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시민  유 성 무

2400년 전에 살았던 맹자의 말씀이 사무치게 다가오는 시대다. <맹자> 이루편(離婁編)의 몇 구절을 새겨보고자 한다. 중국의 전설적 임금 오제(五帝) 중 한 명인 우(禹) 임금은 황하의 치수(治水)에 성공한 것을 기반으로 순(舜) 임금으로부터 왕위를 물려받았다. <맹자>에 표현된 우 임금의 정치에 임하는 마음가짐을 살펴보자. 우 임금은 천하에 물에 빠지는 사람이 있으면 자신이 치수를 잘못해서 그 사람이 물에 빠졌다고 생각했다. 여기서 인익기익(人溺己溺)란 말이 나왔다. 후직(后稷)은 순(舜) 임금 때 농업을 관장하던 관리였는데, <맹자>는 그의 백성을 생각하는 마음을 인기기기(人飢己飢)라고 표현했다. 후직은 천하에 굶주리는 사람이 있으면, 자신의 잘못으로 그 사람이 굶주린다고 생각해서 백성들의 구제를 급하게 여겼다.  

맹자는 인의(仁義)를 바탕으로 돌아가는 세상을 꿈꾼 이상주의자라고 평가된다. 하지만 그의 사상을 위정자의 입장에서 보면 매우 위협적이다. 성인(聖人)의 덕치(德治)를 정치의 모델로 여겼던 맹자에게 위정자는 하늘로부터 권력을 받은 불가침의 존재가 아니었다. 그저 덕치를 행함으로써 세상을 이롭게 하는 조정자일 뿐이었다. 그래서 맹자는 덕이 없는 위정자는 평민에 불과하므로 그를 처단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백성이 중하고, 사직은 다음이며, 임금은 대단하지 않다고 했으니 맹자의 민본사상이 얼마나 철저했는지 알 만하다.  

맹자의 이상주의적 정치의 핵심은 인의였으니, 이를 우 임금과 후직에게서 찾아보자. 백성들이 전혀 사고를 당하지 않고 경제적 어려움을 겪지 않는다는 것은 가능한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 임금과 후직은 백성들의 사소한 사고와 경제적 어려움까지 안타깝게 생각했으니 인(仁)하기 그지없다. 그 원인을 자신들의 불민함에서 찾고 문제해결에 혼신의 노력을 쏟았다. 우 임금은 13년 동안 자신의 집 앞을 3번 지나면서도 들르지 않고 치수에만 몰두했으니 위정자의 본분인 의(義)를 지킨 것이다. 이것이 맹자가 말하는 위정자의 자세였다.

우 임금의 아버지 곤도 치수를 담당했으나 실패해서 순 임금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곤은 9년 동안 열심히 일했으나 큰 오류를 범했다. 제방을 쌓아서 물을 막는 것에만 열중했지만, 큰물에는 속수무책이었다. 유업을 물려받은 우 임금은 방법을 달리 했다. 막기만 하는 대신에 수로를 여러 개 내고 소통시켜서 큰물을 나누는 방법을 택했다. 올바른 해결방안을 찾아내는 우 임금의 지혜(智)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우 임금은 십 수 년 동안 백성들을 이끌면서 마침내 치수에 성공했으니, 백성들이 엄청난 고생을 했음은 재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그가 백성들과 소통하면서 예(禮)를 갖추지 않았다면, 그 긴 세월 동안 어찌 백성들이 그를 믿고 따랐겠는가?  

한편으로 생각하면 우 임금에게 치수는 아버지를 죽음으로 몰아넣고 자신의 목숨도 위협하는 끔찍한 사업이었다. 하지만 그는 고난을 인의예지(仁義禮智)로 극복하고 고대 부족국가의 기틀을 확립했으니, 가히 맹자가 위정자의 전범(典範)으로 꼽을 만 했다. 우 임금의 기나긴 치수 노력을 가능하게 한 것은 단지 살고자 하는 본능적 욕구만이 아닐 것이다. 홍수로 헐벗고 굶주리는 백성에 대한 연민과 그들을 위해 치수에 성공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었기에 가능했으리라. 왕(王)자는 하늘과 땅, 사람을 두루 꿰뚫는 자를 뜻하니, 곧 천도와 지리를 사람들의 처지에 부합시켜서 세상을 조화롭게 하는 자가 왕이란 의미다. 그런 자가 백성을 이끄는 것이 맹자가 꿈꾸던 왕도(王道)정치였다.

우 임금이 살았던 시대는 작은 부족사회 수준이다. 그 시대를 복잡한 현대사회와 비교할 수 없지만 정치의 목적과 정치인에게 요구되는 자세는 같을 것이다.  정치인은 천하의 작은 아픔까지 자신의 잘못으로 생각하고 부끄러워해야 하며, 자신의 아픔처럼 느껴야만 한다. 그래야 이를 치유하고 예방하는 데 온힘을 기울일 수 있다. 정치인의 마음가짐에 어찌 시대의 차이가 있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오늘날 정치인에게 우 임금이나 후직 같은 온전한 헌신과 도덕성을 요구하는 사람은 없다. 다만 백성들의 처지를 공감하고 소통하고자 하는 모습을 기대할 뿐이다. 

공감과 소통이 어려운 자들에게 맹자는 또 한 마디를 한다. 타인을 예우해도 답례가 없으면 자기의 공경하는 태도를 돌아보고, 타인을 사랑해도 친해지지 않으면 자기의 인자함을 돌아보고, 타인을 다스려도 다스려지지 않으면 자기의 지혜를 돌아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