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시의회 박종대 의원이 미륵산 동남쪽 일대를 점유하고 있는 제7공수여단의 이전을 요구하고 나섰다. 미륵산 서북쪽의 미륵사지와 동쪽의 서동공원, 남쪽에 있는 왕궁리 유적이 그 중심부에 자리 잡은 군부대 장벽으로 인해 시너지효과를 내지 못하는데 따른 처방전이다.

미륵사지와 왕궁리 일원의 백제역사유적지구가 세계유산으로 등재 된 지 1년이 다 됐다. 그동안 백제유적을 세계인들의 관광명소로 탈바꿈 시킬 크고 작은 장밋빛 청사진들이 쏟아져 나왔다. 전북도는 지난해에 150억원, 올해에는 189억원을 개발 사업비로 쏟아 부었다.

하지만 미륵사지와 왕궁리 유적 등 세계문화 유산의 세계화는 극미한 수준이다. 무엇보다 지역주민들은 그 변화상을 거의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그 이유로 익산의 고대유적들이 땅속에 묻혀있던 것이라는 점을 들고 있다.

경주를 비롯한 양동, 하회마을 같이 지상에 드러난 유적이 아닌 매장문화유적은 복원과 정비를 제한한다. 자칫 무리한 가시화는 세계유산의 가치를 훼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익산 백제유적을 세계인의 품에 안겨주기 위해 가치를 중심으로 한 효율적인 마케팅 및 보존과 개발을 모두 충족하는 활성화 전략을 모색해야 할 당위성이다.

마케팅에 당장 필요한 것은 브랜딩이다. 익산의 '백제' 하면 미륵사지와 왕궁이 떠오르게 하는 브랜드화 작업이 선결돼야 한다. 매장문화재를 살아 숨 쉬게 하려면 스토리 텔링이 필요하다. 서동(마를 캐던 소년, 훗날 백제의 무왕)·선화(신라의 공주, 훗날 무왕의 왕비)는 미륵사지와 익산 왕궁을 창건한 인물들이다.

게다가 그들은 신분과 국경을 초월한 세계유일의 러브스토리를 남겼다. 천년 동안 땅 속에 묻혀있던 그들의 사랑이 만약 셰익스피어를 만났다면 그들의 삶터였던 익산은 유적들보다 먼저 브랜딩 되어 세계인들의 마음을 사로잡고도 남았을 것이다.

서동축제는 그 스토리텔링의 결정판이다. 중앙체육공원에서 개최하던 축제를 2년 전부터 금마면에 소재한 서동공원으로 옮긴 이유다. 금마면은 서동이 나고 자란 곳이며 마를 캐며 어머니를 봉양하던 곳이다. 서동공원과 서동축제는 묻혀있던 천년의 러브스토리와 한 인간의 입지전을 되살려내는 장인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천년 만에 얼굴을 내민 모든 유적들에게 숨을 불어넣는 일이다. 천년의 시간과 공간을 매개하는 창이다. 서동공원과 미륵사지, 왕궁리 유적은 삼각형의 꼭짓점에 위치한다. 그런데 공수부대가 그 한 가운데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유적지를 연결하는 주요 도로에선 군사훈련 차량들이 수시로 이동하면서 주민이나 관광객들의 통행에 지장을 줄 뿐만 아니라 위화감과 불안감을 자아내고 있다. 특히 관광객들이 집중되는 문화재 보호구역 인근에서 사격훈련이 실시 될 때마다 주민들은 물론 관광객들은 공포감을 떨쳐버릴 수 없다.

실탄의 뇌관이 폭발하는 소음은 야간에 익산시내권까지 날아든다. 포사격에 따른 진동은 유적에 균열과 파손 우려를 낳고 있다.

이와 같은 박종대 의원의 문제의식은 맑은 거울에 사실을 비추는 것처럼 타당성을 확보한다. 이대로는 미륵사지와 왕궁리 유적의 세계유산등재 이후 열릴 500만 관광객 시대에 속수무책일 것이다.

금마면 주민들은 금마고도 지정 이래 7공수여단 이전의 필요성을 지속적으로 제기해 왔다. 지근거리에서 군부대의 장벽에 가로막힌 문화유적지들의 문제를 목도해 왔기 때문이다. 금마고도육성주민협의회를 비롯한 금마면의 각종 주민단체와 마한제전위원회가 한목소리를 내며 7공수여단 이전 서명운동에 돌입한 배경이다.

이 문제는 세계유산을 품은 익산시민들과 전북도민들의 당면과제가 됐고, 익산 백제유적에 대해 자긍심을 갖는 대한민국 국민들의 관심사가 됐다. 무엇보다 7공수여단의 이전이 선결되지 않고는 향후 범국가적으로 쏟아부을 천문학적인 사업비들이 당초 취지를 살리지 못한 채 무위에 그칠 것이라는 우려가 높다.

박종대 의원은 전 9군단 부지를 7공수여단의 이전지로 제시하고 이전 비용은 현 부지를 매각해서 해결할 수 있다는 합리적인 방안도 내놨다. 전라북도와 익산시는 이 부지를 매입해서 브랜딩 된 세계문화유산의 가치를 극대화하고 집적화해 개발의 효용성을 높일 수 있다.

유적지들간 접근성을 높이는 교통·편의시설을 확충하고 천년 고도의 유적들을 현대적으로 만날 수 있는 디지털영상체험관의 입지로 제격일 것이다. 박 의원은 한 발 더 나아가 7공수여단 부지에 테마파크와 리조트 등 관광시설을 확충하고, 서동공원과 미륵사지 사이의 금마저수지 활용방안도 제시했다.

이와 같이 천년고도 익산은 익산시민들의 마음속에서 다시 깨어나고 있다. 유적지들을 세계적인 위상에 걸맞게 재구성해야 한다는 여망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지역의 더 큰 성장과 발전을 위해 정부와 군 당국에서 현명하고 현실적인 이전 대책을 마련해 달라"는 박 의원의 목소리가 또렷한 이유다.

7공수여단의 현 부지는 천년고도 익산 백제문화권의 허브로 주목되고 있다는 점에서, 군 당국의 대승적인 결단이 촉구된다. 또, 이 같은 당위에 입각해 익산시가 전방위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시대정신이 서슬 푸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