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익산시민 유 성 무 10년 전 겨울에 있었던 일로 기억한다. 거듭되는 낙선의 아픔을 겪던 사람에게 누군가 안타까운 사연을 전했다. 병원에서 사망한 환자의 유가족들이 병원비가 없어서 곤경에 처해 있다는 것이었다. 오죽이나 도움을 요청할 사람이 없었으면 그 사람까지 찾았을까! 이 소식을 접한 그 사람은 꼬박 이틀을 여기저기에 도와달라고 간청했다. 평소 자기 코가 석자여도 어디에 말 한 마디 못하던 사람이었는데! 다행히 그 사람의 애원을 들어준 병원 측의 배려로 유가족들은 치료비를 상당부분 감면받았고 무사히 장례를 치를 수 있었다. “괜히 아픔을 겪은 가족들이 다른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게 하는 것이 싫네.” 이 이야기를 선거 때 주변에 알리자는 권유에 그 사람이 담담하게 한 말이었다. ‘잘 할 수 있고 하고 싶은 일’이라고는 사람들에게 힘이 돼주는 것밖에 없다고 말하던 그 사람이 익산시장에 당선된 박경철이다. 이번 박경철의 당선은 참으로 여러 가지 의미를 갖는다. 사실 박경철만큼 불우한 성장기를 보낸 사람도 흔하지 않다. 그리고 27년 동안 무려 12번 낙선을 하면서 실패자로 낙인찍힌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동안 박경철과 그의 가족들이 겪었을 좌절과 고통이 얼마나 컸겠는가? 그런 그가 이순(耳順)을 앞둔 나이에 시민의 선택으로 마침내 꿈을 이뤘으니, 개인적으로는 인간승리의 드라마를 쓴 것이다. 처음으로 가장으로서, 부모로서, 한 인간으로서 당당한 모습을 보였으니 말이다. 개인 박경철의 이야기는 단순한 화젯거리로 치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익산시장 박경철의 성공여부는 익산 나아가서 우리나라 정치사에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여러 명의 무소속이 단체장으로 당선됐다. 그러나 박경철처럼 경력, 재산, 조직, 정당도 아예 없는 후보자가 일당독식이 굳어진 지역에서 당선된 경우는 없다. 그렇기에 박경철의 당선이 갖는 의미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물론 박경철의 당선은 본인의 노력, 동정론 그리고 새정치를 외쳤던 특정정당에 대한 실망이 크게 작용한 상황에서 양자대결로 치러진 결과임을 부정할 수 없다. 유권자들의 선택은 집단지성의 전형이다. 때로 특정정치세력들이 부추기는 지역감정에 휘둘린다고 폄하되기도 하지만, 선택의 폭이 좁았을 뿐 항상 그 시대적 상황에 맞는 선택을 하여 왔다. 이번 익산시장 선거도 마찬가지다. 시민들은 30년 넘게 힘을 실어준 특정정당의 오만함에 대하여 엄중한 경고를 보낸 것이다. 정당에게 맡겼지만 요원한 변화를 시민의 힘으로 만들겠다는 것이 시대인식이었던 것이다. 박경철의 당선은 새로운 지역정치구도에 대한 시민들의 과감한 시험이다. 시민들은 원조 무소속인 박경철의 손을 잡아주었지만 여전히 특정정당에게 시의회를 맡겼다. 단체장과 의회가 충돌하면 시정이 표류할 수 있음을 어찌 시민들이 모르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은 초유의 구도를 만든 이유는 분명하다. 시민들은 박경철이 오랜 시민운동에서 보여준 뚝심과 정의감으로 익산을 활기차고 깨끗하게 변화시킬 것을 원했다. 그러면서도 그동안 지지해온 특정정당에 대하여는 마지막으로 반성과 변화의 기회를 주었다. 앞으로 전개될 선거에서 선택의 기준이 바뀔 것임을 극명하게 보여준 것이다. 이 점이 박경철의 당선을 그의 개인 차원에서 해석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시민들의 염원대로 박경철과 의회가 협조와 견제를 통하여 익산의 발전을 이뤘다고 하자. 그러면 지역을 특정정당이 독점함으로써 비리와 비효율로 망치는 지방자치제도의 적폐가 일소된다. 이런 사례가 확산될 때 정당보다 시민을 두려워하고 섬기는 지역일꾼이 선택받는 참된 지방자치제가 우리나라에 뿌리내리게 된다. 그러니 ‘2014년 익산의 선택 박경철’에게 부여된 시대적 사명이 어찌 중하지 않겠는가! 그렇기에 익산에서 벌어진 대한민국 초유의 시험은 반드시 성공해야만 한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박경철이 낮은 자세로 누구와도 흔쾌히 소통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해야 하는 시장은 올바른 말만 강하게 주장하면 되는 시민운동가가 아니다. 합리적인 대안을 갖고 중지를 모으는 정치력이 없는 추진력과 남다른 문제해결능력만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혁신은 한 사람의 의욕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지역정치권 또한 박경철을 선택한 시민들의 준엄한 요구를 직시해야 한다. 정치적 이해관계보다 지역발전을 위해서 대화를 통하여 박경철을 바르게 이끌어주라는 것이 시민의 뜻이다. 그리고 지역언론의 역할도 막중하다. 대국적 관점에서 민심을 대변하는 건전한 비판과 알찬 조언으로 소통과 화합의 다리가 되어야 한다. 소통은 타인에 대한 인정과 배려에서 시작된다. 반드시 성공해야만 하는 익산의 새로운 시험이 이제 막 시작되었다. 험난할 화합의 바다를 건너야 하는 이 항해를 방해하는 자, 익산과 대한민국의 적이다. 박경철은 함석헌 선생이 그리던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한 것을 기억하는가? 어려운 이웃을 위해서 기꺼이 발벗고 나섰던 마음을 잃지 않는다면 <익산의 그런 사람>이 될 것이고, 반드시 되어야만 한다. 그것이 시민의 뜻이고 박경철에게 주어진 소명이다. 각박한 삶에서 한 조각 위안을 얻을 수 있는 이야기가 모두의 힘으로 계속 만들어지길 바란다. 끝으로 소중한 지면을 내어준 주간소통신문에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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