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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대한민국

황만길 지역진흥원장

참 한심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나라가 온통 신 매카시즘 광풍이 몰아치고 있고 정치는 실종되었기 때문이다. 역사조차 정권의 입맛에 맞추려 드니 고무줄 역사가 될 모양이다. 2013년 현재 대한민국의 정치와 역사는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시계 제로의 상태가 되었고 민주주의와 역사의 진보는 완벽하게 수십 년 전으로 퇴행했다.

우리 근현대사는 피를 흘리며 민주주의와 역사를 만들어 왔다. 피로 쓴 역사와 피로 이룩한 민주주의였다. 일제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수없이 많은 애국지사들이 목숨을 잃어야했고 감옥에서 여생을 마쳐야 했다. 해방공간에서는 좌우이념 대립으로 무수한 사람들이 아무런 잘못도 없이 죽임을 당해야 했던 아픈 역사를 안고 있다. 이념이 다른 사람은 물론 그 가족, 친지, 이웃이 죽어야했고 심지어 일면식이 없는 사람도 누구 편으로 낙인찍히면 소명의 기회도 없이 죽거나 옥에 갇혀야 했다.

곧이어 발발한 한국전쟁(6.25) 역시 좌우대립의 산물이었다. 어느 한쪽을 먹어야겠다는 이념 대립이 결국 북진통일과 남진통일로 표현되었고 결과적으로는 동족상잔의 비극을 낳았다. 한국전쟁의 연장선에서 북으로 가지 못한 좌익 진영의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산으로 쫓겨 들어가 빨치산 활동을 전개했고 결국 이들은 가족까지도 희생당하는 비극으로 생을 마쳐야 했다.
희생자가 많았던 제주 4.3항쟁이나 여순사건은 우익에 의해 벌어진 피의 숙청이었고 이념과 관련 없는 무고한 사람들까지 수없이 목숨을 잃어야 했다. 한국의 우익과 보수 세력은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해방공간과 한국전쟁 이후의 좌우대립에서 희생당한 사람들의 대부분은 우익에 의한 좌익의 죽음이었다.

5.16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역시 반공을 국시로 정하고 생각이 다른 반대세력은 공산주의, 좌익, 간첩으로 몰아 숙청하고 매장시켰다. 그렇게 또 많은 사람이 희생당했다. 독재에 항거한 사람을 간첩으로 몰고 민주주의 ,자유, 인권을 말하면 반대세력으로 몰아 탄압하는가 하면 유신헌법으로 공포정치, 초헌법적 정치를 했다. 만약 오늘날 민주주의를 압살하고, 사유재산을 강제로 침해하고, 유신헌법으로 나라를 다스리고, 하향식의 새마을 운동을 펼쳤다면 정권을 유지하지 못하거나 지지율이 한자리수를 유지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80년대 유신독재를 종식시킨다며 김재규에 의해 박정희 대통령이 사살된 후 찾아온 서울의 봄은 민주주의의 열망에도 불구하고 전두환 신군부에 의해 광주 학살이 자행되며 또다시 민주주의는 유보되었다. 6월 항쟁, 정권교체까지 거치며 민주주의는 정착되고 극우 반공이데올로기도 사라지는 듯 했다. 하지만 민주주의와 역사는 퇴행하고 말았다.

결국 대한민국의 근현대사는 친일세력 대 독립운동세력, 좌와 우, 독재세력과 민주화세력, 보수와 진보,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이분법 틀 안에서 100년 동안 피를 흘리며 보내야 했다. 이 과정에서 다수의 희생자는 왼쪽에 선 사람들이었고 기득권을 누린 사람들은 대부분 오른쪽에 선 사람들이었다.

불행하게도 2013년 현재 우리의 자화상 역시 한 치의 변함도 없이 그대로다. 종북 좌빨이라는 터무니없는 낙인이 찍히면 변명이나 소명의 여지도 없이 신매카시즘에 의해 희생당하기 일쑤다. 지금 이 시대에 종북 좌빨 공세로 정권을 유지하고 있다면 전 세계가 놀랄 일이고 불행한 일이다. 이런 식이면 공산국가에 스마트폰을 파는 삼성의 이건희 회장도 처벌받아야 한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공산주의자들에게 스마트폰을 제공한 것은 그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적을 이롭게 한 것이니 국가보안법으로 처벌해야 한다는 논리가 성립하지 않는가?

이런 상상이 현실이 되었다. 이석기 의원이 현실과 동떨어진 주장을 한 점이나 참석자들이 남북대결 국면에서 전쟁이나 일어나지 않을까 걱정하며 과장된 주장을 펼친 것은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이런 정도를 내란음모 혐의로 씌워 여론재판, 마녀사냥을 하고 국회에서 체포동의안을 가결시킨 것은 이 시대에 대한민국 국회에서 있어서는 안될 일이다. 더 가관인 것은 새누리당 김진태의원이 반대, 기권표를 던진 의원들에게 종북 딱지를 붙이고 몰아세운 점이다.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이 자유로운 의사를 표현한 것을 종북 좌빨로 몰아세우기 식이면 이 나라와 국회가 온전한 곳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21세기에 사는 우리는 20세기에 갇혀 살고 있고 피로 이룩한 민주주의와 피로 쓴 역사는 종북 좌빨이란 이름의 덫에 발목을 잡혀 또다시 피를 흘리고 있다.

정권유지와 정파이익, 기관이익을 위해 사라져가는 낡은 이념의 무기를 꺼내든 극우세력들에게 “예수그리스도가 인류의 보다 나은 삶을 추구한 최초의 사회주의자였다”는 고르바초프의 말을 전해주고 싶다. 깨어 있는 국민의 생각이 절실한 시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