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한국예총 익산시회장
김 영 규

이름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사람의 성(惺) 아래에 붙이는 개인의 명칭이나 사물에 붙인 일정한 칭호를 이름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사람의 인명인 이름을 비롯해 온 세상의 만물에는 제각각의 이름이 있으니 지명, 건물이름, 상호, 학교, 단체, 동·식물, 음식물에 이르기까지 이름의 종류는 다양하고 나름의 뜻이나 유래, 사연이 있기 마련이다.

‘어떠한 사물에 대해 하나의 이름이 명명되는 순간부터 이미 그 실체는 존재하지 않으며 다만 그 이름 그 이미지만이 존재하는 것이다’라고 하는 종교적, 철학적인 해석은 이해하기 어렵지만 모든 것이 이름으로 탄생하고 이름으로 불려지고 이름으로 기억되고 이름으로 처리되며 이름으로 소멸된다고 하는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하겠다.

이름, 특히나 지명에 있어서는 그 내용과 현실이 우연히도 일치하는 경우가 많은데 지명연구가들은 이것을 지명의 우합(偶合)이라고 말한다.

이미 45년이 지났지만 1969년도에 와르르 무너진 와우아파트는 그 이름으로 인하여 많은 화젯거리가 된 적이 있었다.

당시 필자는 와우산 중턱에 위치한 홍익대에 재학 중이어서 현장을 관람하고, 그 내용을 비교적 소상하게 알게 됐다.

와우아파트는 와우산(臥牛山)의 이름을 딴 것인데 그 이름대로 소가 드러누웠으니 아파트도 발랑 드러누운 것이라고들 했다. 아파트가 자리 잡은 곳이 하필이면 소의 엉덩이 부분에 해당되었으니 소가 엉덩이를 움직이는 순간에 아파트는 무너지게 됐다고도 했다.

또 한 가지 다른 경우도 있으니 세계 굴지의 제철공장이 들어선 광양만의 쇠섬(金島)은 그 이름대로 광양제철의 쇠공장이 됐으니 조상님들의 선견지명에 탄복이 나올 만하다.

이와 같이 재앙과 불행을 수반하는 이름이 있는가 하면 부귀와 행운을 가져다주는 이름도 있다.

근자에 우리나라는 합리적 주소파악을 위하여 거리명으로 바꾸어 사용하고 있으며, 우리 고장 익산시내에도 거리명이 붙어 있다. 31만명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거리명을 모두 기억하기는 아직 생소하고 어려운 일이다. 삼각형 밑에 사각형 모양으로 디자인한 단순화된 건물모양의 명패에는 한글로 거리명을, 그 밑에 영문표기, 사각형 모양에는 아라비아 숫자며 군청색 바탕에 백색 글씨이다.

여러 가지로 신경 써서 최선을 다한 명패임에는 틀림없어 보인다.

필자가 거주하는 중앙동 3가 00번지 건물 명패에는 ‘평동로 9길 00’라고 돼 있다. 그러나 이전에는 ‘지혜로운 길’이라고 쓰여져 있었다. 우리 이웃들은 즐겁게 웃었다. 이제 머지않아 지혜로운 인물이 쏟아져 나올 거라고... 사실 그 이전에는 ‘관음길’이라는 이름이 불과 몇 년 사이에 3번이나 바뀌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바뀌는 동안 여러분의 노고와 꽤 많은 경비가 소요되었으리라 짐작한다.

인명과 달리 지명은 특히나 지역성과 역사성, 사회성이 강할 뿐만 아니라 후손에게 물려줘야 하는 역사적, 문화적 유산이므로 그 명명에는 많은 연구와 성의가 절실히 필요하다고 하겠다.

인명이나 지명 등 모든 이름들은 더불어 사는 사람들과의 우호적인 관계를 가능케 한다. 한번 지은 이름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좋은 느낌의 이름이 있는가 하면 혐오감을 주는 이름도 있다.
인명이나 지명은 말할 것도 없이 우리 주위의 야생화에도 있으니 심사숙고해 이름을 정하되 듣기 거북하거나 민망스러운 것은 예쁘게 고쳐주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야생화 중에는 그 이름이 ‘애기 똥풀’이란 노란꽃이 있다. 기침, 위염, 위궤양에 효과가 좋다고 유명한의사는 말한다. 양귀비과에 속해 습지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그 꽃은 생김새나 쓰임새에 무관하게 어린이 배설물에 비유하다니...

최근 듣기 거북하고 치졸한 이름을 아름다운 우리말로 개명하려는 움직임은 무척 다행스런 일이나 멀쩡한 이름을 임으로 바꾸려함은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 고장의 역사성이 가미된 이름을 보존하고 아름다운 이름을 찾아 함께하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