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익산시민 유 성 무 “대통령 욕하는 것은 민주사회에서 주권을 가진 시민의 당연한 권리입니다. 대통령 욕함으로써 주권자가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다면 저는 기쁜 마음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재임기간은 말할 것도 없고 세상을 등질 때까지 온갖 모욕을 참았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한 말이다. 풍운의 승부사로 파란만장했던 역경을 이겨내고 일국의 대통령까지 오른 사람으로서 그가 어찌 명예심과 호승심이 없었겠는가? 위의 말은 자연인 노무현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의 이해관계 위에서 살아야 하는 것이 숙명일 수밖에 없는 공인(公人) 노무현의 입장에서 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많은 공과(功過)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노무현을 기리는 이유 중 하나는 명예에 대한 그의 담대한 태도 때문일 것이다. 명예가 무엇인지 생각해보자. 명예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세상에서 훌륭하다고 인정되는 이름이나 자랑 또는 그런 존엄이나 품위”라고 정의된다. 상당히 추상적인 개념이다. 명예는 문화나 상황, 개인적 가치관에 따라서 달라진다. 원래 명예라는 말은 명성영예(名聲榮譽)의 준말로서 <묵자(墨子)> 수신(修身) 편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묵자는 “名은 헛되이 생겨나지 않고 譽는 저절로 자라나지 않으니 공을 이루면 이름은 자연히 뒤따르는 법이다. 名과 譽는 거짓으로는 얻을 수 없으니, 명예를 얻으려는 자는 먼저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名不徒生, 而譽不自長, 功成名遂, 名譽不可虛假, 反之身者也)”라고 했다. 묵자는 특히 사(士)의 명예는 성찰과 노력을 통해서 세상에 공헌할 때 생기는 것이라고 봤다. 묵자의 명예에 대한 관념은 명예를 정치적 생활의 목적이라고 한 아리스토텔레스와도 일맥상통한다. 서양의 명예는 라틴어 honor에서 유래하는데, honor는 명예나 명성이라는 뜻과 함께 ‘믿음, 신용’이란 의미도 있다고 한다. 아마도 아리스토텔레스는 세상으로부터 신뢰를 받도록 행동함에서 명예가 나온다고 생각한 것 같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특히 공적인 위치에 있는 사람의 명예는 자연인으로서 갖는 인격적 존엄성과 구분되는 특수성을 갖고 있다. 자연인으로서 갖는 인간적 존엄성이나 품위는 당연히 인정되어야 한다. 하지만 사회에 대한 책무를 사명으로 선택했다는 공인의 명예에 대해서는 다른 잣대가 적용돼야 한다. 그가 사회에 대한 약속을 이행하지 못한 경우에는 그 어떤 질책이나 힐난도 감수해야 해야 한다. 공(功)이 없으니 공인으로서의 명예를 주장할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공인이 이뤄야할 공(功)은 자신의 정치적 신념이자 비전이다. 신념이 진실하고 비전이 확실하다면 그 어떤 소리에도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오해가 있다면 적극적으로 풀어가는 계기로 삼고, 자기에게 사소한 잘못이라도 있다면 이를 되돌아보고 고치는 계기로 삼으면 큰 공을 이루는 데 좋은 약이 될 뿐이다. 같은 물을 먹고 소는 우유를 만들지만 뱀은 독을 만든다는 비유처럼 모욕과 비난을 받고 대처하는 태도에 따라서 모든 것이 달라짐에 삶의 묘미가 있다. 최근 우리사회에서 공인의 명예와 관련된 다툼이 부쩍 늘어난 것 같다. 악의적인 평가를 하거나 허위사실을 유포함으로써 특정인의 명예를 훼손함은 처벌해야 할 범죄행위다. 하지만 공인에 대한 명예훼손 여부를 판단할 때는 살펴야 할 것이 많다. ‘위법성 조각(阻却)사유’가 있는지를 면밀하게 살펴야 한다. 설령 명예훼손이 있다고 하더라도 사실여부, 저의, 정황, 특히 공익적 기능 등을 따져서 위법성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정한 목적을 갖는 말이나 글은 성격상 한 걸음 더 나가는 속성이 있을 수밖에 없음도 인정해야 한다. 무엇보다 법적 다툼 이전에 공인 스스로 명예에 대한 관념을 재정립하고, 참된 명예를 추구하기 위해서 처절한 자기성찰로 도량을 넓혀야 할 것이다. 금도(襟度)의 미덕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공인에 대한 비판에도 지켜야 할 선이 있다. 세상사는 과하면 부족한만 못한 법이다. 상대에 대한 비판이 지나치게 거칠고 감정적으로 흐르면, 그 때부터 대의명분은 사라지고 이전투구로 바뀐다. 모름지기 비판은 절제될 때 진정성이 드러나면서 강력한 힘을 갖게 된다. 스스로를 돌아보는 자세는 비판자에게도 요구된다. 본질적으로 명예는 타인이 훼손할 수 없다. 특히 공인에게 명예란 있을 수 없다. 끝없는 반성과 계발을 통해서 직무에 최선을 다함으로써 국가와 사회에 공헌할 의무만 있을 뿐이다. 그것이 공인의 명예다. 노무현은 이 점을 확실히 알고 있었다. 스스로 명예라는 허울을 벗어버렸던 바보 노무현의 환하게 웃던 얼굴이 보고 싶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