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기 익산 희망정치
시민연합 대표

올 한해의 마지막이 저물어가고 있다. 이제 얼마 후면 다사다난했던 2014년을 영원히 떠나보내야만 한다. 지금껏 50번이 넘는 이별을 경험했지만 올해는 유난히 아쉽고 애틋하다.

함박눈이 펑펑 내리는 하얀 밤에 나는 홀로 생각에 잠겨본다.

2014년, 나에게 일어났던 수많은 일들과 만났던 사람들을 조용히 떠올려본다.

슬픔과 기쁨이 교차되어 오버랩된다.

제일 먼저 하늘나라로 가신 아버지와 이혜심 목사님이 생각난다. 50년 세월을 함께 살았던 아버지와 인생의 멘토이자 열렬한 지지자였던 목사님의 죽음은 개인적으로 가장 큰 슬픔이었다.

나는 두 분의 죽음을 통해 삶과 죽음의 경계가 실금 한 줄에 불과함을 절절히 실감하였다. 두 분의 죽음은 나로 하여금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다시 한 번 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아버지와 목사님은 죽음을 통해서까지 나에게 큰 깨달음을 주셨다. 돌이켜보면 두 분과의 이별은 가장 큰 슬픔이면서도 가장 큰 은혜의 시간이었다.

또 나와 관계를 맺고 교류하며 기쁨을 주었던 많은 사람들이 떠오른다.

그 중에서도 나에게 많은 영향을 준 대표적인 사람 중 한분이 조선의 개국공신인 삼봉 정도전이다. 올 초에 ‘정도전’이라는 드라마를 시청하면서 시작된 삼봉사랑은 그에 관한 책들을 읽고 공부하면서 팬이 되었다. 올해 내가 이토록 정도전에 집착하는 것은 아마도 수년째 정체를 거듭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이 새로운 정도전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낡은 체제를 혁파하고 새로운 시대를 열어낸 정도전에게서 정치적 희망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삼봉 정도전은 고려 말 공민왕의 살해 사건 이후 최고 실권자였던 이인임의 미움을 받아 나주로 귀향을 떠났다. 그 후 그는 오랫동안 떠돌아다니는 고난의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런데 정도전은 이 고난의 시간동안 백성들과 교류하며 소통하는 삶을 살면서 완전히 썩어버린 고려 말의 실상을 보게 되었다. 또한 그는 이 시기에 백성을 정치의 중심에 놓는 민본사상을 확립하였다.

정도전은 고려에 더 이상 희망이 없음을 깨닫고 고려를 허물고 새로운 나라를 세울 것을 꿈꾼다. 이점이 멘토이며 친구였던 정몽주와는 다른 길을 가게 만들었다.

정몽주는 고려라는 기존 틀 안에서의 개혁을 원했고 정도전은 기존 틀을 깨고 새로운 틀을 만드는 혁명을 원했다.

백성을 정치의 근본으로 생각한 그는 토지 개혁을 단행하여 토지의 실사용자였던 농민들에게 균등하게 배분하는 파격적 정책을 시행하였다. 또한 그는 명나라에 대한 맹목적 사대를 반대하고 고구려의 고토를 회복하기 위해 실제로 요동 정벌을 계획하고 준비해갔다.

부질없지만 만일 정도전이 이방원에게 암살되지 아니하고 좀 더 오래 살아서 조선의 기틀을 더욱 확고하게 다졌다면, 조선은 훨씬 다른 나라가 되었으리라 생각해본다.

삼봉 정도전은 위대한 사상가이고 치밀한 국정 설계자였으며 낡은 질서를 근본적으로 바꾸고자 했던 혁명가였다.

나는 정도전을 생각할 때마다 자연스럽게 오늘의 한국 사회와 한국 정치를 생각하게 된다.

지금 대한민국은 선진국의 문 앞에서 길을 잃었다.

성장은 정체되었고 도덕적 타락과 물질 만능이 판을 치고 있다. 부정부패가 만연하고 불공정은 심화되었으며 사회 양극화는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작금의 상황이 이러한데도 정부, 정당, 노동조합, 시민사회들은 근본적 처방 없이 보조적 해법만을 남발하고 있다. 특히 이를 해결할 주체인 정치권은 무능할 뿐만 아니라 부패하여 자신들의 기득권 지키기에만 여념이 없다.

그러나 나는 절망하기보다는 소망한다.

망해가는 고려 말 상황에서 새로운 시대를 설계한 정도전이 출현한 것처럼 오늘의 정도전이 출현하길 기대한다.

지역주의에 기생하는 낡은 체제를 해체하고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 현대판 정도전들이 속히 출현하길 기원한다.

그들을 통해 아름답고 정의로운 새로운 대한민국이 재탄생하길 기원하며 세계만방의 존경을 받는 통일 한국시대가 속히 열리길 소망한다.

2015년 새해에는 이 일을 위해 좀 더 힘을 낼 것을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