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은 매우 해묵은 주제이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근절하겠다고 외쳤지만 현실은 정 반대로 가고 있다.

청소년폭력예방재단이 지난해 학교폭력 실태를 조사해봤더니 전국 초중고 학생 127만 명이 피해를 당했으며, 40만 명이 폭력 때문에 자살충동을 느꼈고, 실제로 매년 130명 정도가 자살한다고 한다. 또 해마다 학교폭력의 심각성을 인식하는 정도가 높아지고 있다.

자살하고 싶다고 느낀 40만 명의 학생은 익산시 인구보다 무려 10만 명이나 많은 수치며, 이는 학교폭력이 심각한 수준이 아니라 고도로 위험한 상황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그런데도 교사와 학교, 학부모들은 사회병리현상 쯤으로 인식하는 방관자적 자세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는 일상생활에서 학생과 자녀들이 얼마만큼 폭력에 노출되고 있는가를 정확히 모르고 있다는 반증이다.

정부는 경찰을 동원하고, 지역 기관장들이 치안협의회를 구성해 폭력을 근절할 것을 주문하고 있지만 벌써부터 겉돌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자살사건은 학교폭력과의 전쟁 선포 이후에도 끊이지 않고 있다.

학생들이 폭력을 행사하고 자살충동을 느낄 수밖에 없는 원인에 대해 근본적인 성찰 없이 정부가 즉흥적으로 대응하고 있으며, 지역의 하부기관들은 정부 지시대로 시늉만 하고 있기 때문이다. 교육기관이나 지역사회는 정부 조치가 결국 변죽만 울리다 끝날 것임을 이미 알고 있는 듯하다.

근본적인 대책은 학생들이 폭력을 행사하게 만드는 환경을 바꾸는 것이다.

현재 학생들은 지나친 경쟁체제, 가정교육 및 학교교육의 부재, 신체적 안전과 정서적 안정을 해치는 시설, 복잡한 문제 해결에 등 돌리는 어른들의 태도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

우선 학생들은 어릴 때부터 입시경쟁에 몰입하는 바람에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 입시경쟁에는 아이 학부모 할 것 없이 온 가정이 매달린다.

대부분의 학부모들은 직장 때문에 많은 시간을 자녀와 보낼 수 없고, 결손가정 자녀들은 외면 받고 있다.

학원으로 변해버린 학교는 새로운 환경에 대처하는 교육방법을 개발하지 못했고, 내부 시설들은 친환경적이지도 않다.

특히 정부는 교육보다는 전투기 구입에 더 관심이 많은 것처럼 보이며, 학생들을 보호할 수 있는 다양한 제도를 도입하는데 소극적이고 오히려 학교서열화와 입시경쟁, 사교육을 심화시키고 있다.

이런 환경을 모른 체하고 학교폭력을 근절하겠다고 공언하는 것은 ‘언 발에 오줌 누기’고,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것이다. 

나라의 교육을 책임지는 사람들이 지금과 같은 ‘나쁜 체제’의 수혜자들이었거나, 경쟁에서 이긴 사람들이었으니 문제를 제대로 볼 리 만무하다는 비판도 나올 수 있겠다.

그렇다고 해서 지역사회가 이것들을 핑계로 학교폭력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

전라북도교육청과 각 시군 교육청, 학교, 학부모, 각종 공공기관, 청소년 기관, 사회단체, 동문회 등이 따로 움직이는 것 보다는 협심해 해결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학교와 교육청이 내부 문제를 해결하도록 지원하면서 학부모와 지자체, 공공기관은 비폭력 평화도시나 살기 좋은 교육도시를 내걸고 외부환경을 정화할 필요가 있다.

지금 상황대로라면 여성친화도시, 건강도시, 감성도시를 강조하는 익산시는 안전한 교육도시를 표방해야 한다. 

지역 순찰을 경찰이나 자율방범대에만 맡기지 말고, 학부모들이 연대해 우범지대와 학교 안팎을 순찰해 폭력을 예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가해학생을 사법처리 할 때는 훈계해 내보내는 방식 보다는 폭력예방교육 및 사회봉사 등을 의무적으로 이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특히 편부모가정이나 부모가 없는 가정, 부모의 질병으로 인해 궁핍하거나 정서적 안정을 취할 수 없는 가정, 미혼모 가정, 부모가 부양의무를 게을리 하는 가정의 자녀들과 가출 청소년들을 따뜻하게 안아주고 선도할 수 있는 지원시스템을 지역사회에서 만들어야 한다. 시민단체들도 고유영역을 떠나 지역사회의 정신문화적 환경을 개선하는데 힘을 모아야 한다.

평생학습기관에서는 자녀 양육과 교육에 관한 프로그램을 늘리고, 자치단체는 학부모들이 이런 과정을 이수할 경우 ‘탄소포인트’제와 같이 경제적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방안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지역사회가 학교폭력을 예방하고 근절하는데 머리를 맞대다 보면 정부와 사회, 학교와 가정이 무엇을 해야 할지 해답이 나올 것이다.