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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사람

김영주
익산시 사회복지협의회장
(사)삼동인터내셔널 이사장

고등학생 때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는데 선생님이 그러셨다. “애들아! 제주도에 가면 물에 뜨는 돌이 있다. 그거 하나만 사 와라.” 믿지 않았다. 왜냐고요? 살아오면서 무거운 돌만 봤으니까. 그러나 내 생각은 여지없이 빗나가고 말았다. 물에 뜨는 돌이 있었다. 그 뒤로 필자의 머릿속엔 돌에 대해 ‘물에 가라앉은 돌’ ‘물에 뜨는 돌’ 두 가지 생각이 자리 잡게 되었다.

신약성경에 보면 예수님이 행한 이적(異蹟), 사람들을 살리고, 사람의 병을 고치고, 바다를 걷고, 빵 7개로 4,000명을 먹이는 등 30가지 넘는다. 이러한 이적들이 사실일까.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사람들은 ‘예수의 이적’을 어떻게 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예수의 이적에 대해서는 기독교인들 사이에서도 시각이 갈리고 있다. 어떤 사람은 말한다. “그게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란 징표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이니 이적의 능력은 당연한 게 아니냐.” 반박하는 사람도 있다. “성경은 예수님 사후에 기록됐다. 그래서 ‘이적’에 대한 내용은 후대에 덧붙여진 것이다.” 다시 말해 ‘가공된 이야기’란 거다. 또 어떤 이는 이렇게 말한다. “무덤에서 부활한 예수님은 몸의 부활이 아니다. 영적 부활에 대한 비유적 표현이다.” 논쟁은 끝이 없다. 기독교 역사에서 이런 논쟁은 늘 있었고, 지금도 있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궁금하다. 사람들은 왜 ‘이적이 사실이냐, 아니냐’에만 매달리는 걸까?

이적은 예수님만 하신 게 아니다. 불교를 창시한 석가모니나 증산교를 창시한 증산 강일순, 불교의 진묵대사, 원불교를 창시한 소태산 대종사 등도 이적을 많이 나타내신 분들이다. 여기서 궁금한 게 있다. 왜 성자들은 이적을 나타내실까? 교화의 방편이다. 사람마다 다 다르다. 똑같은 사람이 하나도 없다. 쌍둥이로 태어난 사람도 같지 않다. 그러기 때문에 교화의 방편을 다 다르게 하신다.

이적에 대해 필자의 관심은 다르다. 그게 사실이냐, 아니냐가 아니다. 그렇다고 이적 일화를 ‘누가, 왜 만들었나’도 아니다. 다만 그것을 묵상(默想)할 따름이다. 그것은 이적이나 일화에 담긴 메시지가 결국 나를 심사(深思)하게 하고 인격의 사다리를 최고의 높이로 이르게 해주는 거라 믿기 때문이다.

마가복음서 보다 10년 정도 후대에 작성됐다는 마태 복음서에는 예수가 배에 오르기 전에 또 하나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다름 아닌 ‘물 위를 걷는 베드로’다. 산에서 기도를 마친 예수는 새벽녘에 제자들에게 갔다. 배가 떠난 뒤였다. 예수가 호수 위를 걸어서 가니 유령인 줄 알고 놀라는 제자들에게 예수는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라고 했다.

그러자 베드로가 말했다. “주님, 주님이시거든 저더러 물 위를 걸어오라고 명령하십시오.”(마태복음서 14-28) 그러자 예수가 말했다. “오너라.” 베드로는 배에서 내렸다. 물 위로 한 발 또 한 발 뗐다. 놀랍게도 베드로는 물 위를 걸었다. 그는 예수를 향해 걸어갔다. 그때 ‘강풍이 불었다. 강풍이 부는 것을 보자 베드로는 그만 두려워졌다. 그러자 물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여기서부터 묵상의 영역이다. 베드로는 왜 물 위를 걸을 수 있었을까. 적어도 60~80kg 나갔을 성인 남자의 몸무게는 어디로 갔을까. 그리고 폭풍이 몰려오고 두려움이 생기는 순간, 그의 몸무게는 왜 다시 돌아왔을까. 그리고 물에 푹 잠겼을까.

궁금하다. ‘물 위를 걷는다’는 것이 무슨 뜻일까. ‘물에 빠진다’는 것은 또 무슨 뜻일까. 사람들은 쉽게 말한다. “예수를 믿으면 천국에 간다. 그게 물 위를 걷는 것이다. 믿지 않으면 지옥에 떨어진다. 그게 물에 빠지는 것이다. 그러니 믿어야 한다. 믿지 않는 자에게는 멸망과 죽음이 있을 뿐이다.” 이처럼 단순화한다. 성경을 이렇게만 읽으면 ‘물 위를 걷는 베드로’에 담긴 영성의 울림을 맛볼 수가 없다.

곰곰이 묵상해 보자. 삶이 힘겨울 때 우리는 일상 속에서 허우적댄다. 일종의 홍수이다. 어쩌면 우리에겐 그게 더 위협적인 홍수일지도 모른다. 필자는 베드로 일화를 유심히 짚어본다. 그 속에는 ‘홍수 속에서도 젖지 않는 열쇠’가 녹아 있으니까.

물 위를 걷는 베드로는 가볍다. 마치 물 위에 뜨는 돌처럼. 왜 그럴까. 자신의 모든 걸 예수에게 맡겼기 때문이다. 그때 베드로라는 에고의 무게는 얼마일까? 0㎏이다. 그래서 물 위를 걷는 거다. 그런데 바람이 거세진다. 베드로는 덜컥 겁이 난다. ‘이러다 내가 진짜 물속에 빠져 죽는 건 아닐까?’ 두려움이 생겨난다. 놓았던 에고를 다시 움켜쥔다. 그 순간, 베드로의 몸이 물속에 쑥 빠진다. 무엇 때문일까. 맞다. 에고의 무게이다. 베드로는 그 무게로 인해 뜨기도 하고, 가라앉기도 하는 거다.

불교에도 그런 순간이 있다.
‘무아(無我)’가 되는 것이다. 에고가 없는 ‘그냥 사람’이 무아다. 붓다는 그걸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이라고 불렀다. 사람들은 따진다. 에고의 무게를 어떻게 0kg으로 줄이느냐고. 그게 어디 사람이냐고. 그렇다면 자신의 다이어트 경험을 돌아보라. 몸무게가 1~2kg만 줄어도 가뿐하다. 날아갈 것 같다. 에고도 마찬가지이다.

그걸 위한 구체적인 방법이 뭘까? 사람들은 이 대목에서 주로 오판한다. 엉뚱한 해법을 시도한다. 보기 싫은 그물을 피하거나 짜증 나는 진흙을 파내서 없애려고만 한다. 이런 방식은 승부가 나질 않는다. 끝이 없다. 자신의 삶에서 그물과 진흙은 끝없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문제가 정말 그물이나 진흙일까? 아니다. 그걸 만드는 공장이다. 그 공장이 “좋다, 나쁘다” 따지고 있는 나의 잣대와 고집이다. 그걸 무너뜨리면 어떻게 될까? 그럼 ‘좋은 그물 싫은 그물’이 아니라 ‘그냥 그물’이 된다. ‘좋은 사람 싫은 사람’이 아니라 ‘그냥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런 뒤에는 더 이상 걸리지 않는다. 고집이 무너진 만큼 우리는 그물을 뚫고 지나가는 바람이 된다. 노아(아담의 삼남 셋의 직계 자손)는 자신의 고집을 꺾고 신의 메시지를 따랐다.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소서.’ 그때 이미 방주를 탄 거다. 에고가 무너질 때 우리는 늘 방주를 타니까. 물에 젖지 않는 연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