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시민  유 성 무

사마천이 쓴 <사기>의 열전에는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 중에 중국의 전설적 명의인 편작도 한 장을 장식한다.  편작에 대한 이야기 두 개를 살펴보겠다. 하나는 편작이 의사의 입장에서 육불치(六不治)를 논한 것인데, 이는 천하 명의가 와도 병을 고칠 수 없는 여섯 가지 경우를 말한다. 그 중 첫 번째는 환자가 교만방자해서 자기의 병은 자기가 안다고 하면서 의사의 말을 듣지 않는 경우다.(驕恣不論於理)

다른 이야기는 편작과 위나라 왕의 대화 내용이다. 편작에게는 의사인 두 명의 형이 있었는데, 어느 날 위나라 왕이 편작에게 형제들 중 누구의 의술이 가장 뛰어난지 물었다. 편작은 삼형제 중 자신의 경지가 가장 낮다고 말했다. 편작의 큰형은 사람을 척 보고 장차 그에게 생길 병을 예측한 후 발병을 막을 처방을 했으니, 사람들은 큰형이 의사인 줄도 몰랐다. 작은형은 중병의 초기에 병을 알아내서 간단한 처방으로 치료했으니, 환자는 자신이 중병에 걸린 것과 작은형이 명의인 것을 알지 못했다. 하지만 편작은 경지가 낮아서 환자가 중병에 걸려서야 수술과 약을 써서 병을 치료하니 사람들이 자신을 명의라고 평한다는 것이었다.

<사기>는 사마천의 개인적 평가가 담긴 역사기록이다. 특히 열전에서는 제왕이 아니지만 한 시대를 풍미한 여러 인물들이 등장한다. 사마천은 수천 년 동안 명멸한 수많은 영웅호걸과 기인이사 중에서 왜 명의에 대한 기록인 <편작창공열전>을 넣었으며, 왜 편작에 대한 내용을 육불치론과 삼형제 이야기로 채웠을까? 편작에 대한 이야기는 마취나 심장이식수술 등 당시로서는 신화적인 이야기도 많았을 터인데. 나는 그 이유를 두 가지 관점에서 찾는다.

교만해서 타인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 것은 사람 특히 권력을 가진 사람의 그릇된 속성 중 하나다.  환자 개인이 교만하면 자신의 몸만 망친다. 그런데 의사가 교만하면 어떻게 될까?  백성의 고달픔을 치료해야 하는 위정자가 교만에 빠지면 어떻게 될까?  교만의 병에 걸린 위정자는 눈이 멀어 민생의 참상을 보지 못하고 귀가 막혀 도탄에 빠진 백성의 신음소리를 듣지 못한다. 결국 자신은 물론이고 나라를 망치게 되니, 사마천은 위정자의 교만을 경계하려고 편작을 빌어서 육불치를 논한 것이 아니었을까?

사마천은 편작 삼형제의 이야기를 통해 ‘참된 위민정치의 근본은 소통’이라는 담론을 펼친 것으로 생각된다.  위정자라면 끊임없이 지식을 익히고 경험을 쌓아서 세상을 편안하게 만들 실력부터 갖춰야 한다. 편작의 큰형처럼 세상의 흐름을 살펴서 문제가 생기기 전에 이를 파악하고 예방하는 것이 최선이다. 편작의 작은형처럼 문제가 발생한 초기에 대응함으로써 심각한 상황을 막는 것은 차선이다. 문제가 심각한 상황까지 진행된 후 고통스러운 처방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정치는 악에 불과하다. 사회적으로 특히 약자의 희생이 크게 발생하기 때문이다.
편작의 형들처럼 환자의 병증이 없거나 경미한 상황에서 환자가 의사의 진단과 처방을 믿고 따르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사람은 본질적으로 교만하고 자기중심적인데 말이다. 환자를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치료를 해야 한다. 환자의 입장에서 환자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을 함으로써 충실히 치료에 나서도록 해야 한다. 환자가 편안하게 감당할 수 있는 치료법으로 환자와 의사가 적극적인 소통을 해야 한다. 중병에 이르기 전에 치료하는 비결의 핵심은 소통이다.

정치도 이와 마찬가지다. 사회가 중병에 이르기 전에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방법은 한 가지밖에 없다. 위정자가 진정성을 갖고 사회구성원들과 소통해야 한다. 문제 진단과 처방을 투명하고 일관성 있게 공개하면서 지속적으로 소통해야 한다. 설령 문제 진단과 처방이 정확하더라도 소통하지 않으면 사회는 목적과 원칙을 공유할 수 없다. 구성원들은 제 각기 다른 방향으로 움직인다. 어떻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는가? 불통으로는 절대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으며, 또 다른 문제들이 지속적으로 불거지는 악순환만 거듭된다. 제 아무리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어도 불통으로는 아무런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 불통하는 위정자는 반드시 무능력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정치는 수많은 이해관계자들의 문제를 동시에 조율해야만 한다. 적극적으로 소통해도 문제해결을 장담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통하는 것은 교만하기 때문이다. 교자필패(驕者必敗)라!  교만한 자, 정치하겠다고 나서지 마라. 그것이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