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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와 여행하기

윤복순 윤약국약사

여행은 설렘이다. 초등학교 다닐 때 소풍만 간다고 해도 손꼽아 기다리고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으로 많이 설레었던 기억이 있다. 요즘 아이들이야 여행이 생활화 되어 소풍가기 전에 이미 한 두 번은 다녀와서 나 같은 설렘이나 기다림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손자에게 내가 느꼈던 그런 가슴 떨림을 맛보게 해 주고 싶어 중국 계림여행에 데리고 가기로 했다. 우선 일정이 6일로 짧고 비행시간도 짧아 손자 놈이 충분히 감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손자는 초등학교 2학년인데 제법 제 의견을 말할 줄도 알고 좋은 것을 좋다고 느낄 줄도 안다. 손자가 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내가 여행을 가면 그 나라에 호기심을 보이고 할머니는 좋겠다며 나를 부러워했다. 글자를 알고 여행하면서 느낀 것을 글로 쓸 수 있을 때 데리고 다니마고 약속했다.

이번에 데리고 간 것은 딸이 쌍둥이를 낳으면서 손자에게 여동생이 넷이 되었다. 손자의 어깨가 얼마나 무거울까 그 보상 차원에서다. 동생이 많다보니 또래들보다 자립심이 있고 성격도 밝다. 특히 반찬투정이 없어 무엇이든 잘 먹는다. 제때에 먹지 않으면 제 몫이 없다는 것도 안다.

출발하는 날 잠이 일찍 깨었는데 어찌나 시간이 안 가던지 오늘이 안 오는 줄 알았단다. 빨리 해가 뜨라고 기도를 했다며 외국 여행에 대한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만하면 충분히 설렘이 있었던 것 같다. 출발 전 날 손자에게 줄 과자 등을 사며 나도 많이 들떴었다.

내가 쓰던 작은 캐리어가방과 카메라 수첩 볼펜 등을 넣으라고 크로스백을 손자에게 주었다. 좋아서 방방 뛴다. 행복함이 얼굴에 그득 하다. 손자가 작은 것에 감사함과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사람으로 커가기를 기도 했다.

미팅시간에 맞춰 넉넉하게 차를 탔지만 주말이라서 체증이 심했다. 미팅시간 보다 30~40분 늦게 도착 했고 공항은 만원이었다. 장애인 인천 아시안게임이 끝난 바로 뒤라서 한 쪽은 그들의 귀국을 돕는 장소가 되어 한가한 반면, 일반인 티켓팅하는 곳은 북새통이었다.

손자에게 패키지여행에서 미팅장소와 시간, 단체비자, 항공권 사는 것과 가방부치는 것 등을 상세히 가르쳐 주려 했는데 장날 같은 분위기와 시간에 쫓기어 수박 겉핥기가 되었다.

더 심각했던 건 마지막으로 탑승권을 교환하다 보니 좌석이 남편 따로, 나 따로, 손자 따로 이다. 손자가 감당하기엔 역부족인 좌석배치다. 아직은 어려서 보호자가 옆에 있어야 하지 않겠냐고 해 보았다.

계림은 10월이 최고 성수기다. 계수나무가 숲을 이룬다는 계림, 그 계수나무가 10월 한 달만 꽃을 피운다. 그 향기가 온 시내를 덮을 정도라고 한다. 그래서 10월에 계림을 많이 여행하다보니 비행기는 거의 만석이고 빈 좌석이 이렇게 띄엄띄엄 인 것이다.

살면서 어려움에 처할 때가 있지만 그것이 전화위복이 되는 경우도 있다. 올 여름 알 솎기까지 끝내고 다 자란 포도송이를 3분의1정도를 따냈다. 수확 첫해라서 포도나무가 어린데 송이를 많이 달고 있어 알이 좀 작고 쉬 익지도 않았다. 알 솎기 한 인건비며 지금까지 키운 공력을 생각하면 속상하고 아까웠다.

올 해는 추석이 빨랐다. 이른 추석 때문에 모든 과일들이 제때에 익지 못했다. 같은 법인의 포도밭 주인들도 때를 맞추지 못해 속이 시커멓게 타들어갔다. 우리는 포도 알이 작아 출하를 못 할 줄 알았는데 잘 익어서 90%이상 추석 전에 출하할 수 있었다. 다른 집 포도들은 알이 크고 송이도 컸지만 결정적으로 익지 않아 주문을 받고도 물량을 채울 수 없어 우리 포도가 대신 나갈 수 있었다.

일단 탑승해 양해를 구하고 나만이라도 손자 옆에 앉아 갈 수 있기를 바랐다. 직원도 어린애 혼자 앉히기가 마음이 놓이지 않았는지 연락처를 물었다. 할머니가 옆에 없어도 괜찮겠냐고 물으니 손자는 눈을 밑으로 내린 채로 고개를 끄덕인다. 엄마 잃은 불안한 새끼 사슴 눈 같아 보였다.

손자는 제주도 갈 때 비행기를 타 보았다며 그때는 기내식을 못 먹어서 아쉬웠는데 오늘은 먹을 수 있어 기대가 된다며 얼른 표정을 바꾼다. 할머니 할아버지 괴롭히면 다시는 못 따라 다닌다고 저의 엄마가 얼마나 다짐을 했는지 손자는 잘 할 수 있단다. 출국심사 할 때는 키가 작아 얼굴이 안 보인다며 뛰어서 보여주는 여유까지 보였다.

많이 늦어 정신없이 보딩게이트를 찾아 가는데 남편 휴대폰이 울렸다. 게이트에서 탑승권을 바꾸라고 한다. 애기와 보호자 한분을 같이 앉아 갈 수 있게 했단다. 항공사의 배려가 고마웠다.

시간이 한참이나 늦은 뒤라 좌석 확인할 시간도 없이 바꿔주는 탑승권을 받아들고 비행기 안으로 들어갔다. 아~니, 손자와 나는 비지니스석이 아닌가! 1년에 두 번씩 10년 넘게 여행을 다녔지만 비지니스석은 처음이다.

“해성아 고맙다.”
“왜요?”
“할아버지도 못 태워준 이 비싼 비행기를 네가 태워 줬거든.”

손자놈은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할머니랑 같이 앉아 가요?” 하고 묻는다. 얼굴에 또 그 행복한 웃음이 번진다.

이번 여행 시작이 좋다. 해성이에게 설렘 기쁨 기다림 이런 것을 맛보게 해주려고 계획 했는데, 손자 덕에 계림에서 어떤 행운이 또 따라 줄지 내가 더 설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