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복순 윤약국약사

오늘도 샤워를 하고 바디로션을 온 몸에 듬뿍 바른다. 날씨가 추워지면서 하루 종일 난로 앞에 있어 유분이 더 많은 것으로 바른다. 그런데도 저녁에 집에 들어가면 양말목 부분이나 난로에 많이 노출되었던 부분은 가려움증이 있다.

나이와 피부건조는 비례한다. 어릴 때 할머니가 등을 긁어 달라고 많이 했다. 가끔은 바느질할 때 쓰는 자로 등을 긁기도 하셨다. 그 때는 몰랐는데 어느새 나도 찬바람이 불면 샤워 후 바디로션을 바르는 나이가 되었다.

일요일, 함라산 둘레길을 돌고 와 샤워를 하고 나서려니 꺽정스런 생각이 들었다. 지난주에도 못 갔는데 이번 주에도 안 가면 도리가 아닌 것 같아 서둘러 나섰다.

시어머니가 요양병원으로 가신지 3개월이 넘었다. 모시고 있던 시동생이 집 가까운 요양병원에 모시고 연락을 해 왔다. 나야 진즉부터 요양원에 모시자고 한 사람이니 다행으로 받아들인다.

시모는 집을 나가는 치매여서 경찰서며 지구대에 상습 가출자로 이미 이름이 올라 있다. 갈수록 빈도가 심해 가족들이 감당하기엔 힘이 벅찼다. 부모는 열 자식을 건사하지만 열 자식은 한 부모를 건사하지 못한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처음 요양병원에 입원했을 때는 자꾸 밖으로 나가려고 하니 신경안정제 계통의 약을 드렸기 때문인지 눈도 못 뜨시고 잠만 주무셨다. 정말 힘이 없어 보였다. 집에서 그토록 씽씽 걸었는데 달라도 너무 달랐다. 그 모습에 나까지 맥이 풀렸었다.

화장실도 이용하지 못한다. 나이가 있으니 요실금도 왔지만 인지능력도 떨어진 것이다. 바로 기저귀를 채웠다. 깔끔하시고 자존심이 강했던 시어머니는 기저귀를 갈 때마다 간병인에게 교양이 없다고 야단을 치고 아들을 불러오라고 한단다.

머리카락 한 올도 흐트러짐이 없던 분이라서 병실 장판에 조그만 점만 하나 있어도 그것 때문에 몸이 가렵다고 야단이다. 몇 년 전 양쪽 눈 다 백내장 수술을 한 터라 조그만 것도 나보다 더 잘 본다. 나이 들면 눈도 좀 안보이고 청력도 좀 떨어져야 한다던 인생 선배의 말이 실감난다.

일요일 저녁 시모를 뵈러 가면 다른 어르신들은 앉아 TV를 보고 또는 얘기를 하기도 하고 침대에 누워 계시기도 하는데 당신만 병실을 왔다 갔다 하신다. 간병인 말에 의하면 하루 종일 그러신단다. 그러고는 다리가 아프다고 손으로 한 쪽 다리를 두드리며 걷는다. 나는 말없이 시모 뒤를 따라 다닌다. 잠깐이지만 옆에 있어 드리는 것이다.

시모는 틈틈이 화장실을 기웃거리기도 한다. 아들 며느리가 왔으니 밥을 해 주려고 그런단다. 집이 옹색해서 미안하다고 한다. 침대에 앉으라며 당신은 서 있다. 뇌가 다 망가지고 겨우 몇 가닥 살아남은 상태에서도 부모의 자식 사랑은 끝까지 남아 있는가보다.

그리고는 언제 그랬냐는 듯 사탕 사가지고 왔냐고 묻는다. 사물함에서 사탕을 꺼내 드리면 병실에 있는 사람들에게 다 나누어 주고 또 달라고 한다. 이럴 땐 정말 어린아이 같다.

다행히 잘 주무시고 식사도 처음에 비해선 하시는 편이다. 남편과 내가 찾아가면 “우리 식구들이 다 왔네.” 하며 반가워하신다. 내가 며느리인지 딸인지 알아보지도 못했는데 지금은 확실하게 며느리라고 말한다. 치매증상은 좋아지는 것 같기도 하다.

요즘은 몸이 가렵다고 자꾸 긁으신다. 팔뚝이고 허벅지고 바지 고무줄 닿는 데고 긁어서 벌겋다. 마침 간호사가 왔기에 얘기 했더니 저녁식사 후에 이미 약을 드셨단다.

허리를 자꾸만 긁기에 화장실로 모시고 가 옷을 내려보니 1회용 기저귀 때문인 것 같다. 서 있는 상태라서 엉덩이 쪽으로 손을 넣어보니 기저귀는 보송보송하다.

시모는 계속 가렵고 기저귀도 불편하단다. 기저귀가 편 할리야 없겠지만 다른 방도가 없어 로션을 발라 드렸다. 약도 소용이 없는데 로션이 얼마나 효과가 있겠는가. 사탕을 하나 까 드리며 이것 드시면 덜 가려울지 모른다며 뻔한 거짓말도 해 보았다.

간병인에게 기저귀 좀 봐 달라고 했더니 갈아 드린 지 얼마 안 됐단다. 혹시나 해 기저귀를 끌러 보니 앞부분이 젖어 있다. 간병인이 기저귀 가는 것을 옆에서 보니 허벅지며 허리를 얼마나 긁었는지 피딱지가 앉아 있다.

병원에서는 며칠에 한 번씩이나 씻겨드릴까. 날은 추워지고 더 건조해질 테니 시모의 가려움증은 날로날로 더해 갈 것이다. 할머니도 겨울이면 피가 나도 긁으셨다. 늙으면 피가 밭아서 그런다고 했다.

“어머니, 저도 가려워서 로션을 많이 발라요. 겨울에는 피부가 건조해서 누구나 다 가렵거든요.”

“너도 가려워?”

“예” 고개를 끄덕이며 웃어 드렸다. 당신도 나를 따라 웃으신다. 그만 긁으라며 두 손을 잡고 한 참을 같이 앉아 있었다. 며느리도 가렵다는 말에 위안을 받으신 것 같다.

날마다 샤워를 하고 바디로션을 바르면서 시어머니의 피딱지 앉은 피부가 눈에 밟힌다. 생로병사가 삶의 이치라지만 시모의 가려움증이 불편하다. 살면서 배움을 얻었다는 것은 세상을 더 깊이 이해하고 자신과 더 평화롭게 지내는 것이라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