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남곡 희망연대 지도위원

우리는 절대빈곤과 독재의 긴 터널을 통과하였습니다. 그런데, 행복할 줄 알았는데 여전히 안개처럼 뿌옇게 무엇인가가 앞을 막고 있습니다. 세월호의 비극을 통해서 그 정체가 보이는 것 같습니다. 이제 그 안개를 헤치고 진실한 행복을 향해 어깨를 나란히 나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세월호 희생자들 특히 그 어린 넋들의 제단에 바쳐야할 꽃다발입니다. 

물질은 과거에 비해 풍부해 졌는데 물질의 노예가 되고, 자유는 신장되었는데 이기주의의 노예가 되어 있는 우리 모습을 발견합니다. 이제 물질이 아니라 사람이 중심이 되는 사회, 모두의 이익이 나의 이익으로 되는 사회로 변혁되어야 합니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하시고 있거나 하시려고 하는 일들이 바로 그런 세상을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할 수 있으려면 우리가 어떤 생각과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 것인지에 대해 두 가지를 제안 드리고자 합니다. 우리는 행복을 위한 필요조건들을 이미 갖추었습니다. 이제 한 발 앞으로 내딛으면 됩니다.
첫째 물질이 목적이 되어버린 전도된 제도, 시스템, 문화, 의식을 변혁해야 합니다. 제도와 의식은 이 사회를 지탱하는 두 기둥입니다. 이 둘은 서로를 받쳐주고 있습니다. 불의를 미워하기는 쉬어도, 불의에 물들지 않기는 어렵습니다. 물질적 토대 위에 정신이 성숙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절로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정신의 가치를 신장시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물질적 이익 앞에 영혼을 팔아버리기 쉽습니다. 종교는 물신(物神)에 지배되기 쉽고, 진보는 이익 앞에 휘청거리고, 인격은 분열되기 쉽습니다. 

세월호의 비극은 그 극심한 슬픔과 분노를 통해 자신의 삶과 세상을 돌아보게 합니다. 비장한 결심이 아니라 일상의 변화가 긴요합니다. 일상의 삶에서 중심가치가 이동해야 합니다. 투표행위, 기부, 양보, 학습, 투쟁 등에서 중심가치의 이동이 개인적으로 집단적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러한 시민의 자각된 정신이야말로 사람 중심의 제도로 변혁하는 확실한 보루가 될 것입니다. 중산층 이상의 양보가 없이는 양극화가 해결되기 어렵고, 정규직의 양보가 없이는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고, 이익 중심의 투쟁에서 넘어서지 못하면 진정한 연대의 기치를 세우기 어렵고, 물신(物神)과 기복(祈福)의 자기 숭배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참된 종교가 되기 어렵습니다. 이것이 지금의 현실입니다.

둘째 마음의 삼팔선을 허물고, 구동존이(求同尊異 : 같음을 구하고, 다름을 존중한다)의 태도로 진실한 세상을 만들기 위하여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합니다. 나라가 나아가야할 목표도 보이고, 헤쳐 나가야할 장애도 보입니다. 그런데 막상 전진하려면 가로막는 너무나 강고한 벽 앞에 부딪칩니다. 거의 반반으로 나누어져 서로 적대하고 배제하려는 ‘진영’입니다. 이것을 허물지 않고는 나라의 진운(進運)이 막힙니다. 세월호의 비극은 이것을 허물라고 합니다. 복잡하고 중층적인 시련과 모순 속에서 싹튼 이 강고한 진영은 ‘마음의 삼팔선’을 허무는데서 무너지기 시작할 것입니다.

‘내가 옳다’는 그 생각이 사실은 ‘자신의 감각과 판단’일 뿐이라는 자각이 시작되어야 합니다. 부부 사이에서, 부모 자식 사이에서, 이웃 사이에서, 직장 동료 사이에서, 뜻을 같이 하는 동지 사이에서, 정치와 시민운동의 공간에서, 노노(勞勞)간, 노사(勞使)간에서 이 자각이 연습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진척이 되면 비로소 ‘한국형 연합정권’이 탄생하여, 창조적으로 새로운 문명을 창출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반생명(反生命)의 질서 속에서 숨져간 안타까운 모든 넋들을 위로하고, 그들을 온전히 해방하는 것은 생명의 질서를 세우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보내는 세월호 희생자들의 애절한 호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