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복순 윤약국약사

나이를 먹으면서 남의 집 일이 우리 집 일이 되고 남의 일인 줄 알았던 일이 바로 내 일이라는 것을 알아간다. 시어머니의 치매증상이 날이 갈수록 심해진다. 어느새 4년째다.

4년 전 어느 날 출근하니 시어머니가 약국 앞에서 기다리고 계셨다. 그 때는 혼자서 택시타고 어디든 다닐 때다. 당신 딸이 죽었는데 어떻게 가야할지 몰라 나오셨다고 했다. 당황되었지만, 시누이가 죽었는데 올케 되는 내가 이렇게 하느작하느작 출근을 하겠느냐고 하니 금방 이해를 하셨다.

그런 일이 있은 후 시모는 얼마동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일상생활을 하셨다. 혼자서 외출도 하고 시장도 보고 약국도 잘 찾아 오셨다. 치매가 오기 전까지는 당신 나이보다 훨씬 젊고 건강하며 지혜롭고 현명해 사리판단이 정확했다.

독실한 불자이신 시모는 하루에 4000만 번씩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을 외셨다. 아침 점심 저녁 주무시기 전에 천만 번씩 하셨다. 천 알의 염주를 돌리며 우리나라 국민 한사람에 한 번씩 외워준다고 하셨다.

동네사람들과 얘기 나누는 것도 삼가며 점잖고 말이 없고 행동이 반듯하셨다. 시간이 될 때마다 불경을 틀어놓고 듣는 걸로 소일을 하셨다. 그토록 빈틈없고 강건하신 분도 병마 앞에선 그리고 나이 앞에선 힘없이 무너졌다.

한 번 발병한 치매는 주기를 좁혀가며 강도는 더 세게 나타났다. 자꾸 집을 나가셨다. 온 식구들이 비상에 걸렸다. 특히 겨울철엔 해가 짧고 추워서 밖에 사람들의 왕래가 많지 않은데, 밤 10시 11시까지 행방을 모를 때면 다리가 후들후들 했다.

노인들의 아집은 누구도 꺾을 수가 없다. 당신은 절대 아프지 않다며 약도 드시지 않는다. 밖에 나갈 때는 휴대폰을 가지고 나가라고 해도 그냥 나간다. 이름표를 달아주면 어느새 뜯어 버린다. 가방 속에 연락처를 적어 넣어 드려도 가방은 들고 다니지 않는다.

이러다가 본정신이 돌아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 말짱 하시다. 전형적인 한국의 어머니가 되어 자식들 걱정을 하고, 이제는 자식들 고생 그만 시키고 남편(시아버지) 곁으로 갔으면 좋겠다고 하신다.

집을 나갔다 사고라도 날까봐 언제나 노심초사다. 작년부터 나는 시어머니를 요양원에 모시자고 했다. 밤늦게까지 시동생네랑 온 시내를 헤매고 다닐 때면, 남편도 이러다 큰 일 나겠다며 요양원에 모시겠다고 하다가 다음 날에는 미적미적한다. 그러기를 기십 번이다.

어머니가 본정신이 돌아왔을 때 당신이 요양원에 있다는 것을 알면 얼마나 기가 막히겠냐며 그 생각을 하면 차마 모시고 갈 수가 없다고 했다. 남편 입장이 공감되어 강력하게 밀어붙일 수가 없었다. 

 경찰서고 지구대고 시어머니의 이름은 다 올라있다. 상습 가출자다. 그 간격이 일주일도 못되고 거의 매일 행사가 되었다. 휴대폰을 가지고 나간 날은  휴대폰으로 통화해 어느 간판이든 읽어주면 위치를 알아내 찾아오곤 했다. 이제는 아예 위치 추적 장치를 해 두었다. 휴대폰을 안 가지고 나간 날이 문제고 대부분 안가지고 나가신다.

모시고 사는 동서가 못 나가게 하면 욕을 하고 사남을 피우다 잠깐 사이 집을 나간다고 한다. 병적일 정도로 걸음이 빨라 순식간에 반경을 벗어난다. 오죽하면 자식이 부모한테 늙으면 다리도 좀 아프고 그래야 할 것 같다고 하겠는가. 시모는 치매 외엔 아픈 곳이 없다.

여러해 전이다. 우리 아파트 아줌마가 안정제를 사러 왔다.

“왜?” 

“내가 나쁜 년이에요. 시어머니를 때렸어요.” 순간 깜짝 놀랐었다. 시어머니가 치매라고 했다. 아는 사람이 고구마를 준다고 해 금방 엘리베이터만 타면 돼서 어머니 방 방문을 잠그지 않고 내려 왔단다. 그 사이 시어머니가 음료수병을 베란다에서 떨어뜨려 주차해 있던 차가 긁혔는데, 하필이면 그 차가 외제차여서 수리비로 90만원이 나왔단다. 속이 상해 시어머니를 붙들고 흔들었다며 아줌마는 죄책감과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 때만 해도 치매가 남의 이야기인줄 알았다. 드라마 속 이야기인줄 알았다.

시어머니의 치매는 요즘 들어 바짝 심해졌다. 밤인지 낮인지 모른다. 한 밤중에 전화벨이 울려 받으면 시모다. 새벽 두시 세시 반 이렇다. 잠결에 받는 내 목소리가 정상일리 없다. 그러면 “너 누구냐” 로 시작해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을 하시고 이야기가 끝이 없다.

남편이 최대 결단을 내려 시어머니를 요양원에 모셨다. 한 부모는 열 자식을 건사하지만 열 자식은 한 부모를 못 모신다고 하더니 꼭 맞는 말이다. 남편이나 나나 하루 종일 말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다음날 요양원에 전화를 했다. 밤에 잠은 잘 주무셨는지 식사는 어떻게 하셨는지 물어도 보고, 자식도 못하는 일을 해줘서 고맙다는 말을 할 생각이었다. 여직원이 전화를 받았다. 아무개 할머니 며느리 되는 사람이라고만 했는데 울컥하며 목이 메여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잠시 전화를 끊겠다고 하니 처음엔 다 그렇다며 눈물이 나오면 그냥 울라고 한다.

나는 진즉부터 요양원에 모시자고 한 사람이고 솔직히 친어머니도 아니잖은가. 사이가 살가운 고부관계도 아니었다. 이런 내가 이럴진대 남편은 어떨까? 애들에게 전화를 했다. 아빠 좀 위로해 주라고.

세월이 약이라고 우리도 그렇지만 시어머니도 조금씩 적응을 해 나간다고 했다. 그러다 어느 날 크게 소동을 피웠단다. 2주후 면회가 된다고 하더니 소동이 있은 후 잠시 보류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남편이 찾아가 먼발치로 보고 왔다.

며칠 후 시어머니를 모셨던 시동생 내외가 면회를 갔다. 직접 면회는 안 되니 시설이나 둘러보고 멀리서 보고가라고 했는데, 기어이 보고 싶다고 해 면회가 이루어졌단다. 시어머니가 집에 가고 싶다고 해 그냥 모시고 왔다.

누가 고생 누가 고생해도 모시는 사람이 제일 고생이다. 옆에서 보기만 하는 나도 애가 타는데 친자식이고 모시고 사는 사람이야 얼마나 마음이 아프겠는가. 어머니를 요양원에 모시고 고려장이 떠올라 한숨도 못 잤다는 시동생의 얘기에 시어머니를 다시 집으로 모셨다.

시동생 내외의 고생을 어찌 말로 다 하랴. 요양원에서 모시고 온다는 말에 많이 혼란스러웠다. 세상살이에 정답은 없는 걸까. 마음이 편하면 몸이 힘들고 몸이 편하면 마음이 괴롭다.

시어머니의 병세는 갈수록 더 심해질 것이다. 생로병사,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길이다. 20여년 뒤의 나의 자화상이라 생각하니 한없이 숙연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