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인애

  몇 년 전에 나는 일본으로 여행을 간 적이 있었다. 나름은 예술을 향유하고 싶었던 이유로 지인들과 함께 일본의 유명한 예술작품들을 보러 갔었다. 예술여행을 위해서 굳이 일본을 선택했던 이유는 그보다 몇 년 전에 건강상의 이유로 나의 로망이었던 유럽여행을 포기해야만 했던 안타까운 기억이 있었기 때문에 그나마 가까운 일본이 나에겐 가장 안전한 여행지였다. 가장 기억에 남았던 장소는 돔 형태의 미술관이었는데 외국인들도 많이 찾는 장소였다. 며칠간의 여정을 마치고 함께 여행을 갔던 사람들끼리 둘러앉아 느낀 점들을 나누는 시간이 돌아왔다. 내 차례가 돌아오자 나는 속에서 참았던 울분이 터져버렸다. 어쩌면 그때 나는 마음속에 일본에 대한 질투심이 일어났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를 침략했던 나라는 외국인들도 찾는 저렇게 거대한 예술작품을 만들어 놓았는데 우리는 과연 외국인들이 관람을 할 만한 변변한 예술 여행지가 얼마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당시에 제주도의 땅을 중국인들이 차지하고 있다는 풍문을 미리 들었던 터라 나는 더욱 격한 분노와 한숨이 동시에 터져 나왔다. 그리고 나는 우리나라가 나아갈 길에 대하여 함께 성토를 하고 싶었다. 그러나 나의 말을 들으려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라를 생각하는 한 사람의 마음이 공중 분해되는 느낌을 그때 처음으로 느꼈다. 그곳에선 나만 이상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함께 여행을 했던 사람들은 나와 생각이 달랐을 거라고 스스로 마음을 달래며 여행을 마무리했다. 그 후로 몇 년 후에, 나는 머릿속에 떠나지 않는 물음을 찾아 새로운 삶의 여정을 시작했고 하루하루 성장해가는 내 영혼을 느끼며 가슴 뿌듯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몇 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나는 수없이 많은 경험을 하면서 그때 나의 가슴속에서 터져 나왔던 울분의 실체를 알게 되었다. 어린 시절, 무척이나 서양의 문물을 좋아하고 부러워하던 아이가 왜 우리나라 이야기만 들으면 가슴이 그리도 울컥해야 했는지 그리고 어른이 다 된 지금에 와서 더 뜨거워지는 그 감정의 정체가 무엇인지 이제는 정확하게 말할 수 있다. 그 감정의 진원지는 다름 아닌 나의 뿌리에 대한 가없는 사랑이었다. 다 부서져 겉모습만 남아있는 파르테논 신전을 동경했었고 한쪽으로 기울어진 피사의 사탑은 또 얼마나 보고 싶어 했는지 모른다. 모네의 정원을 가보고 싶어서 여행상품을 검색하고 가우디의 성당이 언제 완공이 되는지 항상 궁금해 했었다. 그랬던 내가 파르테논 신전보다 우리의 종묘를 더 동경하게 되었고 피사의 사탑보다 우리의 석굴암의 아름다움에 감탄을 하게 되었고 경회루의 과학적인 설계와 백성을 생각해서 궁궐조차 크게 짓지 않았던 우리 선조들의 정신을 알게 된 후 서양의 문물은 나의 관심의 순위에서 점점 밀리게 되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내가 예전에 일본 여행에서 느꼈던 그 질투심이 이제는 그때의 질투심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자긍심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그들이 지어놓은 미술관보다 우리의 수없이 많은 문화재들에서 느껴지는 우리 선조들의 예술적 미학은 어느 예술 작품보다 뛰어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돌이켜보니 내가 조금만 생각의 채널을 바꾸었더라면 우리의 소중한 문화와 역사를 더 깊이 알고 이해할 수 있었을 텐데 사람은 늘 시간이 흐른 후에야 알게 되는 삶의 어리석은 과정을 겪어야만 어른으로 성장을 하는 것일까.

  요즘은 내가 되도록 뉴스를 보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TV를 켜기만 하면 기분 좋은 소식보다는 가슴 속 저 밑바닥에 서려있는 분노를 꿈틀거리게 만드는 소식만이 들려오고 있다. 우리가 광복이 된 지 팔십 년이 다 되어가고 있는 이 시점에도 이 땅에 버젓이 반민족적인 행위를 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사실에 몸서리가 쳐진다. 그들이 내뱉는 말을 방송에서 들을 때마다 이 나라의 미래가 암담하게 느껴질 만큼 참담한 심정이다. 일제 강점기의 우리의 국적을 일본이라 말하고,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망언을 쏟아내고, 독립 운동가를 테러리스트로 왜곡하며 일제의 수탈을 수출이라고 한다. 이것은 광복 이후 민족의 반역자들을 역사의 심판대에 제대로 올려놓지 못한 결과이다. 그 결과로 일제가 심어놓은 식민사관은 아직까지도 우리의 의식 속에 파고들어 민족의 정기를 갉아먹고 있다.

   사람은 어느 나라에 태어났더라도 자신이 태어난 나라를 부정할 수는 없다. 그것은 자식이 부모를 부정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만약, 이 땅에 태어난 것이 너무나 불만스럽고 마지못해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면 내가 이 땅에 태어난 것이 바로 하늘의 자손임을 알게 해주는 스승과 책을 만나라고 말해주고 싶다. 내가 우리의 찬란한 문화와 훌륭한 문화재들의 아름다움을 일깨워주는 스승과 책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스스로 고난의 여정을 선택해서 마침내 남은 삶의 방향을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만일, 자녀를 키우기 위해 온갖 좋은 방법을 찾고 있는 부모가 있다면 나는 그들에게 그동안의 모든 고민에 마침표를 찍게 해줄 교육법을 추천할 수 있다. 어린 시절부터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슴 속에 심어주고 어디에 가서 무엇을 하든 내가 곧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사람이라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이 되도록 키우는 것이다. 그렇게 자라는 아이는 어른이 되어 어떤 고통을 겪더라도 결코 비뚤어지는 법이 없다. 나보다 더 크고 거룩한 나라가 내면에 들어있는 사람은 하늘도 그를 바른 길로 인도하기 때문이다. 내 나라에 대한 올바른 애국심을 지닌 사람만이 다른 나라의 역사와 문화도 존중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일제 강점기의 우리의 국적이 일본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묻는다. 이 물음에 즉시 답변이 어렵다면 당신들은 역사와 민족 앞에 석고대죄를 해야 옳을 것이다.

   당신들의 조국은 어느 나라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