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복순 윤약국약사

나는 컴퓨터와 친숙하지 못하다. 한글은 읽을 줄 아니 하라는 대로만 하면 될 터인데 괜한 울렁증이 있다. www.어쩌고 하면 영어는 더 느려서 시간이 걸리니 상대방에게 미안해 바로 얼어 버리고 만다.

6월, 몇 년 만에 불용재고 낱알 반품이 결정되었다며 컴퓨터에 입력하라는 공문이 왔다. 컴퓨터로만 반품이 가능하다고 했다. 나는 느리고 컴퓨터용어도 잘 몰라 제약회사 직원을 불렀다.
사이트를 다운받았는데 지난번에 한 것과 같은 화면이 나왔다. 나는 지난번 것을 지우지 않았다며 그걸 찾아냈다. 직원한테 입력하는 방법을 배워 떠듬떠듬 한나절은 걸려 입력하였다.

며칠 후, 스티커 출력하는 법을 몰라 머리를 쓰고 있는데 마침 그가 와서 해 주었다. 한 품목마다 약이름, 제약회사, 제조번호, 유효기간, 단가, 낱알숫자, 총금액, 약국이름, 약사이름, 전화번호 등을 적어 약병에 붙이는 작업을 또 한나절 했다.

주거래 도매상직원에게 낱알반품은 언제 가져 가냐고 물으니 아직 결정되지 않았단다. 서울 경지지방에선 취소될지도 모른다는 설이 있다며 기다리라고 했다.
보름 이상이 지났는데도 연락이 없어 대한약사회와 제약사간에 뭔가 얘기가 잘 안 되는 줄 알았다. 그러던 어느 날 뜬금없이 다른 약국들은 “수거중”이 떠서 다 반품을 수거해 갔는데 왜 우리 약국은 안 하냐고 연락이 왔다.

걱정하지 말란다. 7월 26일 하루 그 사이트가 열리니 미처 하지 못한 약국들은 그 날 하면 된단다. 드디어 그날 담당자가 “수거중”이 뜨게 하는 방법을 다 알아 가지고 왔다. 내 컴퓨터의 반품 사이트를 열어보고는 다르다는 것이다. 내가 옛날 사이트에 입력했기 때문에 “수거중”이 뜨지 않음을 알았다.

부리나케 올해 사이트를 다운 받으려고 전북약사회에 연락해 주소창을 알아냈고, 하라는 대로 해서 실행에 옮겼다. 아이콘도 만들었다. 더블클릭을 하면 서버접속에 실패했다고 떴다. 몇 번을 시도하다 일단 도매상직원을 보내고 나 혼자 차분히 해 보기로 했다.

의료보험에 관련된 컴퓨터를 관리해 주는 서울 회사에 전화를 해 전후사정을 얘기하니 자기네 프로그램이 아니라서 잘 모르겠단다. 다시 전북약사회 반품담당자와 간신이 연락이 닿아, 접속이 되지 않는다고 했더니 올해의 새 사이트는 이미 없어졌단다.

전 사이트에 입력한 것을 이번 사이트로 옮길 수는 없냐고 물으니 이런 프로그램은 1회용이라서 작업이 끝나면 바로 없앤다고 했다. 나는 컴퓨터 실력이 없어 새로 만들려면 아쉬운 소리를 해야 돼 한 번 만든 것은 잘 간직하는 편이다. 더구나 낱알반품사업은 지속 사업이라서 그것으로 쭉 쓰는 줄 알았다.

선입견, 고정관념이 가끔씩 나를 오류에 빠지게 한다. 6월 말쯤이었을 것이다. S선생의 모감주나무에 대한 글을 읽고, 새벽에 원광대 수목원으로 향했다. 노랑꽃이 핀 나무, 6월에 피는 꽃은 그리 많지 않아 금방 찾을 줄 알았다. 그런데 아무리 둘러봐도 노란색이 보이지 않았다. 사전지식이 없이 왔기 때문이라며 수련 백련 등만 감상하다 돌아왔다.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노랑꽃이 무더기로 피어있고 이 꽃이 지면서 꽈리 같은 봉지가 맺힌다고 한다. 그 봉지가 나뭇잎에 비해 연초록을 이루고 있다. 벌써 꽃이 지고 봉지가 맺혀 있어 못 찾았다고 생각했다. 7월에도 꽃이 핀다고 했는데 올 해는 여름이 일찍 와서 그런 것 같았다.

다음날 갔을 때 어느 큰 나무가 정말 윗부분만 옅은 녹색을 띠고 있었다. 기쁜 마음에 그쪽으로 바로 갔다. 새 잎이 나서 그런 것이었다. 이 나무 저 나무 하나하나 정성을 다해 눈여겨봤지만 찾지 못했다. 맥타섹콰이어길을 산책하다 돌아왔다.

S선생한테 연락해 어디쯤인지 알려달다고 했더니 직접 알려주겠다며 며칟날 만나자고 했다. 다음날 새벽 또 수목원에 갔다. 드디어 찾았다. 아직은 노랑꽃이 몇 개 피었고 그 나무 밑에는 다른 이름표가 꽂아있다. S선생과 만났을 때는 꽤 많이 피었고, 컴퓨터 사진은 확대사진임을 알았다.

반품은 단념하고 그런 프로그램은 1회용이라는 것을 알았으니 한 가지는 배웠다며 다음번에 잘 하자고 다음을 돌려 먹었다. 그러나 생각할수록 화가 나 맥없는 볼펜만 서너 번 책상에 던졌다. 조금 손이 느리기로서니 하라는 대로만 하면 되는 것도 못하는 바보라는 생각에 좀 우울한 하루였다. 홧김에 OO질 한다고 바탕화면에서 지난번 것 이번 것 반품 관련 아이콘을 다 지워버렸다.

8월초 도매상직원이 숨 가쁜 목소리로 반품을 해주겠다며 빨리 제약회사별로 꾸러미를 만들어 놓으라고 했다. 회사에 사정해서 도와주고 싶단다. 지난번 사이트에 입력한 것을 복사해 같이 넣어야만 한단다. 아뿔사 아이콘도 다 없애버렸는데.

아~ 어디서부터 일이 꼬였을까. 차근차근 생각해 보니, 반품목록을 작성하고 혹시 몰라 인쇄해 놓았던 생각이 났다. 점심도 굶어가면서 제약사별로 포장을 하고 약품명, 수량, 금액 등을 일목요연하게 표를 만들어 넣었다.

담당자가 직접 가지고 가 회사 컴퓨터로 엑셀작업을 해 주겠단다. 더운데 고맙고 미안하고 그렇다.

“이렇게 볶아 먹어서 어떡허냐. 나이 먹은 약사 중 내가 제일 못하지?”

원로들 중 혼자 근무하는 약사들은 아예 포기한단다.

“그래, 그럼 내가 최고네?”

그렇다. 지금부터 나는 컴퓨터를 제일 잘 한다. 이것만 내 머릿속에 입력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