙해져 있으나 의외로 어사에 대한 오해가 많고 무지한 것도 사실이다.

조선시대 어사는 일반적으로는 정 3품 이하 당하관이 주로 파견되었다. 지방 수령들의 부정부패 등을 조사한 후 이를 임금께 보고해야 할 의무는 있었지만 드라마처럼 지방 수령의 잘못이 있다 해서 어사가 직접 파직할 수는 없었다. 어사는 몰래 임무를 수행하는 암행어사와 특별 임무만을 띠고 파견되는 별견어사로 구분되었지만 흔히 어사하면 암행어사를 떠올리게 된다. 이는 춘향전 이몽룡의 행적이나 어사 박문수를 통해 암행어사가 크게 각인되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별견어사는 공식적인데 비해 암행어사는 비공식적으로 활동한 셈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어사 박문수도 흔히 암행어사로 각인되어 있지만 단 한 차례도 암행어사를 한 기록이 없고 별견어사만 4차례, 약 1년 동안 활동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일제 강점기 위인, 영웅이 필요한 시기에 박문수전이 유행하는 계기가 되어 줄곧 암행어사의 대명사로 자리 잡게 되었다는 것이 학계의 평가다. 박문수는 호조판서와 병조판서까지 지낸 경력으로 지방행정에도 밝았고 재직 시 굶주린 백성들을 위해 신속하게 창고를 열어 구제에 나서는 활약을 여러 차례 했기 때문에 다른 암행어사의 행적까지 박문수로 수렴되었다는 것이 올바른 평가라 하겠다.

암행어사는 흔히 암행어사 임명 문서인 봉서, 파견지역과 임무가 기록된 사목, 도량형을 검사하고 확인하는데 쓸 수 있는 자인 유척, 마패를 소지하고 목적지로 출발했다.

별견어사와 달리 암행어사는 어사 신분을 위장해야 했기 때문에 남루한 옷차림은 기본이고 온갖 더위와 추위에 시달리는 등 그 고초가 이를 데 없었다. 암행어사로 유명한 박내겸이 지은

‘서수일기’에 따르면 그가 하루 동안 힘겹게 이동한 거리는 매일 21㎞에 달했다. 그야말로 풍잔노숙이 다반사였으니 암행어사의 임무수행이 만만치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심지어 암행어사들은 임지에 파견되었지만 임무수행도 하기 전에 목숨을 잃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이러다보니 암행어사는 젊고 건강하며 패기가 있는 문관 가운데 선발했고 벼슬도 비교적 높지 않은 당하관으로 임명했다.

암행어사와 관련한 기록들을 종합해 보면 임지에 도착해서 업무를 수행한 어사는 약 30%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여러 사유로 인해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것을 알 수 있다. 임지로 가다가 추위에 동사하거나 굶주려 죽는 일도 있었고 산적에게 붙잡혀 목숨을 잃는 일도 있었다. 험한 산길에서 들짐승에게 당하거나 마패를 분실, 도난당하는 어사도 있었다.

특히 암행어사의 신분이 노출되어 부정부패한 수령이 보낸 자객에게 암살당하는 경우도 있었고 역으로 암행어사를 미행시켜 사소한 잘못을 트집 잡아 파직시키게 만드는 악덕 수령들도 있었다. 부정부패에 썩은 수령이 자신의 안위를 위해 암행어사가 임지에 오지 못하도록 일을 벌인 사례가 많았던 모양이다.

정부와 전라북도가 공직기강을 다잡기 위한 대규모 암행감찰을 벌인다는 소식이다. 박근혜 정부는 새 정부 초기에 공직기강을 바로 잡겠다는 의지의 표현일테고 전라북도 역시 여기에 발맞추는 한편 최근 잇따라 터지는 공직비리에 대한 감찰활동이 필요했던 모양이다.

이 소식에 씁쓸한 생각이 드는 것은 공직비리가 어제 오늘의 일도 아닌데다 공직기강 확립이란 것이 자칫 힘없고 재수 없는 공직자 엄벌에 처하는 일로 그치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정작 큰 도둑은 활개치고 사소한 잘못으로 중징계 당하는 일이 왕왕 있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암행어사는 지방 수령의 잘잘못을 가려내는 일이 중요했다. 불쌍한 포졸이나 관속 잡는 일이 목적이 아니었다. 지자체장을 비롯해 비리의 온상으로 지목되는 부서의 실세들은 잡지 못하면서 개인 용무를 위해 잠시 이석한 공직자들이나 때려잡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앞선다.

공직기강은 바로잡아야 한다. 국민의 세금으로 일하는 공무원의 기본자세 확립은 기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수없이 저지르는 힘 있는 실세들의 부정부패는 잡지 못하면서 특별 감찰활동이란 미명 아래 건수 잡기 감찰이 되지나 않을까 염려된다.

지자체장들을 비롯해 부정부패에 찌든 공직자들이 누구인지 알 사람은 다 아는데 그들은 끄떡없고 사소한 잘못임에도 여론몰이식 마녀사냥으로 중징계 당하는 공무원이 없는 특별 공직감찰이길 바랄뿐이다.  그래야 세상이 공평하고 정의로운 것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