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국의 비평가이자 역사가인 토마스 칼라일의 일화다. 칼라일은 2년 동안 심혈을 기울여서 1834년에 필생의 역작 <프랑스혁명사>를 탈고했다. 칼라일은 출판사에 원고를 넘기기 전에 저명한 석학인 친구 존 스튜어트 밀에게 일독을 부탁했다. 한참이 지나도 밀에게서 연락이 없던 중 출판사로부터 원고를 독촉받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가 터졌다. 밀이 서재를 어지럽히고 외출하였을 때 하녀가 그만 칼라일의 원고를 폐지로 생각하고 난로에 던져버렸던 것이다. 밀의 이야기를 들은 칼라일은 절망했다. 수천 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원고를 잃게 되었으니 어찌 하겠는가? 얼마 후 칼라일은 아침 산책길에서 벽돌을 쌓고 있는 벽돌공을 보고 마음을 다잡았다. 한 줄 한 줄 벽돌이 쌓이는 것처럼 자신도 다시 기억을 더듬어서 원고를 쓰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무려 3년 동안 칼라일은 다시 원고를 써내려갔다. 마침내 1837년에 <프랑스혁명사>는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고 세상의 찬사를 받았다. 칼라일은 후에 다시 원고를 써내려가게 됨으로써 여러 부분이 오히려 처음보다 충실해졌다고 말했다. 3년 동안 더 많은 자료를 검토하면서 지성인들과의 교류로 얻는 통찰이 더해졌을 것이니 당연한 일이다. 밀의 하녀가 칼라일의 초고를 난로에 던지지 않았다면, <프랑스혁명사>는 그냥 평범한 저서가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인생사 새옹지마다! 문제를 사람이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따라서 결과는 천양지차가 된다. 박경철 시장은 반평생 동안 익산이라는 원고지에 자신이 이루고 싶은 정치와 꿈을 그려왔다. 27년 동안 12번을 도전하였으니, 칼라일보다 더한 심혈을 원고에 기울였을지도 모른다. 수도 없이 그리고 지우기를 반복했을 것이니, 그동안 썼던 원고 한 장 한 장에 어찌 애착이 없을 수 있겠는가! 또한 자신에게는 모든 원고가 걸작(傑作)까지는 아니어도 수작(秀作)은 되는 것으로 보일 것이라고 생각된다. 실제로 원고의 상당부분은 수작일 것이다. 그런 박경철이 2014년에 드디어 30만 익산시민의 미래를 책임질 시장이 됐다. 지금 그 얼마나 마음이 바쁘겠는가! 그동안 원고지에 써왔던 포부와 정책을 펼쳐서 익산을 일신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 것은 인지상정일 것이다. 하지만 박 시장이 ‘비상재정상태’로 규정한 익산의 어려운 여건들을 볼 때, 가장 시급한 일은 박 시장의 상황인식과 해결방안에 대하여 공무원, 시민사회, 정치권, 언론 등과 소통하면서 효과적인 대안을 찾는 것이다. 즉 박 시장이 그동안 썼고, 지금 쓰고 있고, 앞으로 써야 할 원고에 대하여 조언을 구하는 것이다. 다행이 21세기는 집단지성의 급속한 표출이 가능한 지식정보사회다. 대충 큰 줄거리만 대중에게 제시해도 당초 의도보다 월등히 우수한 작품이 순식간에 만들어지는 시대다. 그렇기에 박 시장이 열린 마음으로 익산의 구성원들에게 지혜를 구한다면, 박 시장의 원고가 어렵지 않게 걸작이 될 수 있다. 지식정보시대에 진입한 이래 전 세계의 여러 분야에서 단기간에 걸출한 업적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 원인이 다양한 분야와의 소통에서 나오는 통섭적 지혜에 있음은 두말할 여지가 없을 것이다. 소통의 창을 열면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가 다가온다. 박 시장도 <논어>의 과유불급(過猶不及)이나 욕속부달(欲速不達)의 가르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복잡한 환경 속에서 일을 할 때는 중용의 자세로 완급을 조절함이 성패를 가르는 경우가 많다. 아무리 탁월한 정책도 균형과 적시성(適時性)을 잃게 되면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한다. 오히려 부정적인 반전이 생길 가능성만 커진다. 급할수록 돌아가는 것이 때로는 필요하다. 박 시장에게는 아직 시간이 충분하다. 칼라일은 혼자서 3년 동안 다시 원고를 썼지만, 박 시장은 더 많은 시간 동안 각계각층의 사람들과 함께 원고를 다듬을 수 있다. 지금 당장 뭔가 이루려면 크고 작은 마찰 속에서 작은 것 밖에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조금 여유를 갖고 여러 사람들과 터놓고 궁구(窮究)하면 화합 속에서 큰 것을 이룰 수 있다. 27년 동안 단련을 받은 박 시장이 익산 발전의 의지를 버리지 않는 이상 어찌 큰 뜻을 이룰 기회가 없겠는가? 허준 선생은 통하면 아프지 않고, 통하지 않으면 아프다(通卽不痛 不通卽痛)고 했다. 병의 근원을 기혈의 순환상태에서 찾았다. 부디 박 시장이 원고를 다시 고치고 또 고쳐서 익산의 아픔을 고치기 바란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