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 전 발생한 약촌 오거리 택시강도 살인사건은, 15세의 목격자가 살인자로 바뀌어 10년 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는 것으로 종결되기까지 속전속결된 케이스다.

그런데 4년 전에 옥살이를 모두 마치고 출소한 최 씨가 자신은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며 법원에 재심을 청구하고 나섰다. 당시 경찰은 사건을 신속하게 처리한 공로로 조직과 세간의 주목을 받았는데, 최 씨의 주장을 살펴보면 이 신속한 처리에서 의문이 파생된다.

경찰은 사건이 발생한 직후 목격자로부터 범인의 몽타주를 확보해 놓고 몽타주를 추적하는 수사를 벌이는 대신 목격자인 최 군을 살인 용의자로 지목했다. 3일만에 목격자에서 살인자 신분이 된 최 군은 그로부터 며칠 뒤 자신이 택시기사를 살해했다고 진술했고, 이것은 법정에서 최 군에게 결정적으로 불리하게 작용했다.

최 군이 법정에 서기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된 경찰의 수사는 최 군의 진술을 뒷받침하는 데 집중됐지만, 법정에 제출된 증거들은 최 군의 진술에 의존하지 않을 경우 최 군의 범죄를 객관적으로 설명하지 못하는 등 빈약하기 짝이 없었다.

최 군의 법정 진술은 경찰에서의 진술과 일치하지 않았고, 법정 진술도 오락가락 했다. 당시 법조계에서는 최 군의 이같은 진술 번복은 최 군에게 유리하게 작용하지 않고 오히려 불리하게 작용했다고 지적한다.

재판장은 최 군의 진술과 경찰의 수사조서에 나타난 사건의 정황이 서로 일치하지 않는 것을 최 군이 거짓말로 일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보았을 공산이 높다는 것이다. 

그런데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의 10년을 세상과 격리됐던 최 씨는 당시 자신이 경찰의 폭력과 협박 등 가학행위에 견디지 못해 허위진술을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일반 시민들은 그럴 리가 없다고 고개를 돌리면서도 너무나 허술한 일련의 상황을 그냥 지나치기 어렵다. 당장에 최 군이 당시 미성년자였고, 다방에서 배달일을 하는 비정상적인 신분이었다는 점이 시선을 끈다. 경찰 중 누군가가 최 군에게 죄를 뒤집어 씌워 개인 영달의 재물로 삼고자 했다면 이보다 더 좋은 조건을 찾기 힘들었을 것이다.

특히, 최 군이 복역하고 있는 과정에서 인근 군산경찰서는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같은 사람을 살해한 새로운 용의자를 검거했다. 그의 진술은 사건의 정황과 정확하게 맞아떨어졌고, 제시된 증거들이 명확하게 진실을 설명했다.

그러나 경찰에서 진범이라고 진술했던 피의자는 법정에서 진술을 번복했고, 재판부는 그에 대해 무죄를 선고해 오늘에 이르렀다.

최 군이 무죄라면 시민들은 경찰에 실망할 수 밖에 없고, 사회적 약자의 법 앞의 평등할 권리를 위한 형사소송법 개정 움직임이 일어날 수 있다. 경찰로서는 부담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경찰은 국민의 신체와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한다. 이것은 어떤 상황에서든지 부정될 수 없다. 범죄로부터 안전한 세상을 유지하는 일에 추호도 망설여야 할 일은 없는 것이다.

지난 6월 나유인 경찰서장이 약촌오거리 살인사건과 관련해 "수사기관의 협박 및 폭력이 있었다는 당시 피의자의 주장 및 방송사의 수사미진에 대한 이의에 대해, 보다 엄격하고 충실하게 당시 수사상황을 재검토해 한 점 의혹이 없도록 사실 관계를 밝히겠다"고 공표한 것은 그런 경찰의 존재 이유를 재확인한 것일 것이다.

그런데 "익산 경찰은 6개월이 지나도록 사건의 직접 당사자인 최 군을 단 한차례 만난 적이 없고 수사기록을 열람등사한 기록도 전혀 없다"고 최 군의 변호인 측이 폭로해 파장이 일고 있다.

그렇다면 지난 10월 열린 전북지방경찰청 국정감사에 최 군 사건 관련 자료로 제출된 '가혹행위 등 강압수사는 없었던 것으로 확인했다'는 경찰의 조사결과는 어떻게 나온 것인가.

시민들은 지금 개인의 영달을 위해 한 사람의 인생을 망친 경찰의 범행보다, 경찰이 그런 범법자를 조직적으로 보호하려고 진실을 은폐하는 듯한 정황에 더 분노하는 것이다.

경찰의 보여준 일련의 태도를 미루어 볼 때, 법원이 최 군의 재심청구를 받아들여 재수사가 이루어진다고 해도 공정하게 수사가 진행될 것이라고 누가 신뢰할 수 있겠는가.

가뜩이나 지난해는 국정원에서 촉발된 위험한 공권력에 대한 국민불신이 최고조에 달했고, 전혀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해를 넘겼다. 최 군 사건을 지켜보는 국민들의 태도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을 것이다.

나유인 서장에게 읍참마속의 결단을 촉구한다. 하물며 조직 내에서 범법자를 색출해 내는 일이라면 무엇을 망설이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