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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생일

윤복순 윤약국 약사

며느리 생일이 다가온다. 우리 식구가 되고 처음이다. 아니 두 번째다. 작년에는 신혼여행으로 외국에 있어 특별하게 해 준 것이 없다.

시어머니로서 뭔가 해주고 싶다. 남편은 서울에 올라가 맛있는 것 같이 먹고 옷도 한 벌 사주고 오자고 한다.

결혼하고 지금까지의 생일을 회상해 본다. 시어머니는 내 생일이면 새벽에 전화를 하셨다.
“생일 축하한다. 밥 아직 먹지 말아라.”

바로 먹어도 좋을 만큼 음식들이 따뜻했다. 시어머니 마음만큼이나. 내 아침식사 시간에 맞춰 음식을 준비했으니 아마 꼭두새벽부터 종종거리셨을 것이다. 손이 많이 가는 나물 서너 가지, 잡채, 불고기 등 몇 가지를 맛깔스럽게 장만해서 가져다 주셨다.

어느 해는 당신도 돈이 좀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시어머니는 조금이라도 여유 돈이 생기면 절에 다녀오셨다. 그 날도 절에 무슨 일이 있는 줄 알았다.
“절에 가시게요? 얼마 정도 드리면 될까요?”
“아니다. 애비 용돈 한 번 주고, 니 반지 하나 사주고 싶어서 그런다.”
“애비 월급이 얼마나 많은데 용돈을 줘요? 그리고 저도 반지 있어요. 하루에도 손을 몇 번씩 씻어야 하니 안 끼는 거예요.”
“너도 나이 먹어봐라. 내 마음 알거다.”

지금 나는 그때 시어머니 나이보다 조금 젊다.

또 이런 해도 있었다. 점심 먹고 약국에 나갈 테니 그리 알라는 연락을 받았다. 오십을 넘긴 나이인데도 시어머니가 오신다니 긴장이 되었다. 시어머니는 오시자마자 흰 봉투를 내미셨다.

“너랑 애비랑 용약 해 먹어라. 너희들 보약 해 주려고 적금 들었어. 은행에서 바로 오는 길이다.”
“용약은 저도 짓는데 무슨 돈을 주셔요?”
“받아둬라. 나도 너희들에게 주고 싶었어. 너희들이 늙어 속상해 죽겠다.” 거금 50만원을 받았다. 시어머니의 전 재산이었을 것이다.

신혼 초 가난한 살림을 떠맡고 매 달 시댁에 생활비를 드려야 하는 날이 금방금방 돌아와 힘들었던 기억이 새롭다. 나도 남들 다 받는 보너스 한 번 받아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다.

결혼하기 전 내 생일은 그냥 그랬다. 할아버지 제사와 며칠사이여서 제사 음식을 남겨 두었다 아침에 먹는 것으로 그만이었다. 그래도 어머니는 “오늘은 니 생일상이다” 라며 의미를 부여해 줬다.

어머니는 정말인지 지어낸 말인지 언제나 나의 기를 살려 주셨다.

“너는 태몽이 좋았다. 빨래하는데 복숭아가 떠내려 오더라. 그중 제일 크고 좋은 것을 집었거든. 또 너 낳던 날 아랫배미 논도 계약했잖아.”
그런 환경에서 자란 나는 어렵고 힘든 일이 있어도 희망을 잃지 않았다. 지금까지 모든 일에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성격으로 사는 것은 모두 어머니의 격려 덕일 것이다.

마흔아홉 살 생일 때였다. 그 날도 시어머니의 전화와 음식을 받았다. 나이 때문이었는지 친정어머니 생각이 났다. 세상에 나를 낳아주신 분, 그 분이 없었다면 나는 없고 오늘도 없을 것이다. 어머니가 대접받아야 하는데.

어머니 산소에 다녀오고 싶었다. 생일날 어머니 산소를 생각한 것은 처음이었다. 내 나이 서른일곱에 어머니는 돌아가셨다. 이런저런 생각에 눈물이 핑 도는데 “여보 생일 축하해” 하며 남편이 꽃바구니를 들고 들어오셨다. 얼떨결에 눈물을 보였다. 내 생일날 꽃 사주려고 일주일 동안 점심을 얻어먹었단다. 그런데 오늘이 화이트데이라서 꽃값이 비싸 마흔 아홉 송이를 못 샀다며 미안하다고 했다.

다음날은 일요일이었다. 남편이 어머니 산소에 가자고 했다. 어떻게 알았을까. 돌아오는 길에 남편이 엉뚱한 질문을 했다.

“어머니 장례식 마치고 내가 당신한테 한 말 생각나?”
“응, 오늘부터 당신이 내 남편이면서 내 엄마라고 했지.”
“어제 어머니 생각하고 있었지? 해마다 받는 꽃다발에 눈물 흘릴 당신이 아니잖아.”
육십 번의 생일 중에 어머니 산소에 갔다 온 일이 제일 선명하다.
바로 아들 통장에 돈을 넣었다.
“아들아 OO이 생일날 너의 장인 장모 모시고 나가서 그 분들 좋아하시는 것 사 드려라. 토요일이더라.”
“엄마!”
“할 수 있을 때 하는 거야. 사람이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을 때가 오거든.”

선물은 내가 할 수 있는 걸로 하면 된다. 그것이 곧 내 마음이다.

시어머니는 이제 늙고 아파 내 생일을 챙겨주지 못한다. 그 바통을 내가 받아 며느리 생일날 전화를 해야겠다. 네가 나를 시어머니 만들어 줘서 고맙다고 그리고 행복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