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 사람들 > [독자기고] 기초선거 정당 공천

[독자기고] 기초선거 정당 공천

▲ 원론적으로 찬성, 현실적으론 한시적 폐지를

기초선거(기초의원, 단체장)의 정당 공천 폐지 문제가 올 하반기 정치 일정의 중요 이슈가 됐다. 정당 공천을 찬성하는 쪽과 정당 공천 폐지를 찬성하는 쪽 모두가 나름대로의 명분과 논리를 가지고 자신들의 주장을 강하게 펼치고 있는 가운데, 이 문제에 대한 나의 입장은 기초선거 정당 공천을 원칙적으로 찬성하나 현실적으로는 한시적 폐지를 하자는 것이다.

암울했던 군사독재에 의해 폐지됐던 지방자치 선거가 민주화 이후 1991년에 부활했고, 2006년에 이르러 기초의회 선거까지 정당 공천이 전면적으로 실시됐다. 그 당시 정당 공천을 기초선거에까지 실시하는 논거와 명분은 크게 두 가지였다. 정당 정치를 근간으로 하는 민주국가에서 기초 단위까지 정당의 책임정치를 실현한다는 것이 가장 크고 중요한 첫 번째 이유였다. 또한 지역 토후세력의 지방의회 진출을 견제하고 유능하고 참신한 인재들을 발탁해서 지방의회의 질을 높이자는 것이 두 번째 이유였다.

나는 이 같은 논거와 주장에 원칙적으로 공감하고 찬성한다. 그런데 정당 공천의 순기능이 잘 나타나기 위해서는 전제 조건이 있다. 여러 정당들(최소한 양당)간의 상호 경쟁과 힘의 균형이 이뤄지고, 당내 민주화가 실현돼 후보자 공천과정이 공평하고 정의로워야 하는 것이 그것이다.

그러나 지난 수십 년 간 우리 정치는 한 지역을 한 정당이 독점하는 기형적 정치구조였다. 우리 전북은 민주당 일당 독점체제가 계속돼 민주당 공천이 곧 당선이라는 등식이 성립되었다.

따라서 지방선거에 출마하고자 하는 입지자들은 민주당 공천을 받기 위해서 공천에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국회의원에게 완전히 종속되는 갑을 관계가 됐다.

을의 위치에 있는 입지자들은 ‘슈퍼 갑’인 국회의원의 마음에 들기 위해 하수인의 역할도 마다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국회의원은 자신들의 입맛대로 공천이 이뤄지도록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그 결과 지방의원의 질은 끝없이 하락했고 지방의회의 위상 추락은 계속됐다.

우리가 살고 있는 기초 단위에서 정치의 3주체인 국회의원, 시장, 시의원이 모두 민주당 일색이다 보니 상호 견제와 감시는 사라지고 끼리끼리 ‘친목 구락부’가 된지 오래다.

이런 구조에서 부패와 부정의 발생은 필연적인 것이 되고 정당 공천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잡음은 끊이지 않았다. 무능하고 부패한 지방 의회를 바라보면서 국민과 유권자는 정당 공천 폐지를 압도적으로 원하고 있고, 더 나아가 지방 의회 무용론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국민적 정서와 요구를 받아들여 지난 대선 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와 민주당 문재인 후보가 ‘기초선거 정당 공천 폐지’를 공약으로 발표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내가 기초선거 정당 공천을 원론적으로 찬성하면서도 현실적으로는 한시적(2~3회)으로 폐지하자고 하는 데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 째로 정당 공천의 순기능인 국민과 시민에 대한 책임정치는 이미 사라지고, 오직 국회의원에 대한 책임만을 다하도록 종속된 지방 의회와 지방 의원을 제자리로 돌려놓기 위함이다.

둘째는 지난 대선 시 후보들의 공약은 반드시 지켜져야 하기 때문이다. 공당과 공당의 대선 후보들이 한 공약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정치에 대한 불신은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깊어질 것이다. 공약이 반드시 지켜지는 모습을 국민과 유권자들은 보고 싶어하고 볼 권리가 있다. 약속 이행이야말로 정치에 대한 신뢰 회복의 첫걸음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얼마 전 민주당이 당원 투표로 ‘기초선거 정당 공천 폐지’를 당론으로 확정한 것은 참으로 다행스럽고 고마운 일이다. 이제 줄곧 공천 폐지의 입장을 견지한 새누리당과 민주당이 협상 과정을 통해 좋은 결실을 맺을 것으로 기대한다. 국회에서의 협상 과정을 통해 정당 공천 폐지의 문제점으로 지적돼 온 ‘여성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 ‘소수 정당의 진입 장벽 제거’에 대한 대안이 잘 마련되길 기대한다.

이미 민주당과 새누리당에서 내놓은 ‘여성 명부제’, ‘독일식 정당 명부제’, ‘비례 대표의 확대와 50% 여성 할당’ 등이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또한 무늬만 폐지가 아니라 공천 폐지의 취지를 잘 살리는 방향으로 선거법을 개정해야 한다. 과거처럼 ‘내천’ 같은 편법과 반칙이 없도록 엄격하고 세밀한 선거법 개정이 이뤄져야 한다.

이야기를 마치면서 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공천 폐지 여론이 압도적으로 높은 상황을 초래한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자기 반성을 촉구한다. 또한 지금부터라도 국민과 시민들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정치가 되도록 노력해줄 것을 소망한다.

김 상 기

익산 희망정치 시민연합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